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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 상담사 May 20. 2023

서른 즈음에

단편집 시리즈 #3

늑대야,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너한테 잘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내가 아무리 어리석어도 자식이 잘못되길 바래서 그러지는 않았을테지.

언제 어디에 있든지, 늘 건강에 힘쓰고 겸손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래.

내일은 맛있는거 먹고 좀 쉬면 좋겠다. 

생일 축하해.


- 엄마가 


엄마의 짧은 글에 답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타자기를 잡았다. 다음은 그 글의 전문이다. 


서른 즈음에


  드디어 서른이다. 대체 서른이면 홀로 설 수 있다는(홀로 서야 한다는) 공자 말씀이 무슨 뜻인지

고등학교 때부터 궁금해만 하던 서른이 드디어 왔다.

  난 생일이면 늘 복잡한 마음이 든다. 엄마 아빠의 결혼 기념일과 같은 날이기 때문에 유치원때부터 ‘저 케잌은 무엇을 위한 케잌인가? 날 위한 것인가? 엄마 아빠의 결혼 기념을 축하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컸다. 부모님과 나는 항상 서로 선물 준 거라고 치자고 퉁쳤고, 나의 생일은 특별한 날이라는데 뭔가 받아야만 할 것을 못 받은 기분에 씁쓸하기만 했다. 그렇게 1년 365일 중에 나를 위한 날 하나를 잃었다.

  성당에 다니게 되면서 내 생일은 그저 크리스마스, 성모마리아 대축일, 동방박사가 예수 찾으러간날 등등 겁나 대단하신 예수애기씨 관련 행사들이 싸그리 다 끝나고 바로 다음 주에 오는 그냥 저 멀리 있는 부활절을 기다리는 주(대림)였다. 이미 연말연초의 성스럽고 특별한 흥분은 모두 사라져 버린. 쓸쓸한 대림. 이게 뭔가.. 뭔가 중립적인 연중도 아니고, 고통받는 사순도 아니고 대림이라니. 사당동 대림아파트에 사았던 나는 대림이 진짜 싫었다. 게다가 꼬마 반주자에게 생일 주에 성당이란 21세기에 존재하는 아동 노동착취의 현장일 뿐이었다. 반주자가 생일이라고 코딱지만한 성당에 하나 있는 반주자가 놀러가 버리면 이 불쌍한 초등부 아이들은 무반주로 미사를 해야 하는데. 책임감 강한 슈퍼 K-장녀인 우리 엄마가 하느님한테 천벌받을 일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예수에게도 생일을 빼앗긴 나는 생일마다 산타와 천사와 예수 사이에 혼자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 대해 아는 욕을 다 하는 반주자로, 어쩌다 보니 취미는 피아노요 특기는 신성모독인 아이로 커버렸다. 아닌가? 취미가 신성모독이고 특기가 피아노일지도.

  무언가 사랑 비슷한 걸 받은 것 같긴 한데 해마다 생일 날이 되면 그 기억은 지워지고, 작년 오빠와 남동생이 받은 선물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고, 올해도 두 형제가 받을 선물을, 특별해질 그들의 생일날을 질투했다. 어쩌면 부모님이 가장 뜨겁게 사랑을 고백하고 가족으로의 결속을 다짐했을, 사랑이 가득한 날에 태어났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왜 나는 항상 버림받은 기분이었는지 나는 문득 지나친 성당의 광고문에서 알고 말았다.


P. S. 밑도 끝도 없는 이 글은 이럴거면 날 왜 낳았냐고 지랄떨던, 엄마는 지금 남보다도 못하다며 너무 솔직하게 말해버린 것에 대한 뒤늦은 사죄의 글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너무 진짜 마음을 말해서 엄마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닥.. 미안하지 않다는 사실이 미안하다.


엄마, 맨날 생각에 빠져 자주 넘어지는 딸 때문에 항상 걱정이고

딸은 지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딴청에 물어보면 이해안되는 말만 내뱉어서 매번 외로워졌을거

고,

무슨 말을 해도 아파하는 딸 때문에 뭔가 잘못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꼈을,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사랑한다는 말도 절대 안 하는 어딘가 이상하고 아픈 딸의 보호자가 꾸

역꾸역 되어주는,

나의 가장 큰 거울이자 내 세상인 엄마에게도 평화를 빌며.

낳아줘서 고맙고, 이정도면 우리도 남들보다는 나은 관계라고 하자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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