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벌써 아득하게 느껴지는 새내기 시절에, 충무로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을 때 난 몹시 설렜다. 설렘의 이유는 아마도 '충무로'라는 장소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충무로가 낳은.. 충무로를 뒤흔든..으로 시작되는 각종 수식어 구들은 그 당시 갓 스무 살이 되었던 나에게도 몹시 익숙한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충무로라는 데엘 갔을 때는..
실망 그 자체였다.
영화의 본거지라는 충무로는 어색할 만큼 휑했고, 그 많은 충무로의 아들딸들은 어딜 갔는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거리에서 막 영화 찍고 그런 일들이 당연한 곳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나마 영화와 충무로를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를 딱 하나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대한극장'이었다.
단관극장으로 1956년에 문을 연 대한극장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70mm 영사기를 도입했고, 각종 대작들을 상영하며 이런저런 기록을 세움으로써 우리나라 영화의 역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2000년 멀티플렉스가 주류가 되면서 이곳 또한 단관극장이라는 옷을 벗게 되었고......... 등등의 대한극장에 대한 이야기는 선배님이기도 한 어떤 교수님께서도 종종 들려주시곤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은 늘 "그러니까 대한극장 많이 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개를 최대한 치켜들고 올려다보아야만 한눈에 들어오는 이 찬란한 역사의 대한극장은 사실 나(를 비롯한 다수의 또래들에겐) 약간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없어질까 봐 늘 걱정스러운.. 그런 존재랄까. 갈 때마다 사람은 별로 없는데 매번 만 원에 2명 관람권에 팝콘에 콜라까지 주는 행사를 하고, 영화와 관련된 굿즈들을 이벤트로 주기도 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곳.
하지만 그건 비단 대한극장만의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주로 CGV나 메가박스, 롯데시네마라는 이름이 아닌 곳들이 그랬다. 그렇게 신촌 아트레온이 CGV 아트레온이 됐고, 종로 피카디리가 롯데시네마 피카디리가 되었다는 소식에 씁쓸할 틈도 없이 CGV 피카디리가 되었을 땐 이게 다행인 건지 끔찍한 건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 어디 극장이 또 사라졌다더라- 하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나는 대한극장이 걱정됐다.
내가 대한극장을 좋아하는 건 -영화비가 어마어마하게 비싼 요즘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어서도 있지만- 언제나 주류든 비주류든 상관없이 다양한 영화들을 걸어두고 있어서다. 어떤 영화가 몇 백만을 넘었다더라 하는 헤드라인이 보일 때면 영화관에서도 그 영화만 반강제로 봐야 하는 일이 대한극장에선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줄지어 앉아있는 이들의 폭넓은 연령대를 마주할 때면 이곳이 가진 매력은 배가 된다. 이십 대건 육십 대건 상관없이 함께 나란히 앉아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영화를 보게 되는 일은 흔하고도 멋진 일인 것 같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에 갔는데 옆 칸에서 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휴지를 좀 줄 수 있냐는. 약간은 민망했지만 휴지를 둘둘 말아 아래 틈 사이로 건넸더니, 할머니는 화장실 칸 사이로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오셨다. '씽'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고, 특히 무슨 노래가 제일 좋았다고 흥겹게 말씀하시는 할머니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적당한 대답을 돌려드렸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대한극장이어서 생길 수 있는 민망한 즐거움이 아닐는지.
어제 포털 사이트에 '대한극장'을 검색했다가 기사를 하나 읽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정본 대한극장 회장 별세>
고인은 한국영화의 본거지인 충무로 복판에 위치한 대한극장을 영화 관람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극장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한평생 헌신했다. 초창기 단일관이던 대한극장을 멀티플렉스로 과감히 변신시켰고 영화 보기 좋은 스크린, 영화 보기 좋은 사운드, 영화 보기 좋은 좌석을 만드는 것을 운영의 제1원칙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고인은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극장 내 커피숍 등에서 관객 모니터링을 하며 개선 사항을 반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내 최초로 극장과 지하철 역사를 연결시킨 것도 고인의 업적이다. 출구 개통 때문에 허가를 하나 받는 데에도 무려 28군데 기관을 전전해야 했다는 고인의 일화는 영화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기사 출처 : 매일 경제)
가끔 대한극장은 어느 봉사단체에서 운영하는 게 아닐까 장난 삼아 상상하곤 했던 나에게 우연히 보게 된 짤막한 기사는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누군가에겐 인생, 또 누군가에겐 청춘이라는 이름의 대한극장.
언젠가 나도 할머니가 된다면 대한극장 어느 상영관 이십 대 사이에서 영화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 있다는 걸 이렇게나마 전하고 싶다.
어느 날엔가 극장 안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를 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