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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별 Oct 22. 2017

옷장 정리

옷장 정리를 하다가 낯선 원피스 한 벌을 발견했다. 제법 가격이 나갈 것 같은데 이상하게 본 기억이 흐릿했다. 내 돈을 주고 샀으면 낯설 리가 없는데. 이 원피스를 어디서 구했는지 떠올려보다 생각난 건 당신이었다. 당신은 내게 생일 선물이라며 이 원피스를 내밀었더랬다. 나는 잠깐 기쁘다 곧 흙빛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그 원피스는 딱 봐도 내 몸에 맞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마르고 여린 여자가 입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옷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그저 고맙다고 말하며 쓰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생각해서 골랐다는데 어떻게 싫은 티를 내겠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쓸데없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선물은 하는 사람의 취향도 반영될 텐데, 혹시 내가 이런 옷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걸까. 하지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사람은 될 수 없는데. 집에 돌아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대중이 틀렸기를 바라며 원피스를 입어봤다. 안타깝게도 내 눈은 정확했다. 원피스는 그 후 옷장 깊숙한 곳에 딱 한 번 잠시 입어본 상태로 방치되었다. 당신은 가끔 자신이 선물한 옷의 행방을 물었고, 나는 요즘 살이 쪄서 안 들어가니 다이어트를 하고 입겠다며 변명을 했다. 몇 번 더 그런 대화가 반복됐다. 그러다가 평범한 연인들이 그렇듯 우리도 자연스레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사귀게 된 친구가 당신의 현재 애인이다. 친해지고 보니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당신과 찍은 사진이 있었던 거다. 원피스를 보고 있자니 문득 친구가 생각났다. 여리고 마른 체형.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옷장 정리 중인데 안 입는 옷이 나왔거든.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가져갈래? 친구는 예의 그 해맑은 목소리로 그러겠노라고 했다. 당신은 그녀가 이 원피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그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까. 혹은, 자신이 이 원피스를 선물했던 언젠가의 애인을 잠깐은 떠올릴까. 예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쳤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어차피 이미 다 끝난 사이. 원피스를 꺼내 먼지를 턴다. 새 주인에게 보내줄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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