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자랑 좀 할게요
나는 지난달에 드라이기를 출시했다.
무려 5일 만에 5,000대를 팔아치웠다.
상품기획자로서 뿌듯한 순간이다.
재입고를 시켰다.
이번에는 20일 만에 5000대가 팔렸다.
앗싸! 이번 달 KPI는 따놓은 당상이다.
처음에 출시한 디자인을 가지고 팀원과 티키타카를 오래 했다.
같은 드라이기라면 JOO 같이 주둥이가 긴 게 좋을까, 아니면 다OO처럼 짧퉁한걸 추구해야 할까.
팀원은 처음에 와이즐리가 '가성비' 플랫폼인 만큼 JOO 방향으로 검토했다.
팀장님! 이거 출력도 좋고 성능 좋아요! 디자인은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나는 잘 팔리는 상품을 만들려면 고객의 '로망'에 적중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퀄리티가 좋고 저렴해서 사람들이 많이 산 제품과, 비싸서 사고 싶지만 못 사는 제품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후자는 베스트셀러이지 못할지 언정, 구매욕을 자극시키는 제품이다. 하지만 이런 제품을 발라내려면 시장을 향해 언제나 눈을 치켜뜨고 있어야 하고, 개인적으로도 좋은 제품, 나쁜 제품 골고루 소비를 많이 해봐야 한다.
나는 왕년에 소비의 신이었다. 상품개발한답시고, 꽤나 사치를 했다. 사회초년생 시절 립스틱으로 시작한 나의 사치가, 에어랩, 전자기기, 가구, 인테리어, 집까지 넘어갔다. 그렇게 나의 지갑은 텅장이 되었지만, 상품기획자로써의 "센스"는 남게 되었다.
데이터는 JOO가 시장의 대세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감은 강하게 다OO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래, 가격은 JOO보다 저렴하게, 디자인은 다OO 못지않게 해야 한다. 아니면 이 제품도 그저 그런 제품 중 하나가 될 뿐이야.
그렇게 난 팀원의 멱살을 잡고 출시할 제품 디자인을 다OO과 흡사해야 한다고 결정을 해버렸다. (난 와이즐리 꼰대다.)
자, 레퍼런스로 삼을 제품 디자인은 선정했다.
이젠 드라이기의 품질이 어디서 갈리는지 검토할 차례!
시장분석 결과, 드라이기의 구매 요인은
바람 세기: 모터 성능과 직결되기 때문에 모터 출력 및 모터 회전량 스펙이 높아야 함. 항공모터(BLDC)를 최우선으로 고려.
가성비: 1~2만 원 대 저렴한 드라이기도 있지만 명백한 성능의 차이를 느끼는 것으로 보임. 프리미엄에 대한 니즈 있음
휴대성: 500g 미만이어야 불편함을 안 느낌
오케이! 이상적인 드라이기 스펙은 정했다.
이제 품질과 디자인에 맞는 공급사를 찾아야 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제조사를 탈탈 털겠다는 마음으로 덤벼들었다.
우리는 10군데 이상의 업체를 컨택하고, 스펙을 조정하고, 샘플을 테스트하고, 고객 테스트 돌렸다. 한 번 샘플 오고 가는 데는 10일에서 한 달. 그렇게 몇 개월이 걸렸지만 결국 우리 마음에 쏙 드는, 완벽에 가까운 샘플이 나왔다.
샘플 확정 후 품질은 다OO에 버금간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젠 가격을 고민할 차례.
팀원이 시장을 쭉 살펴본 결과 5만 원 이상부터 구매 욕구가 떨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래, 49,900원으로 간다.
그렇다면 수입대행사를 낄 수 없다. 그들에게 마진을 떼어줄 구조가 안 나온다.
그래, 우리가 직소싱 한다.
직소싱 하면 물류, 관세, KC인증, AS보증까지 업무가 복잡해진다. 게다가 달러가 오락가락, 물류비도 오락가락, 너무 변수가 많았다. 하지만 판매가 5만 원 미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정도 퀄리티의 제품이면 가격을 좀 더 올려도 팔릴 것 같은데... 어느 정도 가격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고객의 감동은 5만 원 이하에서 나올 것 같다는 강력한 신념으로 계속 계산기를 두드렸다.
와이즐리컴퍼니는 전자제품 회사가 아니다.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내부적인 반대도 있었다. 특히 A/S에 대한 우려가 컸다.
A/S센터를 차릴 수 없는데 어떻게 고장을 처리해야 할까.
파격적으로 1년 이내 신제품 무상 교체를 도입했다. 일명 와이즐리케어.
어차피 불량은 2% 이내, 감성 하자까지 포함해도 통상적으로 5% 이내로 들어온다.
그 5%는 우리가 감내한다. 그 비용이 A/S 센터를 설치하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다.
와이즐리케어란? 자세히 보러 가기
와이즐리케어 도입 여부로 내부 품질 담당자와 실랑이를 길게 했지만 나는 매출에 미친 자다.
눈앞에 보이는 매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드라이기를 출시하기까지 이 이상의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접해보는 KC인증 절차 때문에 담당자를 귀찮게 했고,
처음 판매해 보는 제품에 대해 들어올 클레임에 CX팀도 귀찮게 했다.
무엇보다 제품에 문제가 터졌을 때 감당해야 할 것은 QC팀.
거기에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한건 드라이기는 이미 필수재인데, 굳이 와이즐리에서 새로운 드라이기를 살까에 대한 우려였다. 드라이기란 제품 선정, 와이즐리 케어, 공격적인 가격 설정, 모두 내가 내 손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출시 전까지, 이 제품의 성패에 내 모가지를 내놓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여러모로 우당탕탕이 많아서 출시 날 다른 것이 손에 안 잡혔다.
하필 나는 출시날 오래전에 잡아둔 휴가를 떠난 상태였다.
휴가지에서 계속 대시보드를 보며, 손을 떨었다.
하지만 다행히 첫 5일 동안 5,000대,
재입고 후 20일 동안 또 5,000대를 팔았다.
그렇게 2023년 9월, 와이즐리컴퍼니는 잠시나마 와이슨이 되었다.
(제품 구매는 여기서, 속닥속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