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윤 Nov 07. 2022

갓 끓인 김치찌개의 힘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기대버리고 만 사람이 있었다. 유난히 특별한 기억을 많이 만들어주었던 그 사람이 갑자기 내 곁을 떠나간 것은 스물한 살의 여름방학이었다. 인생의 황금기와 같이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던 그때,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자기 맞닥뜨리게 된 이별로 나는 갑자기 삶의 모든 것이 무료해지고 말았다. 끝없이 피어올라 터지던 폭죽놀이의 시간은 끝나고 정적이 흐르자 내 귀에는 폭죽 소리보다도 시끄럽고 날카로운 이명이 가득해 괴로웠다. 낮밤 없이 활기차게 돌아가던 서울의 내 세계는 멈췄고 무력하게 자취방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초침 흐르는 소리, 내 눈물이 고이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그 좁은 원룸을 채우는 조용한 소음들에 귀와 머리가 터질 듯 괴로워지자 서울로 대학을 온 후 외면하고 지냈던 고향이 생각났다. ‘집에 가볼까?’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샤워를 한 후 뿌옇게 김이 차오른 욕실 거울에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갈비뼈가 보일 듯한 몸이 슬쩍 비치자, 그 마음은 곱절로 깊어져 그길로 고향 가는 차를 타버렸다. 일단 제대로 된 밥이라도 먹자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내심 집밥과 더불어 가족과 함께하는 삶, 익숙하고 따뜻한 고향 품을 만나면 내 모든 아픔이 치유될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무언가에 의지해 생긴 상처를 다시 다른 것에 의지해 회복하고자 한 비겁한 마음이었다. 네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고향 땅은 그 존재만으로 날 안아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낯설기만 했다. 내가 외면하고 지냈던 시간만큼 이 땅은 성실히 내게서 멀어져 있었다. 나는 괜스레  터미널에 없어진 카페 하나에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 이제 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붕 뜬 존재가 되어버린거구나!’하는 탄식 또한 터져나왔다. 가족과 떨어져 낯선 곳에 홀로 살기로 한 결정, 언제고 날 버리고 홀연히 떠나갈 사람에게 눈과 귀와 걸음의 방향 모든 것을 의지해버린 것, 모든 것이 사무치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곳에 왔으니 집밥만은 나를 위로해줄 터였다. 엄마는 약속이 있어 저녁에나 돌아오시지만, 다행히도 부엌엔 김치찌개가 남아있다고 하셨다. 엄마의 김치찌개 생각을 하니 이주 만에 배고픔이란 것이 느껴져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사투리도 아니고 서울말도 아닌 애매한 발음으로 아파트 이름을 겨우 내뱉었다. 택시를 내려 공동현관문 앞에 서자, 그제야 지난해 엄마에게 자진 반납했던 현관문 카드가 생각났다. 경비 아저씨에게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102호 딸이에요. 문 좀 열어주세요.”

“102호에 딸이 있었단가?”

퉁명스러운 답변에 의심스러움이 묻어있었지만 어쨌든 현관문은 열렸다. 기억을 더듬어 도어락을 열고 짐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뒤, 급히 부엌으로 향했다. 외할머니의 시큼한 묵은지로 끓인 김치찌개가 있었다. 밥솥에서 따뜻한 밥을 큰 그릇에 퍼내고, 보글보글 신 냄새가 진동할 만큼 뜨거워진 김치찌개를 그 위에 얹어 식탁으로 향했다. 

‘그때 그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나.. 문자를 좀 덜할 걸 그랬나..’

그 맛있는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천장 위로 후회의 말들이 맴돌았다. 하지만 이런 의미 없는 후회들은 결코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그 식탁에서 한 달여의 식사를 빠짐없이 해치우던 시간 동안 선명해지는 후회는 하나뿐이었다.

‘너무 그 사람 뒤만 쫓지 말고 함께 걸어갈걸.‘

그 사람이 좋았던 이유는 나를 끌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샅샅이 보게 하고 새롭게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십 대 초입에 펼쳐진 방대한 갈래의 길 앞에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던 내게 그는 놓치고 싶지 않은, 세상으로 향하는 튼튼한 끈처럼 느껴졌다. 있는 힘을 다해 끈을 당기며 딸려오는 즐거움들을 맛보고 있던 나는 갑자기 끊긴 줄에 주저앉고 말았던 것이다. 매일같이 창문 밖으로 세상 구경을 하던 고양이가 갑자기 창문 앞에 오를 수 있던 의자를 잃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리워한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가 하게 해주었던 그런 경험들이었을 것이다.


방학도 무기력한 침대 생활도 끝을 향해 달려가던 날, 텁텁하기만 했던 여름 공기 위로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이마 위를 스쳤다. 그 바람 덕이었던지, 꾸준히 갈비뼈 위를 덮어 오르던 엄마의 집밥 덕분인지, 비로소 그리운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선명히 보이기 시작해서인지, 나는 그 이별의 괴로움을 끝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그 시작으로 내 생애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개강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이 여행을 하려면 내일 당장 떠나야 했다. 밤새 노트북을 뒤져 가고 싶은 곳을 찾고, 기차표를 예매했다. 여행하며 들을 곡들도 미리 선정해 담아두고, 손으로 꾹꾹 눌러쓸 일기장도 배낭에 넣었다. 어쩐지 멈춰있던 시계가 갑자기 빠르게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내 귀를 괴롭히던 소음들도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에 자리를 뺏긴 듯 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여전히 조금은 처지고 날 선 어깨로 기차를 타던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내가 못내 걱정되었는지 역까지 따라 나오셨다. 여름 내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묵묵히 삼시세끼를 챙겨주시던 엄마는 실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조마조마했던 것 같았다. 어디로 갈 건지 언제 도착하는지 짧은 브리핑으로 엄마의 걱정을 가라앉힌 뒤, 연락하겠다는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열차에 올라탔다. 십 분쯤 지나 열차가 역을 완전히 벗어나자, 드넓은 벌판이 훤히 보였다. 완행열차의 창문을 힘주어 열자 가을바람이 모자를 위아래로 흔들며 기세 좋게 쏟아져 들어왔다. 머리가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왜 지금껏 나는 나에게 이런 순간을 선물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남이 주기만을 기다린 것일까. 열차는 곧 바다 가까이 다다랐다. 걸어서 바다를 갈 수 있는 역에서 내렸다. 근처에서 사과를 하나 사서 삼사 십 분 걷다 보니 바다가 보였다. 솔직히 말해 그다지 아름다운 바다는 아니었지만, 왠지 이어폰도 빼고서 멍하니 오래도록 바라보게 되는 곳이었다. ‘혼자서 바다를 보면 이렇게나 파도 소리가 크게 들리는구나.’ 백사장도 아닌 방파제 앞 콘크리트 바닥에 걸터앉아 생각했다. 입 안에 짠 기운을 사과 한 입으로 게워내다가 문득 나는 그가 없이도, 혼자서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차올랐다. 핸드폰을 꺼내 바다 사진을 한 장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그리고 주머니에 다시 넣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에게 문자가 한 통 왔다.


‘떠나는 너의 모습을 보며 불안하고 걱정이 되면서도 대견해서 눈물이 나더구나.

자신 있게 너를 사랑하는 모습 보기 좋다. 항상 너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라. 그래야 남들도 너를 사랑해주고 너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거야.’


아무것도 말해준 적이 없었는데, 엄마는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구나. 그리고 내가 혼자 나아갈 수 있도록 든든히 먹였구나. 나는 그날까지 제대로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도, 나를 사랑해본 적도 없었다. 그 여름 내가 겪은 것은 이별의 아픔이 아니라 성장통에 가까웠다.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걸음마를 떼고 있었다. 갓 끓인 김치찌개의 힘으로. 


작가의 이전글 유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