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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Aug 11. 2020

할리맨과 피규어

어느 실직자의 99도 당근일기

당근거래를 하다보면 이상한 구매자들을 가끔 만난다. 동네가 아니면 일부러 방문해서 살만한 물건이 아닌데도 일부러 멀리서 우리집 앞까지 찾아와 물건을 사가는 구매자들이다. 그 제품이 생필품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법한 손바닥만한 낡은 피규어인형을 사러오는 사람은 어떤 캐릭터일까가 무척 궁금했다.

“당근~~제가 일괄구매하겠습니다”

우리집 아이들이 심심풀이로 구매했던 원피스와 어벤저스 피규어 3개를 일괄로 구입하겠다며 찾아온 구매자는 나의 선입견을 일순간에 박살낸 엄청난 캐릭터였다.

그는 250cc중형 오토바이에 할리 가죽재킷을 입고 웅장한 기계음을 두두~둥하고 울리며 내 앞에 나타났다. 심지어 피규어쯤은 그냥 무시할만한 엄청난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삼천원이죠?”

진짜 의외는 그가 가격을 말하며 조그만 동전지갑에서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두장과 오백원 동전 하나, 그리고 백원짜리 4개, 심지어 오십원짜리 두개를 나에게 건내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피규어를 받자마자 언제 그랬냐는듯이 가죽재킷을 한껏 올리고 두두둥거리며 웅장하게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그가 나에게 던져준 지폐와 동전을 바라보며 멍청하게 서있었다. 두툼한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정확한 인상을 볼수는 없었지만 사람은 참 외모만으로 평가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조그맣고 보잘것 없는 피규어와 두툼한 야성적 이미지의 가죽자켓 이미지가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재활용날에 버려질 운명이었던 3개의 피규어가 확실히 새로운 운명을 만났다는 점은 확실했다. 그래서일까. 무척 묘하지만 멋진 거래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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