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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바 May 10. 2018

양말과 골목 (2)


 [골:목]

 :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


규칙과 불규칙 사이


 주연보단 조연이 좋다. 걸을 때도 예외는 없다. 큰 길보다 그 옆 길에 눈이 간다.

 일단 들어가보자. 아님 말고! 이런 식이다. 그렇게 골목을 들락날락 하다보면 건지는 곳도 꽤 된다.


 시간이 멈추는 것 같다. 골목 안으로 발을 들이는 그 순간부터. 예전의 홍대, 종로, 을지로, 뭐 이런 곳들. 다 다른 시간을 가지고 있어, 시간여행을 하기엔 딱이다.

 근데 골목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자니 리스본이 먼저 떠오르는 건 왜일까.


 2015년, 첫 배낭여행을 갔다. 첫 번째 나라는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숙소찾기. 지도 어플을 켰다. 걷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그냥 걸었다. (그럴거면 지도어플은 왜...)


 리스본 언덕은 만만치 않았다. 길도 좁았다. 트램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로.

 그래도 다행이었다. 어디로 걸어가든 길은 다 나왔다. 없는 건 일행이요, 있는 건 시간 뿐이다. 조급함 따윈 없었다. 그래서 계속 걸었다. 보이는 길이 있으면 무작정 들어갔다.

 다른 장면들이 펼쳐졌다. 큰 길로 걸었을 때완 달랐다. 누가 알고 찾아올까, 싶은 가게들. 잔잔한듯 치열한 삶들. 길 속에 차곡차곡 숨어있었다. 좁은 골목에 기대어있는 빨래와 벽 한가득 짜잔하고 맞아주는 그래피티.

 혼자 있는 기분이 너무 쓸쓸하다던 양동근의 골목길과는 달리 이 풍경을 독차지하는 느낌이었다. 걸음이 닿는 골목 사이를 누볐다. 그러다 다시 큰 길로 나왔을 땐 9와 4분의 3승강장에서 튕겨져나온 기분이었다.

 일정한 간격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벽을 타고 피어난 식물 같은 불규칙이 있다.

 아름답게 어지러운 불규칙과 규칙 사이를 걷는 게 좋다.


 

지나치게 일상적이어서


 그냥 둘 다 내가 좋아하는 거! 라고 말하기엔 괜히 민망해서 양말과 골목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해봤다.


 첫 번째, 시간이 흐를수록 특유의 냄새가 난다.

인정? 어인정.


 두 번째, 둘의 형태를 가만히 떠올려보자. 비슷한 구석이 있다. 양말은 발의 입장에선 막다른 골목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아 이게 안 먹히네


 세 번째, 은밀하다.

애써 시선을 던지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이다. 양말도, 골목도.

.... 이쯤되면 나 변태 맞는 거 같다.


 마지막,

 한 번은 친구에게 너에게 양말은 뭐야? 하고 물었다. 양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냥 신는 거. 친구는 양말에 대해 묻는 나에게 놀랐고 나는 양말이 그냥 신는 거라니! 하며 놀랐더랬다.

두 가지 모두 그냥 하루, 하루의 모습이다. 맨발로 신발을 신기 뭐해서 양말을 신고, 어딘가를 가기 위해서 골목을 걸어가고. 그리고 이 지나치게 일상적인 것들이 내가 양말과 골목을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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