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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말라잎 May 26. 2024

너의 새로운 친구들

베를린에서

'VisitBerlin'이라는 베를린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베를린의 봄은 언제 인가요?”라는 질문이 있다. 그 질문에 달린 답변이 재미있는데 “공식적인 봄의 시작은 3월 20일이지만 베를린의 날씨가 협조할지는 모르겠습니다”란다. 


베를린에서 맞는 첫겨울이 끝나갈 무렵 내 평생 처음으로 봄을 격렬하게 갈망했다. 시간이 흐르면 찾아오는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었다. 마치 생존에 관계된 무언가를 기다리는 느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시사철 햇빛을 듬뿍 받던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갈망이었다. 3월이 되자 나는 나도 모르게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내리쬐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런 바람들이 모여 하늘에 닿는지 3월 말, 4월 초가 되면 베를린에는 며칠간 해가 내리쬐는 날들이 있다. 해가 없어 서늘하게 추운 베를린의 긴 겨울에 너무나도 반가운 햇살이다. 아직 봄이 올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올해는 혹시 조금 일찍 봄이 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망상을 하며 그 햇살에 기꺼이 속는다. 모든 베를린의 시민들은 봄이 시작되기를 아니, 긴 겨울이 제발 끝나기를 이렇게 간절히 기다린다. 


2022년 봄, 베를린에는 또 다른 의미의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갑자기 난민이 되어버린 수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우크라이나의 봄은 베를린의 봄과 비슷할까? 그곳도 봄이 살짝 왔다가 다시 겨울이 되곤 할까? 그들은 고향에 두고 온 봄을 베를린에서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완전한 이방인으로 이곳에서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있을까? 나는 도로에서 우크라이나 번호판을 달고 달리는 자동차를 볼 때마다, 구호 텐트가 서 있는 중앙역 앞을 지날 때마다, 전쟁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그들의 봄을 생각하곤 한다. 2022년 2월 25일 이후로 겨울에 멈춰 있을 것 같은 그들의 시간을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는 재난이나 전쟁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운 마음에 기부금 조금 보내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나라와 나라가 맞닿아 있는 이곳에서 듣는 이웃 나라의 전쟁소식은 한국에서 듣던 다른 나라의 내전이나 전쟁소식과는 다르다. 매일 전해지는 소식들이 손 끝에 닿을 것처럼 가깝다. 이제껏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전쟁의 조각들이 너무 쉽게 내 일상의 조각이 되었다. 길에는 짐을 빽빽하게 실은 우크라이나 번호판을 단 자동차가 심심치 않게 보였고 중앙역 앞에는 적십자의 구호텐트가 있다. 뉴스에는 오늘 기차로 몇 백명의 난민들이 ‘내가 살고 있는 베를린’으로 들어올 예정이라는 소식이 있다. 이곳에서 가장 필요한 도움은 몇 푼의 돈보다 당장 먹을 음식과 몇 개월간 지낼 수 있는 거주지다. 지금 착용할 수 있는 마스크, 지금 입을 수 있는 옷이 필요하다. ‘긴급’이라고 붙어있는 구호물품 중에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아이들이 안고 잘 수 있는 인형을 구한다는 소식이었다. 여성과 어린아이들만 탈출할 수 있다고 읽었던 신문의 소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고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이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슈퍼마켓을 가는 길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에 고향을 떠나온 이들을 만난다. 


가버린 줄 알았던 겨울이 다시 온 4월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연을 날리러 공원에 나갔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연은 하늘 높이 날았다. 처음 연을 날려 본 우리는 흐린 하늘과 상관없이 매우 즐거웠다. 바람을 타고 팽팽해진 연줄을 당기는 딸은 신이 났다. 그런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작은 꼬마 여자아이 하나가 딸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자 딸이 뭐라고 대답했다. 난생처음 듣는 언어였다.


“쟤가 너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Привіт! 프리비아트! 우크라이나 말로 인사하는 거야.”

“너 우크라이나 말을 알아?”

“응, 우리 반에 러시아에서 온 아이가 있는데 걔가 알려줬어. 우리 반에 온 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인사하라고.”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메일을 보내왔다.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베를린에 있는 국제학교이기 때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학생들 모두가 있으니 한 나라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은 자제해 달라는 요청, 폭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될 수 없고 평화적인 종결이 되도록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학부모대표가 주축이 되어 자원봉사 할 사람도 모집하고 여러 가지 후원 물품들도 받는다는 메일도 받았다. 매일 몇 개씩 오는 이메일은 사안의 급박함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메일들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아이의 반에도 우크라이나 학생 두 명이 배정되었다는 소식의 메일도 받았다. 전쟁의 조각이 딸의 일상에도 스며들고 있는 중이었다.


베를린은 이곳에서 새로이 인생을 시작하는, 혹은 잠시 머무는 전쟁 난민을 위해 여러모로 애쓰고 있다. 베를린의 전역의 학교에 우크라이나 학생들을 위한 자리가 배정되었고 그들의 신분보장을 위해 긴급으로 비자지원도 한다. VHS(Volkshochschulen)라고 하는 시민대학에서는 전쟁난민을 위한 독일어 과정도 열린다고 한다. 독일어를 못하는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해 빌코멘클래스 Willkommenklasse(독일어를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반)를 많이 개설하고 있다.


아이의 반에는 두 명의 남학생이 배정되었다. 아이의 학년에 배정된 우크라이나 학생이 2명인데 모두 아이의 반에 배정되었단다. 우크라이나 인사말을 가르쳐 주었던 아이 덕분에 우크라이나 학생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러시아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는 그 아이는 독일어는커녕 영어도 못하는 우크라이나 학생들에게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아이 반의 분위기가 어지럽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되었다. 하지만 그걸 아이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었다. 학교 안의 그 누구도 그 학생들을 특별하게 대하지 않았고 아이도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어? D다.”


하굣길에 아이는 길 건너편의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아이를 향해 손을 마구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그 아이는 아이의 인사를 듣지 못했는지 쳐다보지 않았다.


“쟤가 누군데 그렇게 인사해?”

“D. 쟤가 우크라이나에서 온 아이야.”


나도 모르게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내 속에 준비되어 있던 질문이 불현듯 튀어나왔다. 


“요즘에 우크라이나 아이들은 적응을 잘하고 있어? 너는 걔네들 보면 어때?”

“뭐가?”


아이는 내 물음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대꾸했다. 


“아니, 엄마는 그 아이들이 너한테 어떤 아이들인지 궁금해서.”

“… 그냥 같은 반 친구지.”


그냥 같은 반 친구. 아이가 ‘그냥 같은 반 친구’라고 정의한 그 아이들은 불과 두 달 전에는 이 봄에 독일어를 배우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상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이의 말처럼 그 아이들은 내 아이와 같은 나이의 어린이들일뿐이다. 멀고 먼 길을 공포에 질려 왔을 아이들일 뿐이다. 그 아이들은 이제 내 아이와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되었고 내 아이에게 그 아이들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이가 자연스럽게 건네는 우크라이나 인사말과 아이의 새로운 반 친구라는 그 아이들이, 이웃나라의 전쟁이 뉴스를 뛰어넘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경종 같았다. 그저 올라버린 기름값, 구하기 어려워진 밀가루와 식용유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의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일상이 그곳과 이곳에 ‘지금’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겨워진 코로나 뉴스 이후로 한동안 읽지 않았던 독일 신문을 자주 읽는다. 난민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전쟁상황을 알리는 다양한 기사들이 헤드라인으로 매일 등장한다. 그 뉴스들이 더 이상 신문 속에 박제된 소식이 아니라 내 곁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다.


전쟁이 발발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저녁 산책 길에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흐느껴 울던 중년 남성의 눈물을 보았다. 경찰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러시아 대사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던 그의 앞에 놓여있는 전쟁반대 포스터와 우크라이나 국기는 그의 울음을 더 처연하게 만들었다.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그의 서러운 눈물의 이유는 몰랐지만 한동안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모두 같이 먹먹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지 2년,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이다. 이웃에 사는 우크라이나 가정은 부모님이 걱정되지만 아직 고향에 갈 수 없다고 한다. 아이와 같은 반으로 배정되었던 우크라이나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다. 독일에 적응한 이들도 있고 새로운 기회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한다. 그들은 겨울나무에 숨어있는 새싹 같다. 나는 그들의 봄을 응원한다. 베를린도 언제 봄이 올까 싶은 봄과 겨울 사이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찬란한 봄과 여름이 오듯이 그들에게도 찬란한 봄과 여름이 하루속히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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