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이 Jul 23. 2018

‘정지된’ 삶도 ‘여전히’ 삶이거늘

스틸 라이프(Still Life, 2013)

정지된 삶 


    존 메이는 죽은 자들의 장례식을 치러주기 위해 망자들의 ‘끝난’ 삶의 흔적을 쫓는다. 현재진행형이 아닌 모두 정지된 과거형의 삶을 쫓는 것이다. 존 메이의 일상은 그가 쫓는 사람들의 성질 마냥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매일 혼자 일하고 혼자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잔다. 밥도 죽은 생물을 가공한 통조림을 먹는다. 후에 윌리엄 스토크씨의 과거 여인에게서 받은 생물에 가까운 생선구이는 요리에 실패한다. 이처럼 그는 살아 있는 것은 다루는 데에는 미숙하다.





여전히, 삶


    그러나 그러한 그의 삶도, 그가 쫓아다니는 죽은 자들의 삶도 여전히 삶이다. 존 메이는 죽은 자들의 주변인들을 통해 그의 과거를 재구성하고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는 삶을 가진 망자의 친구가 되어준다. 이를 통해 숨이 정지된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그 삶이 무가치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존 메이의 마지막 사건이었던 윌리엄 스토크씨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망자의 기억을 일깨우고 추억하게 만드는 그의 고군분투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마지막에 윌리엄 스토크 씨의 장례식에 다수의 사람이 처음으로 참여하게 되는 모습은 그의 죽음이 헛헛하지 않게 만드는 장면이다.







‘존 메이’라는 교차로


    정지된 삶과 여전히, 삶. 이 두 삶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은 존 메이. 그는 마치 저승사자의 임무를 역으로 수행하듯 죽은 자의 삶을 산 자들의 의식으로 끌어올린다. 아무도 찾지 않는 장례식에 홀로 참여하여 친구가 되어주는 그의 모습은 일견 쓸쓸하면서도 귀여움을 자아낸다. 그런데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데이트를 앞두고 사망하는 그의 삶은 아이러니하다. 이승에서는 성실하고 자부심있는 자신의 업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생애 첫 데이트조차 교통사고로 실패한다. 한편 저승에서는 친구 한 명조차 없던 존 메이에게 그가 참여했던 장례식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에 찾아와 곁을 지켜준다. 고인들의 삶을 존중해주던 존 메이도 결국 그들처럼 이승보다 저승에서 더 행복한 삶을 누리는 셈이다.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죽은 사람들을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행복한 존재로 그린다. 이것은 존 메이가 죽은 이들의 삶에도 가치가 있음을 알아주기 때문에 가능한 묘사이다. 윌리엄 스토크의 딸에게 그의 묘지 자리를 설명해주는 존 메이의 열의에서 이를 단적으로 느낄 수 있다. “어차피 죽은 사람들의 일이다. 산 사람의 일이 더 중요하니 일을 빨리 처리하라”고 말하는 존 메이의 회사 상사나 “존 메이씨는 참 특이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화장 일을 하는 사내의 말을 보면 살아 있는 사람들 중 존 메이만큼 이 역설적인 가치관을 전달해 줄 인물은 없어 보인다. 영화는 존 메이의 일인 극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행적에 의지한다. 그만큼 그는 정지된 삶의 역설적인 가치를 절대적으로 전달하며 관객들을 응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과 구원은 별개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