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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다.
제희네 부모님과는 잘 지냈고 존경심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시점의 선택에 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빚을 전부 갚기도 전에 늙어버렸고 제희네 누나들과 제희가 그 몫을 나누어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맏딸인 큰누나는 진학을 포기하고 전철역에서 보세 의류를 팔았다. 그녀는 수입의 일부를 빚을 갚는 데 보태고 또 다른 일부로는 빚의 이자를 갚는 데 보태고 남은 일부로는 생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보탰다. 그녀가 결혼한 뒤로는 둘째, 셋째, 넷째, 제희 순이었다. 제희네 누나들 가운데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결혼해 사는 누나들을 비롯해서 모두가 형편이 그만그만했다.
나는 그것을 골똘히 생각해 볼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좀 사나운 심정이 되었다. 제희네 부모님은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 왜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것은 자신들의 욕심뿐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았을까. 빚을 떠안으면서 딸들에게 짐을 지운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을까. 자신들의 양심과 도덕에 따랐지만 딸들의 인생을 놓고 봤을 때는 부도덕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황정은, 「상류엔 맹금류」 中, 『2014 제5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4)
2.
아빠는, 엄마에게. 내 일기장을 보았다고 했다. 나의 지나간 애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말이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고 했다. 나는 그 일기장을 집에서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오직 도망쳐 나오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엄마는 휴가를 나온 오빠에게 사과를 했다. 아빠의 폭력을 때로 방관하여 미안하다고. 스물여섯 살에 군복을 입은 오빠는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너도 너무했잖니. 그것에도 고개를 끄덕거렸다고 한다.
오빠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술을 마시고 톡이 왔다. 좋은 오빠가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보냈다. 나는 발 닦고 잠이나 자라고 했다. 톡방을 나왔다. 조금 미안했다. 그렇지만 다시 열어보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에게. 자식교육을 잘못 시켜서 이지경이 되었다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네가 이 씨 피가 흘러서 게으르고 그것을 볼 때마다 아빠의 생각이 나 견딜 수가 없어진다고 했다. 오빠는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전화했다.
나는 악몽을 꾸었다.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 가기도 하고 집에서 끊임없이 탈출하기도 했다. 누군가 엄마를 죽이려 하였고 나는 무력하게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꿈에 가족이 나오면 아빠가 없어졌다.
엄마는 어린 게 무슨 그렇게 한이 많냐고 했다.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짜증을 내며 술을 마셨다. 나는 화장실에서 눈물을.
3.
나는 부도덕하고 불쾌한 것을 이길 수 없었다. 내가 가해자가 되는 기분은 전혀 즐길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도덕적이고 피해자라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모를 생각하면 조금 사나운 심정이 되었다. 어째서, 그랬습니까. 나는 소설 속 제희의 여자친구가 되어 외치고 싶어졌다. “저게 다, 짐승들 똥물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