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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e Nov 20. 2018

그런 당신이라서 참 고맙습니다

조건 없이 나를 지지해주는 유일한 사람, 엄마

하나.


‘장래희망’이 적힌 종이를 처음 받았던 건 아마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세일러문과 웨딩피치를 즐겨보던 꼬맹이는 주인공 언니들이 입은 옷이 어찌나 예뻐 보였던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적어 넣었다. 신기하게도 내 장래희망을 적는 란에는 칸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부모님이 희망하는 장래희망을 적는 칸이었다. 흐릿해진 기억이지만 우리 엄마는 항상 내가 먼저 적어놓은 장래희망을 그대로 따라 적으셨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희망으로 바꿔 쓰셨다.


“엄마는 내가 됐으면 하는 직업 없어?”


그때는 몰랐다. 내 꿈을 존중해주는 일이 나에 대한 무관심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처음으로 장래희망을 적었던 날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래희망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에도 엄마는 한결같았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봐”


이제는 잘 안다. “해봐”라는 그 한 마디에 얼마나 큰 힘이 담겨있는지. 조건 없이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엄마라는 것도, 내가 엄마 삶의 원동력인 것처럼 엄마 또한 내 삶의 강한 원동력이 된다는 것도,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20여 년 전 (아마도) 내가 색칠하고 엄마가 쓴 숙제용(?) 편지. 냉장고에 붙어있다.


둘.


3주나 고민한 끝에 카카오프렌즈샵에서 ‘니니즈’ 키링을 샀다. 나름 용기를 내서 처음으로 구매해본 키링이었기에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퇴근하고 온 엄마한테 짠- 하고 보여드렸다. 다행히도, 엄마는 “이런 걸 왜 사”라는 나무람 대신 “뭐야아~~”라며 크게 웃었다. 서른을 앞둔 딸이 카카오프렌즈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우리 엄마였다. 새로 나온 캐릭터라는 말과 함께 사실은 북극곰인데 저주에 걸려서 토끼가 됐다는 귀여운 설명도 덧붙였다. “아휴 참”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웃음 짓던 엄마는 백팩에 달고 다닐 거라는 말에 잘 어울릴 거 같다며 호응해주셨다.

구매를 하고 가방에 달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너무 귀여운 걸.

아, 맞다. 그런 사람이 우리 엄마였지. 잠시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도 내 선택을 존중해주는 사람.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나는 딸이 엄마 캐리어에 라이언 스티커를 잔뜩 붙여도 웃음만 짓고 넘어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 엄마였다.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좋아해 주는 유일한 사람.


(비밀인데) 아래에 스티커가 더 붙어있다.



저녁을 먹고 빤질빤질한 귤을 하나 까먹고 있는 엄마 옆에 찰싹 붙었다. 마지막 한입거리가 남자 기다렸다는 듯 냉큼 집어먹었다. 엄마는 다시 다른 귤을 하나 더 꺼냈다.


“엄마, 내 자식이지만 내가 먹던 귤을 이렇게 뺏어 먹으면 되게 얄미울 거 같은데 엄마는 안 그래?”


“낳아봐~~~ 그렇게 되나~~”


어린 시절 엄마와 싸울 때면 엄마는 늘 “그래, 너 닮은 애 낳아서 키워봐”라고 말했고, 나는 “나 안 닮은 애 낳아서 엄마랑 다른 엄마가 될 거야”라며 말대꾸를 했었다. 아이를 낳는 것도, 이 사회에서 한 명의 아이를 건강한 성인으로 키우는 것도 자신 없었던 나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 닮은 아이를 낳아서 엄마 같은 엄마가 되겠다고. 엄마처럼 "하고 싶은 걸 해봐"라고 언제나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해주는 그런 엄마가 되어서 지금의 나 같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두 번째 퇴사를 하고 나서 부쩍, 그런 당신이 나의 엄마라서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기쁨도 슬픔도 늘 함께해주는 당신이 나의 엄마라서 오늘도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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