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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Sep 23. 2018

결혼을 도대체 왜 하나요?

혼자도 되는데 둘은 왜 안되나요

엄마가 결혼 얘기를 꺼냈다. 고민하던 것이었지만 생각하기 어렵기에 미뤄두었던 것인데, 엄마의 진지한 질문으로 다시금 내 마음을 휘몰아쳤다.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은 많았다. 결혼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예식장에서? 숲솦에서?)부터 결혼할 남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사람이랑 평생을 할 수 있을까?), 애는 낳을 것인가(낳으면 어떻게 키우지? 내가 하는 일은? 나는 엄마로 성숙할 준비가 되었나?), 나는 나의 가족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할 수 있을까?(그리고 새로운 가족을 잘 받아들일 수 있알까?) 등등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히 길어져만 갔다.


어느 에세이에서 인지심리학자들이 좋아하는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설명할 수는 없는 지식이고 두 번째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설명할 수도 있는 지식이다. 두 번째 지식만 진짜 지식이며 내가 쓸 수 있는 지식이다.” 이 구절이 떠오른 건, 내가 결혼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절대 모를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 생활은 어떻다고 설명할 수 있으려면 정말 결혼을 하고 생활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고, 그 말인 즉,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닥칠 실전 결혼 생활을 고려해서 결혼할 것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니 말이다.


둘이 되고 셋이 된다니

결혼의 역사는 근 300년밖에 안되었다. 신부 약탈로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결혼 문화는 현대사회로 발전하면서 정말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어왔다. 남자와 여자가 살기도 하고, 여자와 여자가 살기도 한다. 같이 살지만 따로 방을 쓰기도 하고 법적으론 부부가 아니지만 함께 살며 아이를 낳기도 한다. 나도 수많은 채널을 통해 결혼을 보고 들어왔다. 가까이는 나도 결혼한 엄마, 아빠와 살고 있고 가깝게 지내는 언니, 오빠들도 결혼을 해왔으며 지금 내 또래의 친구들도 굉장히 많이 결혼을 준비를 하고 있다. 게다가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니, 남자 친구가 생기면 모두가 결혼은 언제 하냐고 물어본다. 남자 친구가 없어도 결혼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는 걸 보면 결혼이란 것이 꽤나 당연한 삶의 수순이라고 여기는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당연한걸 당연하게 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누군가에게는 좋아도 나에겐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어서 결혼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에 20대를 지나면서 내가 결혼할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아주 막연이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하지 않을까 라고 소소하게 얘기하곤 했었는데 이것이 현실로 오다니. 아직도 참 믿기질 않는다. 내가 생각했던 '좋은 사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엄마는 ‘싸워도 참고 인내하며 되돌아 갈 수 있는 곳 이어야 하지. 다시 안 돌아가면 안 돼. 누구랑, 어찌 살 건지. 오래 살아도 견디며 살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봐.’라고 말했다. ‘인내’라는 단어는 나랑 잘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른들의 말은 자꾸 잔소리 같고 시대에 뒤 떨어진 말 같으니까 곱게 못 들었던 것도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지혜로운 엄마의 결정적인 조언은 ‘그래도 이 사람이라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너와 내가 다른 길을 걸어와 같은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단과 양보가 동시에 필요하다. 싫은 소리 잘 하고 뭐든 혼자 결단내리는 나에게 더욱 필요한 덕목이 ‘인내’이기에 엄마는 그렇게 얘기했겠지. 자기주장이 강하고 어쩐지 튀는 딸이 남편과 허구한 날 싸우고 못 살겠다고 쫓아오는 모습이, 남편이랑 헤어지는 건 내 권리라며 냉정하게 얘기하는 내 모습이 엄마는 보였을지 모른다.

바람, 자유, 나의 시그니처들

몇몇 나를 좋아해 주는 언니들은 ‘꼭 결혼을 해야 해?’ 혹은 ‘너무 어려! 아직 너무 이르다고!!’라는 말을 해준다. 내가 몇 살 더 많은 언니였다면, 28살의 재능 많은 여동생에게 나 역시도 같은 말을 할 것 같다. 실은 여태 나도 그런 소리를 하면서 살았으니까.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건 너무 제약이 많아! 더 많은 남자를 만나볼 수도 있고, 혼자 실컷 여행할 수도 있고 내 커리어를 위해 훌쩍 해외로 제주도로 떠날 수도 있는데 왜 결혼해? 나 혼자 살만큼만 적당히 벌어 써도 되고 생활비, 대출비 걱정보단 이번 달 엥겔지수 정도만 고민해도 되는 신분이 싱글 여성인대 도대체 왜?


어떻게 보면 참 설득력 있고, 사실상 맞는 말이다. 하지만 또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다. 아니, 혼자도 되는데 둘은 왜 안돼? 둘이 같이 훌쩍 떠나도 되고, 새로운 남자는 원체 별로 관심이 없다. 실은 그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거란 생각 자체가 신데렐라를 꿈꾸는 개인의 큰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효리언니는 한 토크쇼에서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는데. 내 그이가 아직 모든 그놈 같진 않지만 나에게는 이 것보다 괜찮은 옵션은 없다.


결혼을 말리던 언니도 실상, 결혼해서의 삶을 따지면 행복한 것이 90프로 힘든 것이 10프로라고 했다. 단지 그 10프로가 너무 새롭고 짜증나기에, 결혼 하기 전에도 예상은 했지만 문득 평생을 그 10프로의 짜증과 함께 살 생각하면 까마득한 어지러움이 밀려온다고 했다. 그러니 아끼는 동생은 그걸 좀 늦게 겪길 바랄 뿐, 행복하다 했다. 


실은 결론은 나 있다. 나는 결혼을 할 마음을 먹었고, 그걸 고민하는 건 고민하지 않으면 나중에 난 분명 결혼이 주는 불행과 우울에 관한 글을 주야장천 쓸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어떻게든 쓸 글이긴 한데 지금 내 머릿속이 복잡하니 그냥 정리하는 셈 글을 쓰는 것도 같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생각이라니, 겪지도 았았던 사춘기를 떠올리며 이런 것이 예비 신부의 마음인가 싶다. 

니스에서 마주한 예쁜 쌍들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을까의 고민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잘’ 할 수 있을까 ‘잘’ 못할까의 강박적인 고민인 것 같다. 모든 걸 ‘잘’ 할 필요는 없는 건 알지만, 모두가 결혼에 대한 백만 가지의 의견을 내놓는 걸 보면 나도 저 백만 가지 중 상위 행복지수 30프로 안에 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든다. 잘 하지 않고, 적당히 나 답게 해보자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다 보면 이 고민이 한 단락 막을 내릴 것도 같다. 후속 단락들은 또 만들어 가야겠지만 말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다. 함께할 것 혹은 따로 할 것이 있다는 것. 좋은 것 나쁜 것은 정해놓을 것. 그의 생각은 절대 나의 생각 같지 않고 나의 생각 역시 그의 생각 같지 않다. 그러니 이해(아니 이해해보려고)할 것 혹은 그대로 둘 것이라고 적어 놓으련다. 내가 좋아하는 황경신 작가의 결처럼 ‘피아노의 팽팽한 현을 잡아당겨, 도로 태어난 건반이 도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처럼’ 그가 그의 소리로 맑은 빛을 내고 나의 소리가 화음으로 아름답게 울릴 수 있도록 천천히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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