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형 & 안정형, 안정형 & 기타유형, 몰두형 & 무시적 회피형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안정적인 사랑을 하면 참 좋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방금 살펴본 성인 애착 유형의 조합을 통해 그들만의 사랑의 방식을 살펴보자.
1. 안정형과 안정형
연인 관계에서 친밀성을 추구하는 안정형은 안정형과의 연애가 가장 즐겁다. 연인의 기쁨에 동참하고 고통의 신호에 공감적인 반응을 하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섬세하고 효과적인 도움을 제공하려 노력한다.
자신 또한 상대에게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다가간다. 이들의 연애는 선순환될 가능성이 높으며, 서로의 발전을 도모하는 장기적 연애로 발전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연대는 더 두터워지며,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로, 둘 사이에 쉽게 다른 대상이 들어오기가 어렵다.
애착 유형 조합 중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서 만나기는 어려운 조합이라 하겠다. 일단 내가 안정형이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사랑에 빠진 사람, 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안정형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나와 상대방의 애착 유형을 파악하고 서로에게 맞는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는 점이다.
2. 안정형과 다른 불안정형(몰두형, 무시적 회피형, 공포적 회피형)
연인 관계에서 안정형이 친밀성을 추구하며 다가갈 때, 몰두형은 이 신호를 과하게 해석할 가능성이 높고, 몰두형 또한 강하게 안정형을 끌어당기려 할 것이다. 안정형의 연인은 몰두형의 연인에게 비난과 모욕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고, 자신을 향한 몰두형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금세 벗어나려 할 것이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맬빈 유달(몰두형)과 캐롤 코넬리(안정형). 괴팍한 강박증 환자인 자신을 그나마 사람 대접해 주는 캐롤에게 사랑을 느낀 맬빈은 캐롤에게 직진하지만, 서툰데다가 일방적인 그의 방식에 캐롤은 금방 지쳐버린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방적인 사랑을 견디지 못한다. 캐롤의 단단하고 안정적인 마음이 없었더라면 사랑을 위해 자신을 바꿔나가는 맬빈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반면, 안정형과 무시적 회피형은 연인 관계의 초입까지는 갈 수 있지만, 깊은 관계로는 가기 어려운 조합이다. 안정형이 다가가려 하면, 무시적 회피형은 부담스러워하며 멀어지려고 하고, 이 거부 신호의 반복은 안정형에게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다. 따라서 안정형과 무시적 회피형의 관계는 연인 관계가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깨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안정형과 공포적 회피형 또한 마찬가지다. 공포적 회피형의 친밀감을 원하는 신호로 안정형이 다가가면, 공포적 회피형은 도망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도를 서너번만 반복하면, 안정형은 공포적 회피형과의 연애가 혼란과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며, 관계를 지속할 의지를 잃게 된다.
하지만 안정형의 안정감이 공포적 회피형의 불안을 누그러뜨리면서 깊은 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미녀와 야수>의 벨과 야수는 안정형과 무시적 회피형의 전형이다. 야수는 조금씩 마음을 여는 벨을 무시로 일관하지만, 야수의 외모와 거친 성격에 대한 편견 없이 자신의 본 모습을 알아주는 벨에게 야수는 결국 사랑을 느낀다.
안정형과 공포적 회피형의 예는 <플랜맨>의 유소정(한지민 분)과 한정석(정재영 분)에서 찾을 수 있다. 소정이 자신의 세계에 끼어드는 것을 기겁하며 두려워하던 정석은 어느새 소정에게 스며들고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안정형과 다른 유형들과의 관계는 안정형이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랑에 몰두하는 몰두형은 사회적 기술이나 맥락 파악 능력 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회피형에 속하는 이들 역시 사랑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면 이들도 나름대로 노력은 하겠지만 이들의 진심을 알아주고 부족한 사회적 기술들을 인내해주는 안정형의 의지가 중요한 관계라 하겠다.
3. 몰두형과 무시적 회피형
애착의 불안 차원이 높은 밀착형과 회피 차원이 높은 무시적 회피형은 정반대로, 놀랍게도 ‘안정형과 안정형’처럼 장기적 연애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조합이다. 하지만, 이 관계는 ‘고통스럽게’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문제 상황에서 무시적 회피형은 끊임없이 도망가려 할 것이고, 밀착형은 무시적 회피형을 쫓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관계를 통해 안식을 취할 수 없을지라도 서로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유형의 조합이다. 이들의 연애를 지켜보는 외부자의 입장에선 이들의 관계가 위태로우면서도 끈끈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둘만의 애정 세계와 그 세계에 통용되는 가치관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몰두형과 무시적 회피형의 관계는 어떻게든 ‘이어져간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현진헌(현빈 분)과 김삼순(김선아)은 계약 커플로 시작된 관계였다. 오래지 않아 삼순의 당당하고 엉뚱한 매력에 빠져든 진헌은 관계를 삼순과의 진전시키려 하지만, 삼순은 진헌의 마음을 젊은 재벌의 치기 혹은 만용으로 치부하고 거부한다. 우여곡절 끝에 여러 장애물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헌의 진심을 확인한 삼순은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정조와 덕임 역시 몰두형과 무시적 회피형의 사랑을 잘 보여준다. 정조는 어릴 때부터 덕임을 사랑하여 두 번이나 고백했지만 그때마다 퇴짜를 맞는다. 승은을 입으면 곧 후궁으로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궁녀가 왕의(왕위에 오를 사람의) 구애를 두 번이나 거절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전제국가의 군주가 일개 궁녀에게 선택권을 주고 그녀의 마음을 얻을 때까지 기다렸다는 사실도 놀랍다. 결국 20년이 넘는 짝사랑 끝에 세 번째 고백만에 정조와 덕임의 관계는 이루어질 수 있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옷소매 붉은 끝동>의 사례처럼 몰두형의 꾸준한 구애는 무시적 회피형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식은 곤란하다. 현대 사회에서 상대의 거절이 확실하다면 꾸준한 구애는 곧 스토킹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