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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바 Mar 21. 2019

어제의 적, 오늘의 동생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적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동생이 되었다 



 지나치게 평화로워서였나. 그래서 그런 시련이 온 걸까. 열네 살 여중생의 평화로운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고 뚝 떨어진 동생이라는 것은, 내가 쌓아둔 모든 것들을 무너뜨렸다.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은 심술과 이별, 눈물뿐이었다. 함께 지내온 강아지가 떠난 자리는 유독 커 보였다. 강아지의 빈자리를 보며 더 크게 투덜거렸지만 되돌릴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내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정이 빠른 편이라는 것. 놀랍게도 난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게 됐는데 (아니면 지금 돌이켜보니 비로소 이렇게 느끼는 걸지 모르겠다. 사실은 엄청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을 수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느끼고부터는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방 안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말 생기겠구나. 동생이라는 것이.. 그래, 동생이 생긴다면... 



돌림자를 해보고 싶어! 



책상에 앉아 연필을 쥐었다. 끄적였다. 내 이름이 바른이니까.. 바 돌림? 른 돌림? 바보다는 른 돌림이 낫겠다. 음, 가른 다른 마른.. 다른은 너무 스카이 핸드폰 같고 (한창 It's different라는 카피가 흥했을 시절이었다.) 마른은 말라야 될 것 같고.. 음.. 푸른?! 푸른 괜찮다!


엄마한테 달려갔다. "엄마! 동생 이름으로 푸른 어때?"


"좋다~!"


그냥 '좋다'라고 호감만 표시하시는 줄 알았는데 정말로 동생의 이름은 푸른으로 결정되었다. 땅땅땅! (박수소리) 심지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아빠, 할머니, 이모들까지도 바른이 동생 이름이 '푸른'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이름이 이렇게 쉽게 지어지는 거였나? 



갑자기 설렜다. 동생이 좋아졌다. 





바른 푸른아, 너는 만약에 이름을 바꾼다면 어떤 걸로 바꾸고 싶어?


푸른 바꾸기 싫어!


바른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애써 참으며) 왜?


푸른 나는 지금 '푸른'이 마음에 들어


바른 그래도 만약에, 만~~약에 바꾼다면 어떤 걸로 하고 싶어?


푸른 나는 그냥 푸른.


바른  (광대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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