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똑바로 써라 핫산 Mar 22. 2022

첫 이직

이직이 아니라 업종을 바꾸려고요

힘들었던 순간들


 새벽 5시 40분쯤 시끄럽게 휴대폰의 알람이 울렸다. 일찍 잠이 들어도 저 시간에 일어나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더불어 매일 나의 출근을 도와주시는 어머니한테 죄송스러운 마음이 많았다. 경기도 외곽에 사는 나는 빨리 준비를 하고 서울 영등포구로 떠나야 한다. 광역버스와 전철을 두 번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다. 계산해보니 매일 출퇴근으로 왕복 4시간을 사용했다.


 회사는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는 전형적인 회사였다. 하지만 업무 준비를 위해서 최소 8시 30분까지는 출근해야 하고 막내인 나는 8시까지는 도착해야 했다. 그래도 나는 누구보다 먼저 아침을 맞이하고 조용히 하루를 시작한다는 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해가 짧아지면서 그런 생각이 바뀌었다. 점점 해가 뜨는 시간은 느려지고 지는 시간은 빨라졌고 새벽 공기는 매섭고 밤공기는 차갑고 무겁게 느꼈다. 하루는 깜깜한 밤에 출근해서 종일 건물 안에서 일하다가 퇴근할 때가 되어 바깥을 나서니 여전히 깜깜한 밤일 때 뭔가 우울한 기분이 영 별로였다.


 한 번은 해가 바뀌어 시무식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준비를 위해서 각 팀에서 막내가 한 명씩 오전 7시까지 나와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러려면 4시 40분쯤 버스를 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첫 차가 5시라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내 선배가 내 대신 일찍 출근하게 되었는데 그날은 참 불편한 날이었다.



지독했던 외로움


 회사에는 공채 기수가 있어 신입사원들에게 무리를 지어준다. 하지만 나는 나 홀로 입사해서 아쉽게도 동기가 없었다. 가끔 흡연장에서 업무나 사람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동기들과 이야기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다른 선배들을 보면 조금 부러웠고 많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어디도 낄 수 없는 묘한 외로움이 잔잔하게 마음속에 깔렸고 회사를 다니면서는 자연스럽게 아주 조용하고 별말이 없는 직원이 되었다.


 이런 태도를 선배들은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았고 아주 가끔 창고로 불려 가서 친근한 후배의 모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지도받았다.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지만 얼마 안 가서 나를 지도하던 선배는 우리 팀장에게 그 모습을 들키고 극대노한 그를 보고 나서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다.


 동기들이 없었지만 회사의 파견직 직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나는 신입사원이다 보니 나의 업무보다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일들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문서 정리 업무라던가 창고 정리와 같은 업무를 돕고는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런 업무를 하는 분들과 시간을 자주 보냈다. 대부분 내 나이 또래인 친구들이 많았는데 이 회사의 정규직인 나를 부러워하며 그들 역시 정규직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이따금씩 회식을 하며 대학에서의 전공 이야기, 그래서 본인들이 꿈꾸는 직업 이야기, 꿈 이야기 이런 것들을 말하면 표정이 달라지며 눈을 반짝이던 그들은 나에게 큰 귀감을 주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터널을 지나는 기분, 누구도 옆에 없이 홀로 그 길을 무작정 걷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과연 이곳을 나갈 수 있을지 아무것도 모르는 느낌이었다. 그들도 그런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니 안타까웠다. 다만 그렇게 취업을 하여도 사실 그런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애써 티 내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고용 형태는 다르지만 똑같이 외로웠고 가끔씩 느끼는 동질감은 고용 형태 때문에 금세 사라졌다.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이용권의 만료 소식


 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직장생활을 한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신입사원 버프가 다 끝났는지 과하다 느껴졌던 열정도 의욕도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렇게 가끔씩 창고 구석에 앉아서 몰래 졸기도 하며 그저 하루 일과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난날 멋진 개발자가 되기로 한 다짐이 무색하게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 게임에 로그인했다. 3개월 이용권을 질러놨는데 이미 만료가 되어 있었다. 사용 개시한 첫날 말고는 한 번도 접속을 못했다. 그 좋아하던 게임을 이제는 더 이상 즐기지 못했다. 다른 공부를 할 시간도 부족했다. 항상 내일의 출근에 쫓겨 사느라 오늘의 나에게는 별로 관용을 베풀지 못했던 것이다. 엄청난 슬픔과 회의감이 밀려왔고 아마도 그날 나는 이직을 결심했던 것 같다.



게임 회사는 어떤 곳일까?


  집 근처에 있어서 출근하기 쉽고 IT가 주력이 회사를 찾았다. 아무래도 금융서비스가 주력인 현재의 회사에서 보다는 조금 더 개발자 문화가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게임회사에 취업하고 싶었다. 나도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그냥 무작정 게임회사의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를 세웠다.


 고작 경력이 1년밖에 안된 녀석이 무슨 이직을 할 수 있겠나 싶었지만 이럴 때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들이댔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 한 달여 만에 이직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것도 바라던 게임회사에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