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리뷰지만 그래도 꼽아본다면
이 일을 하다 보면 브랜드 쪽에서 “잘 되는 상품은 뭔가요" 라는 질문을 하실 때가 있다. 아마 내가 여러 카테고리와 브랜드를 해봤기 때문에 주시는 질문일 것이다. 운이 좋게도 경험했던 조직들과 지금의 일이 상품기획자와 같이 붙어서 일을 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마케팅과 BM을 해오면서 느꼈던 잘 되는 상품들이 갖고 있던 조건들은 아래와 같았다. 단, 대략적인 제품 필요성 여부와 카테고리, 재구매성 여부를 어느정도 정해놨다는 가정하에.
1. 판매채널을 먼저 정하고 그 채널에 맞게 기획을 진행한다.
자사몰에서 팔 건지. 쿠팡이나 올리브영에서 팔 건지. 29cm에서 팔 건지 등에 따라서 제품의 성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실 전통적인 타깃 개념에서 제품의 판매대상을 생각하면 모호해진다. 오히려 판매채널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좀 더 명확하다. 자신의 생활습관/패턴에 따라서 사용하는 플랫폼들이 있고, 그 플랫폼의 상품 순위나 콘텐츠 유형들은 해당 타깃들의 특징들을 보여준다. 거기에 먼저 맞추는 것이다.
자사몰에서 팔겠다면 결국 광고를 해야 하고, 광고를 하려면 광고에서 내세울 USP가 매우 명확해야 한다. 특정 유통채널을 염두에 둔다면 그 유통채널의 각 카테고리 별 주 사용층은 어떤지, 어떤 카테고리가 성장세인지, 해당 카테고리의 가격경쟁은 어느정도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고 빈 곳을 채우는 상품을 기획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몇년 전 이야기지만 건기식으로 나쁘지 않게 쿠팡에서 매출을 올렸던 브랜드의 기획 과정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쿠팡에서 해당 키워드 상품수가 느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상품수가 아주 많은 상황은 아니어서 가볍게 제품을 런칭했고 그것이 좋은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미디어커머스 회사들의 방식도 기본적으로 선 채널 - 후 기획의 방식이다. 자사몰에서 팔기 위해선 메타 광고를 해야 하고. 그렇다면 메타광고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콘텐츠 포인트를 갖춘 제품이어야 한다. 올리브영에서 플레이 하려면 엄청난 수수료와 유통처의 요청을 감당할 수 있는 원가구조를 갖춰야 한다.
상품에서 런칭 후 의외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례가 판매채널을 런칭 후나 기획 스펙이 어느정도 정해진 뒤 생각하는 경우다. 운이 좋아서 판매채널에서 먹힐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이도저도 애매한 경우 어떤 채널을 돌려도 애매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신규 브랜드 런칭 과정이나 신상품을 낼때는 꼭 기획하시는 분들께 반드시 메인 판매채널과 원가를 먼저 정하고 움직이자고 말씀드리는 편이다.
2. 콘텐츠 포인트가 명확하게 있다.
1번의 연장선상에 있다. 판매채널에 따라 어떤 콘텐츠 포인트가 필요하냐는 다르겠지만 온라인 쇼핑의 8할은 시각 소구이고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포인트가 상품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걸 내가 다녔던 블랭크에서는 “콘텐츠 점수"라고 불렀다.
단순한 B&A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사람들도 그런 방식은 너무 많이 노출되서 반응하지 않는다. 상품의 특성을 한컷 내지 3~5초 내에 보여줄 수 있는 형태면 제일 좋다. 자사몰 브랜드라면 매우 필수적이다. 그러나 애시당초 그게 안되는 카테고리들도 있다. 그렇다면 좋은 디자인이나 스토리를 가지고 있거나, 매력적인 인물을 통해 소구하거나, 공신력있는 증거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패션플랫폼에서 파는 제품들이라면 한 컷의 포인트에 정말 많은 공수를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콘텐츠 포인트는 의외의 지점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시장에서 익숙한 제품이고, 그 제품이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는 다 알고 있지만 여러가지 이유에서 제품의 효능이나 특징을 콘텐츠로 보여준 적이 없는 경우가 있다. 강아지 배변패드나 고양이 모래가 그랬고 여행 캐리어도 그랬고 최근 진행했던 선물 브랜드나 식품 브랜드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다 필요로 하고 잘 쓰는 제품들이지만 사람들이 제품의 특징을 영상 광고로 만나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배변패드나 모래라면 잘 흡수되는 모습. 캐리어라면 많이 담기는 모습. 선물이라면 좋아하는 모습. 식품이라면 씨즐감 등.
역으로 말하면 이미 콘텐츠 포인트가 시장에서 많이 개발돼 돌아다니고 있는 상품이라면 신규 브랜드의 진출을 피해야 한다. 그때부터는 이제 유통처에서 가격경쟁으로 가야 하거나, 추가콘텐츠 개발에 써야 할 최소비용이 높아졌다는(인플루언서, PPL, 브랜딩 등) 이야기이고 이런 상품에 신규브랜드가 진입하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렵다. 보통 유통에서 잘 파시던 분들이 자사몰로 옮기고 싶을때 여기서 막히시는 경우가 많다.
3. 합리적인 목표원가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기획한다.
가장 중요하다. 의외로 이 부분을 간과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좋은 기획이란 애시당초 향후의 가격 테스트를 염두에 둔 목표 판매가와 목표 원가를 정해놓고 기획을 진행하는 것이다. 기획이 끝났는데 매출원가율이 50% 이상이 예상된다던가 하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그런 기획은 사실 초반에 드랍하거나 더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게 맞다. 유통에도 못들어가고 광고도 못하는 상황이 온다.
물론 객단가가 아주 높아서 1~5%만 남겨도 남는 절대금액이 크다던가, 정말 소규모라서 그정도만 남겨도 된다면 상관 없다. 그러나 통상의 객단가 범위인 3~6만원 내에서의 원가율이 50% 이상이라는 건 정말 치명적이고 매출이 늘어도 정산 후 허탈해지는 상황이 정말 많다. 20만원 매출 하다가 200만원까지 늘려놨는데 남는 돈이 2만원 이러면...
나는 무조건 원가가 낮다고 해서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원가가 낮은 제품은 그만큼의 이슈가 있고, 설득 포인트를 만들기 어려운 경우도 잦다. 결국 비용을 더 쓰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원가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들어가려는 시장에서 가격이 어느정도로 형성돼 있으며, 우리는 어떤 가치제안을 얹어 어느정도의 가격에 팔 것이며, 그때의 원가율은 어느정도로 목표로 할 것인가가 그려져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1,2가 다 갖춰져도 3이 무너지면 정말로 할 수 있는게 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