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선생이 2014년 부상을 딛고 복귀했을 때 프로모션 영상으로 삼은 곡이 바흐의 샤콘느였다. 1974년 샤콘느를 녹음한 이후 42년만의 일이었다. 거의 다스베이더급의 압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복귀였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74년 앨범의 곡들이 복귀작에 포함된 탓에 무척이나 반기는 이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로 2년 뒤 정경화 선생을 만나볼 기회가 생긴 적이 있었다. 일 때문이었는데 인터뷰 대상이 바로 정경화였다. 기뻤다. 아직 인터뷰를 누가 할지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서 혼잣말 비슷하게 ‘나 정경화 엄청 좋아하는데’ 라고 열심히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별로 경청하지 않는다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도 샤꼰느를 들을 때면 안타깝게 무산돼 버린 만남이 떠오른다.
나이를 먹고 나서는 더 그렇게 느끼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귀를 기울이는 스킬만 가지고 있을 뿐, 정작 상대방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저장하는 법을 잘 모른다. 인류의 문해력은 점점 떨어지는데 정성도 집중력도 날이 갈수록 희박해지는 느낌. 게다가 좀 모진 소리를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발언은 꼬박꼬박 기억해 놨다가 일기장에 적고(아마도), 끝내는 SNS에 올려서 조리돌림하는 일에는 열심이다. 그래서 저절로 과묵한 남자가 되었냐면 그렇지는 않고, 쓸 데 없는 말만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랜 시간 이렇게 단련하면 내 마음 저 밑바닥까지 참 너그럽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되어야 맞을 것 같은데, 그냥 마음 속에는 여전히 꼰대가 가득하고 그 사실을 물타기하기 위한 농담만 늘어놓은 사람이 되었다. 퇴근 무렵이 되면 “집에 가도 뭐 특별히 특별한 일도 없는데,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가?”라고 굳이 말하지 않는다. 주말을 제외하고 월요일날 답을 주겠다는 피드백이 있으면 “나이는 숫자, 달력의 빨간 색은 컬러에 지나지 않아!”고 말했다가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갈 수도 있기에 자제한다.
아무리 봐도 여기가 로도스(Rhodus)고, 지금-여기에 스스로를 쌓아 올리는 것 말고 지름길은 없다고, 지금-이곳의 먼 바깥 따위를 끊임없이 상상만 하는 일이 결국 자신을 폄훼하는 과정으로 수렴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고. 와우...어째 하고 싶은 말의 내용이란 것이 어쩌면 모조리 이렇게 꼰대 같은가.
말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그래서 나도 그냥 탄소규제에 발맞춰 마음의 굴뚝마다 저감장치를 단다. 아무래도 나는 화석 연료 세대라 일과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쏟아부을 때마다 마음의 굴뚝에서 무럭무럭 꼰대의 연기를 피워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원래는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다. 정경화 선생의 아름다우면서도 완강하고 압도적인 연주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내 몫의 이야기가 아닌 모양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의 내용이란 게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랴. 꼰대를 탈출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 속에 있는 꼰대의 목소리를 자제할 줄 아는 어른이 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한사코 감추는 정치 소비자들을 흔히 샤이 보수, 샤이 진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정치적으로 나는 스스로를 샤이 꼰대라고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