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바 Jun 15. 2021

부러뜨리거나 부러지거나


부러뜨리다

어리바리 따라 들어간 회의에서 들려온 다섯 글자가 생경했다. 같은 팀 선배에게 물어보니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정해지고, 마무리될 때 쓰는 말이라 했다. 가령 “이번 미팅에서 뿌러지면.. ^%#]*%”하고 말하면서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는 느낌이랄까.


광고회사에 들어와 처음 배운 말이자, 가장 중요한 . 비바람을 헤치고 높디높은 광고주라는 산을 무사히 넘었다는 의미이므로.


부러뜨린다는 말을 듣자 언젠가 TV에서 엉덩이 사이에 나무젓가락을 끼우곤 어떻게 해서든 나무젓가락을 뿐지르기 위해 얼굴이 새빨개지던 사람이 떠올랐다. 웃음 따윈 신경 안 쓰고 치열하게.


그리고 첫 직장에서 처음으로 배운 직장용어가 덩달아 소환됐다. 아직도 그날의 풍경이 생생하다. 어느 날,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처음 보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슈가 생겼는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선 포미닛의 핫이슈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난 항상 하릿하릿하릿하릿 이이이이이이잇쓔~!" 광대가 들썩이려는 걸 꾸욱 참았다. 지금은 웃어선 안될 것 같다고 내 직감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꾸만 삐져나오는 핫이슈 멜로디에 일시정지 버튼을 꾸욱 눌렀다. 나의 눈물겨운 노력을 알 리가 없는 그들은 한참 뭐라 뭐라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그날 나는 이슈가 반갑지 않은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 쓰는 말이란 걸 알게 되었다. (억울해서 굳이 밝히지만 내 잘못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러니까... 광고회사에 들어온 나에겐 무언가를 부러뜨릴 일들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정말로 그랬다.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무사히 온에어 될 때까지는 부러뜨려야만 했고, 그 과정은 정말 험난했다.


숱한 야근을 거쳐 부러뜨림의 ㅂ 정도에 다가가는 느낌이 들다가도 광고주 피드백에 다시 리셋되는 날들. 부러뜨린다라는 어감처럼 명료하게 딱! 두 동강 나면 좋으련만, 어째 이를 악물고 피 쏠린 얼굴로 낑낑거리다가 엿가락처럼 늘어나버린 프로젝트 앞에서 이러다 내가 부러지겠다 생각이 들곤 하는 걸까. 만약 내 엉덩이에 나무젓가락이 있었다면, 미동도 않는 나무젓가락에 잔뜩 상처만 입었을 것 같다. 괜히 아픈 느낌...


나도 부러뜨릴 수 있을까? 부러지긴 싫은데. (구)부러지면 좀 나을까? (구)부러지거나 (현) 부러지거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