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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Jan 16. 2017

연말정산 - 쉽게 살자, 제발.

게을러도 괜찮아

실직자와 대상포진 확진자. 이 것이 나의 12월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1월에 갖게 될 나의 타이틀은 스타트업 멤버 그리고 조금 건강한 20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해와 삶의 전환기에서 깨달은 몇가지들을 적어보려 한다.


재밌는 행사와 모임이 가득한 연말에 나는 홀로 아팠다. 병상에 가만히 누워 올 한 해를 회고해 보니 2016년도 역시 바빴고 불안했고 재밌었다. 불안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은 것이란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이제 불안한 것이 이상하지 않다. 작년 말엔 좀 더 안정적이었던 것도 같다. 그땐 정규직으로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며 매월 10일에 월급을 꼬박꼬박 받으며 '2016년 상반기는 열심히 놀자’라는 계획 따위를 세웠으니 말이다. 진즉 비행기 왕복 비행기 티켓을 4개나 구입해 놓고 시작했던 해였다. 쉬는 날을 따져가며 미리 휴가를 내고 들떠있었다. 그리고 2017년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아직 모든 것이 물음표다. 정해진 스케줄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며칠 전엔 잘 다니던 직장(이라곤 하지면 여름부터 알바로 다니던 그 곳)도 그만뒀다.



깨우침 정산


첫번째, 본인 체력과 건강에 대해 속단하면 절대 안되겠다. 나는 젊은 엄마 배에서 초우량아(무려 3.6kg)로 태어났다. 엄마의 모유를 양껏 먹고 자랐고 서울로 유학왔던 낭랑 13살 전에는 주말에 집에 있었던 기억이 없었을 정도로 여기저기 놀러다녔다. 초등학생 때는 합기도로 검은 띠를 땄고 시골 논밭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아왔다. 비타민도 꼬박꼬박, 삼시세끼도 꼬박꼬박, 제철음식도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건강 라이프를 산다고 자부했는데 올 연말에 내 체력은 바닥을 치고 말았다. 나에게 대상포진이라니.   


말로만 듣던 대상포진은 생각보다 무서운 병이었다. 네이버에 따르면 ‘대상포진은 젊은 사람에서는 드물게 나타나고 대개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60세 이상의 성인에게서 발병한다’는데(!!!) 꽃다운 27살, 키나 몸무게에서 절대 뒤지지 않는 내가 이딴 병에 걸리다니. 땀띠인 줄 알았던 작은 물집들이 2박 3일 여행을 다녀오니 빨간 물집으로 꽃을 피웠다. 약간 아픈 주말인가 싶더니 가족 식사 후에 먹은 것을 한 번 게워내고 나선 확연한 병자의 모습이 되었다. 정말 개 아파서 끙끙거림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고3 때도 안 먹던 온갖 영양제를 먹고 매주 수액을 맞았다. 하루 20시간 자는 것이 일상이었던 12월은 나에게 엄청난 적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두번째, 스트레스를 빨리빨리 깨달으려면 멈춰야한다. 아니, 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찾아내고 쉬어줘야한다. 대상포진에 걸렸다는 말을 하면 모두가 물어보는 말이 있다: ‘너 뭐 스트레스 받은 거 있어? 그거 스트레스 엄청 받아서 징하게 아픈 병이라던대!’ 하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이 없다. 별 생각 없이 그냥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이건 정말 나의 27년 묵은 고질병인데,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잘 인식하지 못한다. 멘탈이 강하다고 하면 강할 수 있는 나는 웬간한 사건들은 별로 고통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삼년 전 정도만 해도 내 멘탈만큼 워낙 다부진 육체를 지니고 있었어서 스트레스따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내가 모르는 사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고장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아직도 내 스트레스가 뭔지 잘 모르겠다. 아마 가을에 너무 열심히 살았던 것이 탈이었겠지.




그래서 괜찮으니까, 제발 게으르고 천천히 살자고 마음 먹었다. 정해진 시간대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보니 시간적으로 바쁘지 않았다 생각했는데도 새로운 공부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느라 에너지를 많이 쏟았었다.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고 상대가 하는 일을 듣는 일, 그리고 함께 만들고 싶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일들은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뭐가 그렇게 배우고 싶었을까? 정체되어 있다는 모습이 부담스러웠을까? 아님 누군가의 기대를 채워야겠단 생각을 했을까? 나를 돌보면서 갖고 있는 일들을 꼭꼭 씹어가며 살아가도 괜찮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지니고 있고 여태 뿌려놓은 씨들을 거둘 시기이지 새로운 씨를 뿌릴 때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또) 했다. 이번이 충격적이게 아팠기에 더 많은 충격이 왔지만 실은 매년 아플 때 마다 생각하는 일이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이 멍청한 짓을 안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오버페이스로 달리며 숨차게 사는 것을 정상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나보다 싶다. 음식물을 서른번 씹어 식재료 맛을 느끼는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처럼 내 삶의 요소들을  둘러보고 느낄 수 있는 마인드풀 라이프(mindful life)와 워킹(working)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시간이라도 내 몸이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보자. 청춘은 불태우는 것이라지만 지금 모두 불태워버리면 앞으로 새하얀 재만 남아있을지 모른다. 한 달에 한번은 마음 디톡스를 하는 날로 정해서 기필코 아무것도 안 할것이다. 의식적으로 비생산적이고 쓸모없는 행동으로 에너지를 채우고 말 것이다.


올 한해, 사랑하고 게으르자!

몸도 마음도 건강한 20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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