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mmii Mar 21. 2018

혼자 하는 여행

종종 국내, 국외로 혼자서 여행을 다닙니다.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제 생각, 그리고 초심자를 위해 서울 근교에 부담없이 가볼만한 곳 등에 대해 끄적거려 보았습니다.



혼자 여행을 처음 한 건 2006년 호주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엔 골드코스트란 곳에 연고 없이 홀로 지내던 터라, 기숙사에서 한없이 게을러지는 걸 떨쳐내기 위해선 방에서 나와야만 했다. 한 번 길을 나서면 걷기의 연속이었다. 갔던 곳을 또 가기도 하고 해변에 가서 몹시 어색하게 모래사장에 앉아있기도 하고 공원에 가기도 하고 신발이 거슬려 맨발로 다니기도 했다. (호주에는 완전 시내가 아니고선 맨발로 다니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워낙 한적한 곳이라 남 눈을 많이 의식하는 나도 큰 부끄럼 없이 도시를 활보할 수 있었다. 사실 음악만 귀에 꽂고 다니면서 무슨 생각을 하며 다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여행을 시작했지만 거의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였다. 어쩔 땐 절박하게 구걸하다시피 누군가를 꼬셔서 끌고가기도 했다. 혼자 떠나기엔 주머니 사정 때문에 부담도 되고, 왠지 겁이 나던 어릴 적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주머니 사정은 더이상 문제되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떠나가기 시작했다. 여자도, 남자도, 애정을 갈구하고 거기서 행복을 얻는 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연인관계에 몰두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하나 둘 연애나 결혼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구걸을 하려고 해도 친구는 바닥이 났지만 떠나고자 하는 갈망은 점점 더 커지자, 둘 중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걸 포기하는 것. 그건 오랜 연애 끝 이별과 함께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빠르게 지친다. 지옥 같은 출퇴근길을 반복할수록,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피로해지고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점점 자주 들었다. 그래서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서울을 벗어나게 되었다. 운이 좋으면 누군가와 함께였지만, 대부분 혼자였다. 일방적으로 손을 내밀기만 하다 보면 누구나 지치듯이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데 쉼 없이 나만 누군가를 원하는 것 같아 지치기도 하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모두 연애감정에 행복에 겨워있는데 나까 짓 게 그걸 깨는 느낌까지 들고..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나에겐 혼자 하는 여행이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는 대단하다 용감하다고 했다. 혼자 여행한다는 건 완전히 자유롭고 온전히 나의 존재를 몸소 느끼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가감 없이 말하자면 사실은 누구도 나와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퍽 좋아하지도 않기에 혼자 여행하는 것에서 점점 더 많은 이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 울적함을 쿨하게 벗어던질 수만 있다면, 혼자 여행은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서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Pros

동선, 시간표, 갑작스러운 계획의 변경, 그 어떤 것에서도 자유롭다.

사소한 의견차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배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마음껏 멈추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길을 잃거나 꾸물거리거나 늦게 일어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할 대상도 필요도 없다.

결정장애는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더 심해진다고 생각한다. 모든 결정을 내려도 내 마음이다. 확실하고 단호해진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창피해할 필요가 없다. 저렴하고 구린 숙소에서 자도, 비싼 돈 줬는데 숙소가 최악이어도 옆에서 불평하는 사람도, 핑계 대야 할 사람도 없다.

기동성 좋은 나를 막는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다.

다른 취향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행할 때에는 밥 먹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맛집 찾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인연에 대해 활짝 열려있다. 특히 해외여행할 때 많이 느끼는 점.


Cons

일부 음식점에 들어가면 난감하다. 특히 고깃집은 최소 2~3인분 주문이 원칙이라며 혼자 왔다고 하면 기분 나쁘게 대한다.

사진 찍어주는 사람이 없어..

가끔 고독함.

어둑할 때, 외진 곳에서 약간 무서울 때가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단점. 추억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기피하는 편이라 숙소도 모텔이나 에어비앤비로 잡기 때문에 애초에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 새로운 인연 같은 거 딱히 필요도 없지만. 그런데 해외여행에서는 혼자 다닐 때 뜻하지 않은 것을 마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인연이라든지, 즐거운 추억 같은 것.



신기한 일인데, 나에게는 여행지에서 사람을 피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비수기, 사람이 드문 시간대를 은연중에 잘 선택해서인지, 사람들을 많이 마주치지 않는다. 물론 이 점이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이다. 예전에 제주 한라산을 관음사 코스로 오른 적이 있는데, 새벽 5시쯤 오른 백록담까지의 등반길에서 하산하는 젊은 아저씨 딱 한 명을 봤다. 덕분에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산이 '둥둥둥' 웅장한 기운을 내뿜는 소리를 들으며 산을 올랐다. 아마도 자연의 웅장함 속에서 고독함  비슷한 것-하지만 유쾌한-을 느꼈던 것 같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데 혼자 가는 것이 망설여진다면 부담이 덜한 서울 근교부터 시작해도 좋다. 혼자 숙소를 잡는 것이 무서울 수도 있으니까. 나도 지방은 많이 가보았지만 서울 근처는 많이 못가봤는데, 비교적 최근에야 근교 탐방을 시작했다. 서울 근교 여행은 대부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고, 지방보다 인프라가 그나마 잘 갖춰져 있어 교통사정이나 식당 찾기 등도 무난해 난이도가 높지 않다. 물론 뚜벅이 여행자에게도 OK. 하지만 초라한 곳도 많으니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다.(우리나라가 뭐 그렇지 ^^;) 내가 가본 곳은

안양 예술공원 : 야외 조각공원 정도로 봐도 무난한데, 거닐기 좋다.

파주 헤이리 마을 / 프로방스 마을 / 출판단지 / 평화누리공원 (다 보려면 하루에 안됨) : 가장 더울 때 2박 3일로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 별로인 곳도 있었지만 돌아볼만 한 곳이었다.

오이도 빨간 등대 / 옥구공원 : 바닷가를 산책하기도 좋고, 횟집도 즐비해 있다.

포천 산정호수 / 명성산 / 아트밸리 : 나는 너무 늦게 출발해서 산정호수밖에 못 봤지만, 명성산은 억새를 볼 수 있다고 하고, 아트밸리라는 곳도 유명하다.

의정부 북한산 둘레길 / 회룡사 / 과학박물관 / 부대찌개거리 : 의정부 역시 너무 늦게 출발해서 북한산 둘레길은 못 가봤지만.. 경전철도 타보고 시장도 가보고 재미있었다.

부천 아인스월드 : 세계 각국의 명소를 미니어처로 만든 야외 미니어처 공원


안양예술공원 &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오이도 빨간등대 생명의 나무 & 포천 산정호수
의정부 과학도서관 & 부천 아인스월드


혼자 여행을 처음 하게된 건 오래 전이지만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소한 것들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즐기게 되었다. 요즘은 여행의 모든 순간이 좋지만, 특히 좋아하는 순간들을 꼽자면

국내 여행할 때 고속버스 라이딩. 우등고속버스 맨 앞 1인 좌석에 앉아 발을 쭉 뻗고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 눈 앞에 넓은 시야각으로 도로 풍경이 펼쳐지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특히 심야버스.

동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집이랑 가까워서 꼭 여행할 때가 아니더라도 종종 들르는데, 서울에 있는 버스터미널 중 가장 정이 간다.

어느 지방의 모텔방에서. 나는 막 여행지에 도착해서 모텔방에 들어갈 때가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모텔은 좀 위험하고 꺼림직하지 않냐고들 하지만 나는 이 '에드워드 호퍼'적인 분위기에 좀 꽂힌 것 같다. 그 특유의 가구 배치, 싸구려 스킨과 로션, 재떨이와 같은 소품들이 자아내는 ‘특징 없는’ 분위기.

시골 시내버스 라이딩

여행지에서 사람이 없거나 혼자일 때. 나 정말 날 너무 잘 잡은 것 같아 하며 좋아한다.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물론 멀찍이서 보고 좋아하기만 하고 절대로 다가가진 않는다.

고속버스의 낭만
동서울터미널
별 것 아닌 것의 낭만


혼자 여행하는 것은 별 것이 아니다. 거추장스럽지도,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혼자 밥 먹는 것, 혼자 전시회를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고, 혼밥 혼여라고 이름 붙이고 호들갑을 떨만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기 위해 큰 요령도 필요하지 않다. 나의 경우.. 관계에 대해, 내가 왜 혼자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멈추자 내 눈 앞에 펼쳐진 것과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지치고 답답할 땐, 홀가분하게 홀로 떠나보자. 타인과 배려에서 자유로워진 채로 콧구녕에 바람을 넣어주면, 마음 속에 숨 쉴 공간이 생긴다.




작가의 이전글 I am an INTP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