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Corinne Bailey Rae)-Marcus Miller
*오늘의 글과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은 <Free(Feat.Corinne Bailey Rae)-Marcus Miller> 입니다.
(컴퓨터/아이패드 환경에서는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분기마다 만나는 6명의 연희동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 낡은 이야기인데도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 소재가 몇 개 있다. 생일도 아닌데 교문 앞에서 생크림 케이크의 초를 불며 고백을 받았던 A의 어리둥절한 순간이나, 중학생이던 B에게 향수를 선물하며 무모한 추파를 던졌던 사회 선생님의 전말이라든지, 우르르 몰려가 바나나우유를 건넸던 드러머 선배의 근황, 내 방에 동그랗게 모여 *23#으로 각자의 누군가에게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던, 그리고 입을 틀어막고 끅끅 웃음을 참던 그때 이야기들이 그렇다. 또 그 이야기들은 혜성특급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누가 생크림의 ‘생’ 자만 꺼내도 바로 특급열차에 시동이 걸려버리고 만다.
열차의 꼬리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타고 있다. 여섯 중 하나가 ‘이성의 조건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같은 흥미롭지만 쓸데없고 괴로운 질문을 던지고, 나머지는 마치 처음 해본 고민인 듯 머리를 쥐어짜다가 같은 답을 다른 단어로 말한다.
누구는 유머감각을 포기할 수 없다 말하고, 누구의 남자는 뼛속부터 개방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연애 초반의, 잘 보이기 위해 베푸는 관용은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이니까. 맞아. 열변을 토하는 친구 옆에 슬쩍 끼워 넣는 나의 익숙한 레퍼토리는 중저음의 목소리다. 나는 목소리를 본다. 특히 개인적인 목소리가 근사할수록 자꾸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친구들도 인정하는 대쪽 같은 취향.
20대 초반, 연말의 소개팅에서 얘기가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난 적이 있다. 만남은 부드러운 분위기였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단 하나가 부족했다. 목소리의 주파수가 맞지 않았다. 이야기도 잘 통했다며. 주선자는 답답해했다. 대체 그놈의 목소리가 뭐라고? 그때 변명처럼 둘러댄 말은 뭐랄까, 기타처럼 주인공 같은 목소리보다 베이스같이 주변에서 둥둥 맴도는 목소리가 끌린다는 거였다.
나는 왜 기타보다 베이스에 끌리는 사람일까? 그건 공연을 보러 가서도 마찬가지다. 건반이나 리드기타보다 드럼이나 베이스 연주자를 보는 게 소소한 기쁨이다. 저분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걸 모르겠지. 후후. 이런 검은 마음으로 연주를 관찰한다. 기타가 앞에서 자기주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묵묵하게 둥둥거리는 모습에서 빈틈없는 확신이 느껴진다. 차분하게 마디마디 노래의 골격을 만든다.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든 말든 이따금 주변과 눈빛으로 교감하며 끄덕끄덕 리듬을 탈뿐이다. 연주자마다 개인기를 선보이는 솔로잉의 타이밍이 되면 또 여과 없이 리드미컬한 실력을 뽐낸다. 그것도 중저음으로.
베이스를 주인공으로 여기는 사람은 잘 없다. 적어도 쟁쟁한 리드기타와 보컬이 있다면, 노래에서 베이스 사운드를 캐치하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베이스 없이 중고음의 향연인 노래를 들으면 그 허전함이 살갗으로 전해진다. 베이스의 몫이었던 중저음의 밸런스가 무너졌기 때문일까.
그런 의미에서 목소리에도 균형이 있다고 믿는다. 어딘가에서 둥둥 울리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 없으면 허전한 목소리. 묘하게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중저음에서 나는 밸런스를 읽는다. 목소리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성급한 일인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감수해도 좋다. 내가 만난 중저음의 목소리들은 다행히도 근사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특별히 엔딩곡까지 Marcus Miller로 준비했다.
*코로나 19가 잠잠해져서, 꼭 서재패 2020에서 그를 만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