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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빈 Aug 08. 2022

좋아하는 것을 꾸준하기

펜타포트와 클라이밍 사이의 어딘가


클라이밍을 하게 된 건 코로나가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더이상 구립 수영장을 못가게 되자 오래전 한 번 해보고 그만뒀던 클라이밍을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다 암장마저 다 닫게 되자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서울을 벗어나 열려있는 암장을 찾아가기도 했고, 내 생에 가장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으며, 그 인연들을 다양하게 스쳐보내기도 쌓기도 하는 중이다.


클라이밍은 여러모로 나에게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내가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선이 꼭 내가 깨야하는 문제와 맞물려 짜릿하게 느껴졌다. 코로나 시대의 규율은 엄격했지만 작위적이었고, 내가 나에게 만들어놓은 규율도 그랬다. 클라이밍을 하면서 나는 내 안의 규율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벽에 붙으려고 하면 발도 못올리고 있는 초보 클라이머들을 보면서 클라이밍을 하기 전의 내가 떠올랐다. 그 시절의 나는 요구나 거절은 커녕 남 앞에 서기가 부끄러워 매일 숨고만 싶은 사람이었는데, 그 시절의 나로부터 얼마나 많은 뻔뻔함을 장착했나. (물론 누가보면 뻔뻔함의 축에도 못낄수도 있지만, 이렇게 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거절은 여전히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어느새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을 기꺼이 받고 내가 원하는 걸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거기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응원을 받고 무언갈 성취할 수 있게 된 건, 그건 정말로 클라이밍 덕분이다.


이렇게 클라이밍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펜타포트에서 본 모과이의 슈게이징과 클라이밍 부상 덕분이다. 슈게이징-shougazing은 말 그대로 신발만 보고 음악하는 밴드를 뜻한다. 누군가는 관객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 하겠지만 그 노이즈로 구성된 혼란스러운 음악들은 어떤 음악보다도 내 마음을 편안하고 차분하게 만든다. 눈을 감거나 신발을 보고 머리를 천천히 흔들다보면 이 세상이 아닌 우주 저편에서 만나 교감하는 느낌이 든다.


위드코로나 시대, 점점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많이 좋아했으나 잊었던 것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있다. 해석하지 못하는 감독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영화관에서의 느낌 같이. 명료하고 요구하는 세상이 아니라 모호하고 드러나지 않는, 실패-성취의 구분이 아니라 그런 개념이 없는, 말과 문자로 주고받는 명료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음악과 이미지로서 모호하고 의뭉스럽게 전달하는 그런 세계. 그래서인지 요즘은 참 보고 싶은 영화도 많고, 가고 싶은 공연도 줄줄이다. 그런 세계와 함께 그리운 건, 그 시절의 내 자신도 포함된다. 어색하고 쭈뼛쭈뼛하고 남들에게 한없이 관대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엄격했던 내가.


자신감이 지나치면 뻔뻔함이 되고, 잘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지면 욕심이 된다. 뻔뻔함과 욕심을 먹고 체한 것처럼, 내게도 결국 부상이 찾아왔다. 부상이 온 김에, 어떤 한 쪽면의 과대해진 나 자신을 조금 축소하고 잊고있던 과거를 복기하고 저만치 치워둔 자아를 불러와본다.


20년 지기 친구는 14년 전 같이 펜타포트를 왔었는데, 어느새 펜타포트 무대에 서있다. 아무것도 없던 송도의 뻘밭은 어느새 모든 건물이 새롭게 올라선 미래도시가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그 시절부터 함께 해온 인연들과 모과이의 음악같은 것. 20년 지기는 20년 전 노래방에서 자우림과 똑같은 음색과 성량으로 노래하곤 했는데, 살아오며 펑크와 얼터너티브와 슈게이징을 흡수하여 서프록이란 장르를 대변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여전하지만 또 참 많이 바뀌어가고 있고, 서로에게 새겨진 결들을 지켜보며 함께 나이들어가는 재미를 무척 쏠쏠하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인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다면,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도록 노력하기. 클라이밍도, 음악을 듣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할 것도, 일을 좋아하는 마음과 언어를 익히는 재미 같은 것도. 그러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길 좋아하는 성향도 꾸준하기.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덧붙이자면 욕심만 내지말고 꾸준함을 위해 필요한 거리를 유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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