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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Feb 26. 2022

국내 레트로여행지 좋아하는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부여 규암마을, 서천 판교마을, 대전 소제동, 보령 청소역

글. 사진 ⓒ 여행작가 봄비


처마에 또렷하게 켜진 조명, 투박한 간판, 벗겨진 페인트칠, 어렴풋이 보이는 '장미 식당'이라는 글귀. 드르륵 여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햇살이 일렁이는 이른 시간. 여기가 영업하는 곳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창문 안 풍경은 어둑어둑하다.


안으로 들어서니 '어서 오세요' 방긋 웃으며 우리를 반기는 주인장. 나는 이런 골목을 좋아한다. 좀 더 그럴싸하게 말하자면 골목 탐방이라고 말하고 싶다. 키가 작은 건물들이 쪼르륵 일렬로 세워져 낡음을 자랑한다. 이 낡음은 요즘 것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멋이 있다. 나는 그 멋을 사랑한다. 그게 어디 나뿐이겠는가. 인터넷에 '레트로 여행지'만 검색해도 그 결과가 수두룩 빽빽하니깐. 오늘 소개하고 싶은 여행지는 '레트로 여행지'다. 레트로? 음, 사전적 의미론 '복고풍'을 이야기한다.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 우리 주변엔 그런 풍경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꼭 그 시대를 살지 않아도 좋다. 나보다 더 오래된 것들임에도 마치 그 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묘한 향수가 생기니깐.



● 부여 규암마을



애니메이션 영화 '카(car)'에서 주인공 맥퀸은 고속도로에서 길을 잃고 우연히 한적한 마을에 도달한다. 예전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주변에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마을. 그 마을에서 맥퀸은 조금은 느리지만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갑자기 웬 영화 타령?나는 부여 규암마을에서 영화 '카(car)'가 떠올랐다.



부여 백마강과 맞닿은 마을, 규암마을이 처음부터 이렇게 남루했던 것은 아니다. 백마강 인근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렸고, 마을에는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부여 규암마을이 중심지에서 멀어지게 된 것은 백제대교가 개통되면서부터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멈췄고, 마을과 함께 건물도 세월을 먹었다. 그런 규암 마을이 최근 몇 년 사이 생기가 돋기 시작했다. 마을은 생각 외로 활기찼다. "오늘 영업해요." 공방 앞에는 사람들이 오고 갔고, 그 옆집은 레스토랑, 또 옆집은 카페가 자리하고 있었다. 높은 임대료로 쫓겨나듯 도시에서 벗어난 젊은 청년들과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온 어르신들이 힘을 합쳐 마을에 활기를 더한 것이다. 이런 변화라면 적극 찬성이다.


규암문화마을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오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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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천 판교마을


서천 판교마을은 부여 규암마을에선 차로 27분 거리다. 부여 규암마을과 비슷한 느낌이 들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이 마을 역시도 한때는 충남 3대 우시장이 들어서고, 8,000명이 넘는 주민이 살 정도로 번화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바뀌면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8년 장항선 직선화 사업으로 마을 속에 자리한 기차역이 마을 밖으로 이전되면서) 자연스레 시간이 멈췄다.


검은 녹이 쓴 건물, 쓰러질 것 같은 2층 높이의 일본식 가옥, 아귀가 맞지 않은 철판 문과 문이 굳게 닫힌 가게. 이곳은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많다. 그나마 영업하는 집도 겨울이라 문을 꾹 닫았다. '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그래도 어렵사리 냉면집 한 곳이 문을 열어 그 안에서 식사를 했다.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다정한 인사를 나누며 네모난 프레임 안에 그 오래된 것들이 담겼다. 이곳도 언젠간 규암마을처럼 다시 활기를 되찾겠지?


판교역 장항선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저산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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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소제동


대전 소제동은 앞의 두 여행지와는 조금 다른 레트로 여행이다. 레트로 여행이라 쓰고 카페 탐방 또는 먹방 투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대전역 바로 뒤편에 자리한 소제동 골목은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곳이다. 1904년 경부선과 호남선 개통으로 대전역이 교통의 요지가 되자 일본 철도 관료들이 이곳에 와서 대거 거주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대전역 주변으로 철도 관사촌이 생긴 것.



당시에는 북관사촌과 남관사촌이 함께 있었지만, 6.25 때 폭격으로 대폭 소실되고 그마저 있던 것도 도시화로 소실되면서 현재는 100년이 넘는 건물은 40여 채만 남아 있다. 이 관사촌은 국내에 남아 있는 관사촌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그렇게 손길이 닿지 않던 폐가에 활기를 더한 것은 역시나 젊은 예술가와 청년들이다. 비어 있던 고택을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탈바꿈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였다. 무엇보다도 대전 소제동의 이점은 대전역과 가깝다는 것(뚜벅이 여행자는 대환영이다). 게다가 건물마다 다른 분위기를 풍기니 카페 탐방이나 먹방 투어뿐만 아니라 사진 찍기에도 좋은 곳이다.


치앙마이방콕            

대전광역시 동구 철갑3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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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령 청소역


마지막 여행지는 보령 청소역이다. 기차역이지만 기차 타고 가기 힘든 곳이다. 그렇다고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상행선과 하행선을 합쳐 하루에 딱 8번만 정차하는 역. 몇 년 전 자료를 보니 1년에 40명이 이용하는 간이역이라고 한다. 덜커덩덜커덩 흔들리는 장항선 기차를 타고 까무룩 잠들 뻔하다 청소역이라는 말에 덜컥 아무런 계획 없이 기차에서 내렸다. 그날 그 기차에서 내린 사람이 나뿐이었다. 그렇게 기차는 떠났고 다음 열차는 3시간 뒤에나 있다는 사실을 도착 후에나 알았다.


초록 지붕과 하늘색 외벽으로 이루어진 보령 청소역은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로 국가등록문화재 제305호에 등록되어 있다. 근대 간이역사의 건축 양식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한다. 역사 안에는 민트색의 의자가 놓여 있고, 벽에는 이곳에서 찍은 드라마 촬영 장면이 담긴 액자, 이곳의 역사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진 액자가 전부다. 창 너머엔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청소역에서 나오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1980년대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담은 실화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나왔던 거리가 보인다. 사진을 몇 방 남기고 보면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그럴 땐 청소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철도 건널목으로 간다. 가끔, 아주 가끔은 청소역을 지나는 기차를 주변 시골 풍경과 함께 담을 수 있다. 뚜벅이로 이곳을 왔다면 천천히, 더 천천히 여행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것이 또 이곳의 매력이 아닐까?


청소역 장항선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청소큰길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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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그저 새롭게 뚝딱 만들기보단 옛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며 한 데 어우러진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곳엔 새로운 것이 흉내 낼 수 없는 이야기와 역사가 있다. 사부작사부작 걸으며 그 이야기를 사진에 담았다. 이번에 소개한 곳은 충청도에 자리한 레트로 여행지다. 아무래도 내가 충청도에 살다 보니 그럴 수밖에. 다음 여행지는 어디로 떠나볼까?



충남 여행 코스 소개 영상 '여행작가 봄비'

더 예쁜 사진을 보고 싶다면 봄비 인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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