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네 상담사 May 22. 2023

가족의 짐

단편집 시리즈 #4

여자는 가족이 짐스러웠다.

여자는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원에 가서 박사과정을 밟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나중에 보트와 페라리를 사달라는 농담을 하고, 어머니는 돈 나올 구석은 여자밖에 없다는 식의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대학원을 다니는 여자의 삶은 경제적 풍요와 한참 거리가 멀었다. 학자금 이자에, 학비에, 생활비에 허덕거리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그녀에게 가족들의 노골적인 기대는 분노를 일으킬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차피 여자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부모님이 기대를 하던 말던 상관하지 않았으면 되었을 일이다. 근데 그 당시에 여자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저 이해받지 못한 마음에 화가 날 뿐이었다.


분노를 숨긴 채 살아간지 5년차가 되던 어느날이었다. 여자는 어느 새벽 자살을 결심한다. 이 세상 아무도 그녀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나름 촘촘한 논리와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늘어나는 업무량과 달리 늘 같은 월급, 아프다한들 지켜야하는 마감일, 분노를 일으키는 가족까지.. 여자는 다 세트로 묶어 도매로 팔아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수면제의 개수를 세어봤다. 책상에 여서일곱개의 수면제를 나란히 놓고 빤히 바라봤다. 나중에야 안 거지만 수면제의 치사량은 1500알이었다. 어찌됐든 여자는 유서를 쓰고 수면제를 털어넣었다. 현관문은 배터리를 빼고 잠금을 풀어놓았으니 언젠가, 누군가 그녀를 생각하게 되면 발견될테다. 아니면 고독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일찍 발견되었다. 추석 즈음이었기에 가족모임을 하자는 연락이 왔었기 때문이다. 연락이 닿지 않자 여자의 동생이 집에 찾아와 모든 속을 게워내고 실신해 있는 여자를 봤다. 동생은 응급실에 간다. 유서가 발견되자 여자는 정신병동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때부터 여자가 가족의 짐이 된 것은 한순간이었다. 가족의 병수발은 물론이고 퇴원하고 나서도 혼자 살게 냅둘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여자는 동생네 집에 얹혀살게 된다.


이런 형편이 된 여자는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가족들이 짐스러웠던 느낌은 허상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실제로 가족들이 요구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 비해, 지금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것은 여자라는 것은 여자의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동양철학을 전공한 여자는 갑자기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떠올리게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것에 항상 의문을 가졌던 그녀는 자신이 그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흐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 즈음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