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 is yours, girl
21살 때, 첫 소매치기를 당했었다. 몇 개월을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고심해서 샀던 DSLR 카메라였다. 당시 신제품이었던 캐논 550D. 한 단계 다운그레이드를 해서 저렴한 걸 살까, 니콘의 비슷한 제품을 살까, 매장과 마트와 전자상가를 돌며 3개월을 고민하며 샀던 당시 보물 1호였다. 카메라를 잘 쓰기 위해 사진 수업도 듣고 사진 찍는 친구들과 출사도 다니고 했었다. 그랬던 카메라였는데, 6개월도 채 쓰지 못한 채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오토바이 소매치기를 당했다. 아직도 그 순간이 눈에 선하다. 오토바이를 탄 젊은 남자애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카메라를 들고 유유자적 사라졌다. 여행 막바지라 대부분의 여행사진이 담겨 있었다. 동행했던 친구들의 위로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엄마가 보내준 답장은 아직도 내 일기장에 적혀있다. ‘세상에 너의 물건은 없단다. 세상에 보시했다고 생각하고 보내주렴.’ 엄마가 똑똑하진 않아도 현명하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유난스레 돈 모아 산, 비싼 물건을 잃어버린 딸에게 이렇게 담백할 수 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
21살, 혈기왕성하고 실패를 모르는 나에게 몇 달 모아 산 카메라는 세상의 전부와 같았다. 작은 실수에도 내 인생이 망할 것 같았던 나는 카메라를 잃어버린 것이 내 여행을 깡그리 망칠 전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정말 운이 없어서 앞으로 살면서 정말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시간이 좀 지나니, 내가 왜 그 어두운 거리를 걸었을까- 아니 나는 왜 라오스에 왔을까 하는 후회까지 밀려왔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소매치기는 살면서 겪을 수도 있는 정말 사소한 것이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해주었다. 절망을 잠재우는 건 결국 그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아직도 사는 것, 예쁜 것을 좋아해서 무언가 갖게 되면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막상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크게 상심하지 않는 편이다. 소매치기 사건 이후, 나는 '세상에 내것은 아무것도 없어'라는 말을 주문처럼 명상의 문장으로 종종 사용한다. 내 것에 집착하는 성향을 조금씩 버리다 보면 세상에 예민해질 일이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물질적인 것보다 경험적인 것에 더 치중하게 되고, 예쁘고 반짝이는 것보다 재밌고 즐거운 것들을 찾아가게 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온 시장을 돌아다니며 득템한 라피스라줄리 반지는 잃어버린 지 3년이 넘었지만, 내 손에 있던 그 감촉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내가 좋아했던 물건이다. 록 페스티벌에서 신나게 놀다 반지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았을 때 순간 고민을 했었다. 반지를 찾으러 내가 왔던 길을 추적해볼까? 아님 축제 끝날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춤이나 추고 놀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수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함성을 듣자마자 ‘아- 그 반지는 내 것이 될 아이가 아니었구나. 보내주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나는 또 배웠다.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용기는 살면서 꼭 필요하구나. 물질에 대한 집착을 조금 버리면 마음 가볍게 즐길 수 있구나.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정리의 능력이라고 하는 말처럼 무언가를 버릴 수 있을 때 나 자신도, 내 주변도 정리가 되는 건 아닐까.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마음이 너무 힘들 때 한번 읊어보자, '세상에- 너 것은- 아무것도-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