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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성 May 15. 2016

스승님, 선생님, 멘토님

동창회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취업 전에는 1년에 한 번씩은 중고등학교 반 모임을 가지곤 했었다. (특히 중학교 3학년 12반) 회장이라는 감투 하나로 종종 연락책을 맡곤 했는데 가장 어려운 일이 선생님께 연락드리는 일이였다. 정말 고마우신 분인데 무엇이 그리 어색했는지 선뜻 전화드리기가 참 어려웠다. 지레 먼저 벽을 치며 선생님께 연락도 드리지 않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넘기기도 했다. 존경하는 마음은 참 표현하기가 어렵다. 좋은 형, 누나, 친구 등은 솔직한 감정을 작게나마 드러낼 때가 있었지만 따르고 싶은 스승, 어른에게는 불편했다. 언젠가 뜻이 닿겠지라며 애써 속마음을 숨겼다.


우리 개개인이 누군가에게 존경의 감정까지 느끼긴 쉽지 않을 것이다. 빼어난 인품, 도덕심, 배려와 관용 등 그의 모든 모습이 대단하게 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특별히 돋보이는 면에 존경심이 생길 수도 있다. 사실 이러한 감정이라면 누구나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무엇이든 퍼주고 싶은 마음일텐데 그 정도로까지 해본적이 없다. 오히려 수동적인 직원, 내성적인 아이. 그들에게 비춰진 모습은 어쩌면 이게 다일지 모를 정도로 참 소극적이었다. 부끄러운 감정이 크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이 말로는 채우지도 못할 뿐더러 너무 뻔한 인삿말로 느껴졌다. 존경하는 마음만큼 '스승님'들께 좋게 비춰지고 싶지만 선뜻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글로나마 이렇게 부끄러운 편지를 적기는 하는데 그래도 연락 한 번씩 드려야겠다.


스승의 날을 돌이켜보며 지금까지 참 존경하는 사람도 없이 살아왔음을 느낀다. 그릇이 작아서일까, 아님 사람보는 눈이 없는 건지 누군가를 보면 안좋은 면부터 찾기 일쑤였다. 이런 '깐깐한 잣대(?)'에 걸려들면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곤 했다. '당신이 그러면 그렇지' 꼰대, 개저씨 잣대에 맞춰 비웃기도 했고 맞지 않는 성격을 상대방의 인격 문제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건방지게 누군가를 쳐내고 쳐냈다. 마음을 안주는 건 그 다음이었다. 그래서 '존경'이란 단어는 사실 정말 낯설다. 앞서 언급한 몇몇 존경하는 분들은 손에 꼽을 정도고 아마 주변 사람들도 '저 아이가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라고 하면 갸우뚱 할 것이다.


어릴적 아이는 순수했다. 할아버지를 찾아 손자의 학교까지 찾아온 사람들을 단호하게 쫓아냈던 선생님, 엄하셨지만 항상 보듬어주시고 인생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주셨던 선생님. 가장 존경했던 두 분에 대한 기억은 단순하지만 지금까지도 강렬하다. 그들이 끝까지 잃지 않았던 것은 상대방에게 보였던 '인상'이자 '초심'이었다. 10대의 어린 애에겐 그것이 존경의 기준이 되곤 했다. 20대에서는 '지혜'였다. 낭만파라고 여겼던 몇몇 교수님이 계셨다. 오후에 바깥에 누워서 하늘을 보라는 과제를 주셨던 러문과 교수님. (그 분의 수업은 정말 열정적이고 낭만적이었다.) 전공인 경제학과에서는 그냥 멋진 분 투성이였다. 전공공부는 참 못했지만 그 와중에도 교수님 칭찬은 빼놓지 않을 정도였다. 유쾌하면서도 악명높은 수업 난이도로 진정한 고수의 면모를 보이셨던 김 모 교수님,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버스에서 만나 인사드렸더니 그렇게나 반가워하시던 학구파 백 교수님. 가깝게 다가가진 못했지만 참 존경하는 분들이고 여전히 먼 곳에서 응원하고 있다.


직장을 구한 20대 후반 그리고 30대에 들어서자 아쉽게도 존경의 잣대를 마구잡이로 들이대서 그런지 진정 '멋짐'을 가지신 분은 많이 찾지 못했다. 기준도 현실에 맞는 맞춤형 '스승'이자 '멘토'찾기로 바꼈다. 지금 생각나는 건 역시 작년 팀장님, 합리적이고 인품도 좋으셔서 조직장의 면모를 어김없이 뽐내던 분이셨다. 돌이켜보면 생각 외로 따르던 분들도 많았는데 현실에 치이고 있다는 핑계 때문에 쉽게 다가서지도 못했다. '존경'도 해본 사람이 알고 해본 사람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스승은 어쩌면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일 지도 모른다. 타인을 보는 시각에 편견과 반감만을 내세우는 일도 이제 접어야겠다. 마음을 열고 조금씩 다가서는 것,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뒤늦게라도 '스승'에게 전하는 진정한 반성이자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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