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욕심마저 내려놓게 한 아름다운 시골길 <대구–부산>
삼랑진으로 가는 완행버스 옆으로 3억짜리 프리미엄 버스가 금곡터널 안을 쏜살같이 스쳐 지나간다. 기아에서 만든 그랜버드다. 시내버스 여행을 하다 보면 엄청나게 다양한 버스를 타보게 되는데 그것도 이 여행의 깨알 같은 재미 중 하나다.
버스는 알다시피 승합 마차를 뜻하는 라틴어 옴니버스(omnibus)에서 나온 말인데, 독일에서는 아직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 영국에선 노선용은 버스, 여행용은 코치(coach)라 부른다. 미국에서도 스쿨버스나 소형차를 제외하고는 모두 '코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한국전쟁 이후 하동환 자동차에서 미군 폐차를 뜯어내 일명 ‘짜깁기 드럼통 버스’를 제작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버스가 탄생하고 명멸해갔다. 국산 시내버스 최초의 모델은 대우버스의 전신인 신진자동차가 1967년 출시한 ‘FB100LK’였다. 이 모델은 일명 콩나물 버스로 불리며 1970년대까지 운행되었는데 전장도 짧은 데다가 높이가 185cm 정도여서 키 큰 사람은 항상 구부정한 루저가 돼야만 했다. 뭐, 당시엔 이 정도 키 큰 사람이 별로 없어 비난받을 정돈 아니었겠지만.
당시 시내버스는 안내양이 있던 시절의 ‘프런트 엔진’ 방식이었다. 운전석 옆에 툭 튀어나온 엔진룸은 승객들 짐 보관대나 겨울엔 난로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투 도어 시내버스의 시대가 열리며 1984년을 기점으로 토큰과 안내양이 사라졌다. 이제 강철 프레임 대신 에어 서스펜션이 차체를 떠받치는 저상버스와 교통카드 시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려드리면, 우리에게 ‘오라이~’란 단어로 연상되는 버스 안내양이 1961년 초까지는 모두 남성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5.16 쿠데타 이후 1961년 6월 17일에 박광옥 교통부 장관이 ‘전국 시내버스와 시외버스의 차장을 여성으로 대체하라’는 폭탄 지시를 내린다. 이유는 단순했다.
“거친 남자들이 손님에게 불친절해 자주 문제를 일으키니, 거친 남자보다는 상냥하고 친절한 여자들이 승객을 안내하면 좋을 것 같아서...”
이 단순한 발상은 이후 버스안내양들의 직급에 대한 처우와 사회적 시선으로 인한 엄청난 직업적 갈등을 야기시키는 시작점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