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서울 본격 탈출 1/3
일상생활을 하고 있노라면 한 달에 한번, 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씩 콧구녕에 바람 좀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 때가 있다.
불과 일주일 전에 대구에 내려갔다 왔지만 볼일을 보는 게 주였기에 고민 + 고민 끝에 설 연휴에 우이도로 떠나기로 결정. 일전에 지인이 보내준 링크에서 보고 반해서 직접 모래언덕을 보고 싶기도 했고, 뭍에서 세 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이 무척 맘에 들기도 했다. 그냥 모든 것에서 떨어져 있기를 항상 갈망한다.
일요일 오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간발의 차로. 여차저차 해서 빈 명당자리(1줄짜리 좌석 맨 앞)에 앉게 된다. 독서등을 켜고 책을 읽고 있노라니 이 여행은 정말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팟캐스트도 듣고 책도 읽고 폰 게임도 하니 어느새 목포에 당도했다. 세 시간 반 밖에 안 걸렸다(심야로 갈수록 소요시간이 더 짧아져 심야버스에서 잠자리를 해결하고픈 욕구를 절대 채울 수 없는..ㅎㅎ). 어제, 오늘 봤던 그것이 알고 싶다의 연쇄 택시기사 살인범 에피소드가 떠올라 섬뜩하지만 여하튼 택시에 올라 숙소로 향한다. 아저씨는 엄청시리 정겨우시다. 내 걱정과 공포가 사라져버린다. 숙소 앞에 내리자 어둑한 골목이라 그런지 길거리에 서 계신 아저씨들마저 무섭다. 숙소에서 마지막 채비 후 최대한 짐을 안 푼 체 하루를 마무리했다.
눈을 뜨니 아침 여덟 시. 늦게 잤는데도 일찍 일어났네. 2차로 눈을 뜨니 10시. 어영부영 준비하고 나니 벌써 11시 20분. 우이도는 안 그래도 열악한데다 + 설 연휴라 더더욱이 문을 안열 테니 먹을 걸 다 사들고 가야 하는데.. 다행히 숙소 바로 앞에 슈퍼가 있어 엄청 급하게 대략 6 끼니와 맥주를 집어 나온다. 남은 건 뱃시간까지 8분. 네이버 지도엔 850여 미터 거리라고 나와있지만 이미 너무 땀을 흘렸어.. 때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 정말 아찔하게 도착해 배표를 끊고 11:40 섬사랑 6호에 승선한다. 배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없다. 아마 지금까지 내가 탄 섬으로 가는 배 중 가장 한산했던 것 같다. 설 연휴라서 그랬을까?
섬에 닿기까지 세 시간 반쯤 걸린다고 본 것 같은데 근 네 시간이 걸렸다. 내가 머물 민박집이 우이도 1구, 2구 중 더 들어가야 하는 2구에서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급하게 알아보고 가는데 숙소까지 구한 게 어디랴. 민박집 중에는 설 연휴라 전화를 받지 않거나 영업을 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섬에 도착하니 숙소 주인께서 경운기를 타고 나와 계시다. 거기에 짐을 싣고 가뿐하게 걸어가니 작은 돈목마을에 숙소가 보인다. 바로 여기 근처에 옹기종기 민박집이 모여있다. 숙소 안에는 (전화로 물어본 대로) 가스와 식기들이 구비되어 있다. 예전에 갔던 조도의 산수장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엔 상가 거리도 있고 버스도 다니고.. 여기에 비하면 규모가 엄청난 섬이었다)
<방, 나의 6끼니 양식>
짐을 풀고 나니 시간은 5시 남짓.. 해가 지기 전 모래언덕이나 볼까 하고 길을 나섰다. 그 가까운 거리도 헤매다 조금 더 나서니 보이는 바다, 해변, 그리고 저 멀리 말로만 듣던 모래언덕. 그리고 길변의 풀숲에서 염소들이 풀을 뜯다가 내 인기척을 듣고 일제히 고개를 들어 경계한다. 엄청나게 귀엽다. 다가가니 모두 도망간다. 겁쟁이들.... 귀여워..
그렇게 다다른 돈목해변. 저 멀리 작게 보이는 것이 풍성사구. 해변을 따라 걸으니 표지판에 탐방로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 얼마 안 오르니 사구 정상이다. 들어가지 말라는데 정확히 어디까지 가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은 말뚝이 박힌 '길'이라고 여겨지는 곳 안에서 여기저기 둘러본다.
사진으로 보고 상상한 것과는 약간 달리 규모도 작았지만 ㅡ 뭐, 우리나라 여행하다 보면 항상 겪는 일이기에 그러려니 한다. 우리나라는 자연경관/볼거리라고 해도 규모가 몹시 작게 마련이다. 예전에 모래 해변이 넓게 펼쳐져 있다고 해서 혹해서 갔던 신두리 해안사구도 생각났다. 모래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규모는 그곳이 여기보다 큰다. 단 우이도는 규모보다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모래언덕이라고 한다. 섬에 다른 볼거리도 있으니 일단 이걸로 만족하고 다시 내려와 남은 서쪽을 돌아보기로 한다.
조금만 더 나아가 보니 성촌마을이다. 성촌마을 초입에 다시 모래가 펼쳐져 따라가 보니 엥.. 바다가 보이면서.. 아까와는 달리 바다쓰레기가 잔뜩이다.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지.. 하니 이 곳 위치 특성상 이 부근뿐 아니라 동남아, 중국, 일본의 해양쓰레기가 몰려오는 곳이라고 한다. 안내판까지 있다. 실제로 바닥에 널부러진 많은 페트병, 쓰레기가 외국에서 흘러온 듯 하다.
쓰레기들을 보고 씁쓸한 기분을 뒤로 한 체 숙소로 도착. 중간에 염소들과 접선을 시도하였으나 또다시 겁쟁이들이 잔뜩 경계를 하며 모두 도망가 버렸다. 아기 염소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데.. 원체 한적한 곳이다 보니 염소 뿐 아니라 길거리 강아지들마저 외지인을 상당히 경계한다.
내일은 상산봉에도 오르고 띠밭 너머 해변도 보고, 1구 쪽에도 가볼 예정이다. 아.. 여유롭다. 이 자유. 배 밑이 따닷하다. 비록 모든 것이 갖춰진 숙소는 아니지만 그 어디보다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