하꼬랑 만난 썰 푼다.
아침이 달라졌다. 잘 잤어? 하면 대답하는 생명체가 생겼다. 내 무릎 위의 고양이, 하꼬가 온 지 3주가 지났다. 아침이면 이불과 카펫 돌돌이, 청소기를 돌린 후 고양이 화장실 청소를 하는 루틴이 제법 익숙해졌다. 식탁 밑 카펫에서 피자 조각을 발견한 아침을 맞이한 후로는 먹은 음식도 바로바로 치운다. 고양이가 나쁜 습관을 다 먹어버렸는지 일상이 말끔해지고 있다. 집안일을 미루는 습관이 고쳐지는 거였다니. 신기했다.
하꼬는 부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구조된 작은 고양이다. 독립 후 가파른 복층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경사각이 딱 고양이용 계단인데 이거...’하고 읊조린 지 며칠, 주변인들의 소소한 응원에 힘을 받아 본격적으로 고양이를 찾아 나선 지 3일 만의 발견이었다.
아래는 임보자님께서 너무나도 하꼬의 습성을 잘 포착해주셨던 사진들. 홀딱 반해버렸던. 길냥이 ‘까치’ 시절의 스트릿 포토들.
형누나 다비켯...! 엄청난 식탐과
엄청난 퍼포먼스를 뽐내는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두근거렸다.
귀여운 외모에 묘하게 개그 캐릭터인 게 이 예비 집사와 쿵짝이 아주 잘 맞을 것 같았다. 하나의 장애물은 바로 부산에서 데려와야 한다는 것. 원래는 서울, 서울 근교로 게시글 필터링을 해서 보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게시판에 들어가자마자 필터링을 하기도 전에 바로 이 글이 들어온 거다. ‘다른 지역은 문의하세요’라는 손톱 같은 가능성을 붙들고 얼른 문자를 드렸는데, 마음이 통한 것처럼 연락이 계속 이어졌다.
당시 임보자님께서 먼저 연락 닿은 기념으로, 입양 홍보글에는 미공개였던 귀한 짤도 풀어주셨다.
간단한 인터뷰를 거쳐 꽤 심도 깊은 내용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 드리고, 하루 이틀 사이에 입양 예정일과 부산행 티켓 결제가 모두 이뤄졌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일들에 이런 게 묘연인가 봐요! 하며 서로 신기해하기도 했다.
고양이 필수품과 장난감들을 차근차근 사 모으고, 적응을 위한 이동장은 먼저 부산으로 보냈다. 준비에 고양이 유튜브가 큰 도움이 됐다. (미야옹철님, 윤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고양이는 그렇게 이동장 안에서 어리둥절한 채로, 부산에서 서울로 무사히 와 줬고, 좋은 소식을 물어다 오라며 지어주었던 ‘까치’라는 이름은 ‘하꼬’가 되었다.
귀여운 무릎냥 하꼬.
하꼬가 실눈이 될 때마다 변태처럼 귀에다가 사랑해~ 속닥거리게 된다. 운이 좋으면 응 하고 대답도 받는다. 다행히도 나를 좋아해 주는 것 같다. 마음대로 하꼬를 생경한 세계로 끌어들인 사람인데도 밉지 않은가 보다. 하꼬가 해 드는 옷방으로 먼저 가서 나를 부르면 나는 쫄래쫄래 따라가 하꼬랑 비슷한 모양으로 누워본다. 빛이 털 윤곽을 타고 자르르 흐르는 걸 보다가 말을 걸어 본다. 우리 집이 마음에 들어?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하꼬는 이제 하루 종일 몸을 숨기던 복층의 숨숨집을 까먹은 별장처럼 쓰고, 매일 내방 침대 모서리에서 잠든다. 가끔 잠에서 깨면 하꼬의 최애 장난감인 얼룩 쥐돌이가 내 얼굴 옆에 와 있다. 놀다 둔 건지, 부러 호감을 표시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고양이를 스무 해 넘겨 장수시킨다는 표현을 귀여운 말로 ‘대학 보낸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하꼬는 대학원까지 갈 운명인 것 같다. 만학도로 키워서 늦깎이에 새로운 대학까지 재입학할 수 있도록 반려해야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너도, 나도.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