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뜨리다
어리바리 따라 들어간 회의에서 들려온 다섯 글자가 생경했다. 같은 팀 선배에게 물어보니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정해지고, 마무리될 때 쓰는 말이라 했다. 가령 “이번 미팅에서 뿌러지면.. ^%#]*%”하고 말하면서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는 느낌이랄까.
광고회사에 들어와 처음 배운 말이자, 가장 중요한 일. 비바람을 헤치고 높디높은 광고주라는 산을 무사히 넘었다는 의미이므로.
부러뜨린다는 말을 듣자 언젠가 TV에서 엉덩이 사이에 나무젓가락을 끼우곤 어떻게 해서든 나무젓가락을 뿐지르기 위해 얼굴이 새빨개지던 사람이 떠올랐다. 웃음 따윈 신경 안 쓰고 치열하게.
그리고 첫 직장에서 처음으로 배운 직장용어가 덩달아 소환됐다. 아직도 그날의 풍경이 생생하다. 어느 날,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처음 보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슈가 생겼는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선 포미닛의 핫이슈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난 항상 하릿하릿하릿하릿 이이이이이이잇쓔~!" 광대가 들썩이려는 걸 꾸욱 참았다. 지금은 웃어선 안될 것 같다고 내 직감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꾸만 삐져나오는 핫이슈 멜로디에 일시정지 버튼을 꾸욱 눌렀다. 나의 눈물겨운 노력을 알 리가 없는 그들은 한참 뭐라 뭐라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그날 나는 이슈가 반갑지 않은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 쓰는 말이란 걸 알게 되었다. (억울해서 굳이 밝히지만 내 잘못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러니까... 광고회사에 들어온 나에겐 무언가를 부러뜨릴 일들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정말로 그랬다.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무사히 온에어 될 때까지는 부러뜨려야만 했고, 그 과정은 정말 험난했다.
숱한 야근을 거쳐 부러뜨림의 ㅂ 정도에 다가가는 느낌이 들다가도 광고주 피드백에 다시 리셋되는 날들. 부러뜨린다라는 어감처럼 명료하게 딱! 두 동강 나면 좋으련만, 어째 이를 악물고 피 쏠린 얼굴로 낑낑거리다가 엿가락처럼 늘어나버린 프로젝트 앞에서 이러다 내가 부러지겠다 생각이 들곤 하는 걸까. 만약 내 엉덩이에 나무젓가락이 있었다면, 미동도 않는 나무젓가락에 잔뜩 상처만 입었을 것 같다. 괜히 아픈 느낌...
나도 부러뜨릴 수 있을까? 부러지긴 싫은데. (구)부러지면 좀 나을까? (구)부러지거나 (현) 부러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