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상적인 공교육이 실현될 수 있을까
2024년과 2025년은 한국 교육 정책에 있어 중대한 변화가 있는 해입니다. 세계 최초로 초중고 교육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AI 디지털 교과서(AIDT)를 도입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교과서의 형태를 종이에서 디지털로 변화시키는 것을 넘어, 인공지능(AI)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을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교육계는 물론 산업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열린 ‘2024 에듀테크 코리아’ 박람회를 비롯하여 여름방학 동안 진행된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서는 이 AIDT의 프로토타입이 소개되었고, 이를 둘러싼 논란이 교육계와 에듀테크 산업에 불고 있습니다.
오늘은 2조 5천억 원에 달하는 디지털 교과서 시장을 둘러싼 논란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AIDT는 단순히 종이 교과서를 디지털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AI 기반의 코스웨어, 대시보드, AI 튜터, 챗봇 등을 교육 현장에 접목하여 학생 중심의 자기주도적 학습과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AIDT가 도입되더라도 여전히 수업의 주체는 교사이지만, AIDT는 수업의 보조 역할을 하며 학생 개개인의 학습 속도와 수준에 맞춰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제공하고, 교사와 부모에게 실시간으로 학습 데이터를 제공한다고 발행사들은 설명합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학습 속도와 능력에 맞춰 공부할 수 있고, AI가 음성과 언어를 인식하기 때문에, 다문화 사회에서의 언어 학습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또 그동안 학습했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여 AI가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 우려되는 지점도 존재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기기에 대한 과의존 현상이 심화되면서 미국, 프랑스, 영국에 이어 네덜란드 등에서도 교실 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디지털 기기를 통한 교육을 공교육에서 세계 최초로 전면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디지털 기기를 통한 학습이 학생들의 문해력을 유의미하게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도 하고, 단순한 문제풀이의 반복으로 이어진다면 도입 취지가 훼손된다는 논란, 그리고 교사와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활용 격차가 곧 교육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학생별 맞춤형 학습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실제로 문제를 풀고 그 데이터를 대량으로 수집하고 분석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 및 윤리적 문제도 함께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 AI 디지털 교과서 사업은 당장 내년부터 수학, 영어, 정보(코딩) 과목에 시범 도입한 뒤 추후 모든 과목에 대한 AIDT 전면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대규모 사업입니다. 한 과목당 6~10만 원가량의 연 구독료를 기반으로 추산해보았을 때 시장규모는 최대 연 2조 5천억 원에 달합니다.
이렇게 큰 시장이 새롭게 생겨난 만큼, 기존의 교과서나 문제집을 발행했던 기업들과 새롭게 도전장을 던진 에듀테크 스타트업들은 그야말로 기업의 명운을 걸고 새로운 성장동력인 AIDT 사업에 올인했습니다.
그러나 11월 AIDT의 공식 검정 결과 발표를 앞두고 최근 AI 디지털 교과서 내부 검정 결과가 일부 유출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수학과 정보(코딩) 과목의 교과서들이 무더기로 검정을 통과하지 못하자, 수십억 원의 예산을 투자한 발행사들이 패닉에 빠졌습니다. 이에 개발 일정을 무리하게 재촉한 교육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한편, 해외에서도 학교 내 디지털 교육 환경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국·검·인정 교과서 체제를 비롯해 교육환경에 유사점이 많으며 최근 교육의 디지털 전환에 대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기가스쿨' 정책을 통해 학생 1인당 1대의 디지털 기기를 제공하고, 교내 무선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문부과학성은 'MEXCBT'라는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개발해 디지털 교육 환경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일본 교육 정책의 부족과 기기에 대한 여러 제약과 이해도 부족으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의 경우 한때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했다가 다시 종이 교과서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디지털 교과서 사용이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와 학습 효율성 감소로 이어졌다는 스웨덴 왕립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른 것입니다.
일본과 스웨덴의 사례를 살펴볼 때, 좋은 정책이 추진되어도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될 지를 더 많이 숙고해야하는 부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책 추진에 따른 부작용까지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AI는 전 세계의 산업과 융합되며 산업 전반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기존 아날로그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야구에서도 AI가 도입되며 한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AI가 하는 ABS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현장에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 야구 관계자들이 한국에 방문하기도 했죠.
특히 얼마 전 OpenAI에서 발표한 새 LLM인 ‘OpenAI o1’은 이제 스스로 정보를 바탕으로 추론해서 답을 내리는 영역에 도달했습니다. 이번 LLM의 시연을 지켜본 사람들은 교육 분야에서의 활용도가 매우 두드러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특히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AI 디지털 교과서 사업의 성공 여부가 앞으로 교육 현장에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AI 디지털 교과서가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물론 AIDT 사업은 지금의 찬반을 둘러싼 논란과는 별개로,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결국 내년부터 실제 사용하게 될 학생들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빠른 피드백과 보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에듀테크 ‘산업’이기 때문에 어른들의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학생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한국의 성인들은 그동안 공교육이 맞춤형 교육을 주장했지만, 현실은 얼마나 획일화된 교육이었는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미래세대가 AIDT를 기반으로 진정한 의미의 맞춤형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스웨덴의 사례를 참고하여 교육 현장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한다면, 그것이 곧 디지털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고 국내 에듀테크 산업의 발전과 함께 교육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