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는 당신에게 : 자본주의와 성장
나의 20대 마지막은 정말 무료하고도 바쁘게 흘러갔다. 이게 어찌 가능할까 싶지만, 나는 정말 많이 자고 많이 일했다. 모두의 출근시간이 지난 시간에 눈을 뜨고, 온갖 예능을 보며 머리를 텅텅 비운 후 밥을 먹고 일터에 나갔다. 밤 늦게까지 일하다 집에 돌아왔고 굼주린 배를 야식과 맥주로 채우고 침대로 향했다. 주말도 하루는 꼭 일을 했고 상반기는 여행, 하반기는 결혼 준비로 스케줄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비슷한 패턴의 생활이 지속되었고 무력감이 몰려왔다. 그나마 나의 혼을 빼놓았던 결혼식이 있어 겨울까지는 잘 지냈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봄이 오니 행복하지만 또 한편 마음이 허했다. 나를 사랑해주는 남편, 언제나 내 편인 부모님, 잘 굴러가는 커리어, 만나면 즐거운 친구들. 평생 있어보지 않았던 지나친 안정감이 행복과 빈칸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매일 행복하고 바쁘게 지냈지만, 무언가 모를 공허함에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매일 늦게 일어나는 나, 책이 아닌 티비를 보는 나, 야식을 매일 먹는 나. 이 모든 것이 행복하지만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내 내면을 둘러보고 지켜보며 생각을 끄집어 내보았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왜 그런거지. 무엇을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어떤 것을 하고 싶은거지.
그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았다. 내가 끄집어낸 키워드는 '성장'이었다. 성취감이 있는 일이 필요했다. 끊임없이 배울 것이 필요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아빠가 그랬었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가는 것 같지만 동시에 억겁과 같은 시간을 때워야할 것들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어릴 때 부터 엄마는 장기적인 취미로 나에게 뜨개질을 권했고, 아빠는 항상 재밌게 살 수 있는 것들을 찾으라고 했었다.
내가 찾은 것은 돈 공부였다. 그 중에서도 부동산. 자본주의에 살면서 나는 돈의 의미와 돈버는 것의 의미를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20대에는 조금 벌고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만 찾아다녔고, 돈을 벌면 모두 경험에 투자했다. 여행, 요리, 기획, 독서 등. 내가 20대 때 가장 열정적으로 했던 것들이다. 경험들이 모여 나는 자아를 쌓아갔고 그 전에 비에 정신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남과 덜 비교하면서 나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서른이 되어서야 돈의 의미를 생각해보게되었다. 경제적인 억압이 내 정신을 어떻게 억압할 수 있는지. 내가 현실에 맞춰 포기하게 된 것은 무엇인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지금의 자유와 행복을 유지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기부를 더 많이 하고 싶고, 더 나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고, 자연 보존을 위해 일하고 싶고, 학교를 만들고 싶었던 내가 지금 현실에 만족을 끼워 맞추느라고 더 멀리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나의 이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뼈를 갈아 일을 할 자신은 없었다. 20대 중반,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돈을 포기했었다. 즐거웠지만, 즐거운 순간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수입이 들어오지 않는 일이 얼마나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경험했었기에 그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큰 노동력이 아니라 작지만 실천 가능한 일들을 일상에서 하면서, 나는 돈을 벌고 싶었다. 노동력이 아닌 자본이 나에게 돈을 벌어다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샀고 읽었다. 수업에 등록했고 100일간 나는 참 많이 배웠고 점차 성장했다.
출처: 2019년 이지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