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뿐만 아니라,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타사 선후배들을 만나더라도 우리는 모두 선후배였다.
개인적으로 이 문화가 좋았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대기업들이 하나둘씩 프로화를 해 나갔고, 현재 상당수 회사에서 프로 문화가 정착되는 와중에도 이 업종만이 지켜 나가고 있는 선후배 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선배는 후배를 챙겼고, 후배는 선배에게 기댔다. 후배는 선배를 '존경'까지는 아닐지라도 '존중'은 했고, 선배는 후배에게 뭐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제대로 된 선배라면 일말의 이기심도 없이 후배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않았다.
비단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물질적인 부분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에서 선배는 소위 말하는 '역할' 내지는 '노릇'이라는 것을 했다. 후배가 잘못하거나 잘못된 것이 있으면 진심을 담아 조언이나 충고를 해줬다. 후배는 그걸 귀담아 들었다. 적어도 듣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런데 요샌, 주머니도 호구인데 심리적으로는 더 호구되는 것 같다.
라떼는 이런 맛이라도 있었지
"까라면 까라!"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나도 군대보다 더 한 업계의 시절을 견뎌낸 한 몸으로써, 되물림은 너무나도 싫다. 그런데 요새는 어딘가 모르게 무언가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분위기를 만든 책임마저 선배에게 있다면, 그 책임은 회피하지 않겠다.
과장 좀 보태 독재정권의 시대를 버텨냈다. 쌍욕을 들었고, 인격 모독을 감내해야 했으며, 애써 따온 성과가 사지처럼 잘려 나갔다. 꾹꾹 참고 마지막에 한 마디를 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불가능한 매체는 제가 생각하는 언론사의 모습이 아닙니다!"
어떠한 계기로 전 편집장은 회사를 나가게 되었고, 그 바통을 내가 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정말 우연했던 인사였다. 급작스러운 일이라 인수인계 따위는 없었다. 거의 혼자 처음부터 모든 걸 일일이 알아봐야 했다. 허리를 참 많이도 숙였다.
나를 포함해 후배들은 전 체제에서 받은 상처가 컸다. 사옥은 이사를 했다. 2021년 봄이었다. 새로운 계절, 새로워질 것만 같은 느낌을 타고 신사옥에서 으쌰으쌰 했다. 정식 편집장 1년 차. 개인적으로도 적응이 필요했고, 후배와의 연차 차이는 훨씬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피폐해졌다. 규율은 잡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2년 차, 그러니까 작년 들어 조금씩 성과에 손을 댔다. 3개년 계획(1년 차 힐링, 2년 차 정착, 3년 차 도약)으로 이미 선포를 한 뒤였다. 그렇다고 많이 댄 건 아니었다. 퍼포먼스가 눈에 띄게 떨어질 때만 조금씩 잔소리를 했다.
전체적 분위기는 작년 다수의 기간 동안 나쁘지 않았지만, 달라진 기류에 후배들도 조금은 더 긴장하고 때로는 불편했으리라. 그렇다 한들 회사 고유의 온정주의 기조는 틀지 않았다. 대기업도 아니고 중견기업도 아니고 심지어 중기업조차 아닌 극단적 소기업에서 온정주의마저 사라진다면 그 회사는 다닐 일말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건은 12월에 터졌다. 업계에서 가장 큰 이벤트의 출장을 보내면서 후배와 출장 시기를 조율하고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후배는 본인이 출장 운이 없다면서 출장 시기를 이벤트 종료 시점까지 잡고자 했으나, 회사 형편과 업계 관행상 후배와 얘기한 정도도 파격이라면 파격인 대우였다. 후배는 사비를 써서라도 끝까지 취재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너의 의지가 그렇다면 대표님께 말씀을 드릴 터이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품의서를 제출했다. 후배와는 타지에서 출장 중에 간간히 이야기를 나눴다.
개겨도 돼. 단 기본은 지키면서
어떤 한 디렉션이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응당 올라와야 하는 시점에 콘텐츠가 송고되지 않아 어찌 된 일이냐는 식으로 의문을 던졌더니 후배가 폭풍 같은 설움을 쏟아냈다. 현지에 와서 잠은 서너 시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하루 10시간을 넘게 일한다며 하소연을 했다.
똑같은 출장을 다녀와봐서 업무 강도는 익히 알던 차였다. 그래도 편집장인데 이 정도 디렉션도 못하나?라는 생각에 며칠 동안 현타를 피하지 못했다. 타이르거나 어루만지듯 디렉션하지는 못했어도, 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 정도까진 참을 만했다. 그래 힘드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감정을 삼켰다. 스파크는 다음에 일어났다. 후배가 사비로 나머지 며칠 간을 버티는 게 마음이 좋지 못해 일하는 일수인 4일간의 출장비를 회사에 건의하면 도움이 좀 되겠느냐고 제안했다. 원래는 그것도 된다는 보장이 없지만, 장으로서 후배를 위해 건의해 볼 수 이는 부분이었다.
이어진 다음의 한 마디가 망치가 되어 뒤통수를 세게 강타했다. '선배가 얘기하지 못하면 제가 대표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악습은 저 대에서 끊어내겠습니다.'
'아니 무슨 내가 그 정도 건의할 용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사익만을 위해 뒷짐 진 것도 아닌데, 오히려 후배들 권익을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해 왔는데, 이거는 선 넘은 거 아니야? 이러면 장이라는 직급이 대체 왜 필요하지?' 하는 생각 때문에 며칠 동안 괴로웠으며 그 앙금은 아직도 머릿속을 괴롭힌다.
'그래, 자세한 건 한국에 들어오면 얘기하자.'
한국에 와서 출장 경비를 정리하는 데 둘끼리는 우리가 했던 약속 선에서 해결하자고 서로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웬 걸, 같은 건을 가지고 후배가 관리부에 얘기한 내용이 나에게 얘기한 내용과 달랐다. 관리부 부장은 "아무개가 실비를 다 청구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냥 다 해줘.", "네? 부장님 그게 무슨 얘기예요? 다 정리했다는데요? 심지어 마지막까지 염려가 되어서 뭐 빠트린 거 없느냐. 다 넣어라 그러니깐 다 넣었고 더 이상 저랑 할 말이 없다는데요.", "그래? 나한텐 안 그러던데"
결국 삼자대면까지 가서 출장경비 전체를 거의 다 해주기로 쇼부를 보았다. 후배는 자존심을 지키고자 그 자리에서도 한 발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부장 말도 있고 '이번엔 내가 지자'라는 마음으로 한 발 물러났다. 그래서 결국 출장경비는 다 페이백 처리가 되었다.
후배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막말로 내 돈도 아니고, 모자라면 사비로도 해줄 수 있는 게 선배다. 이건 신의의 문제였다. 타인에게 지켜야 하는 신의. 나 역시 황희 정승 같은 성인은 아니지만, 작은 신의나마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2016년부터 7년째 함께 해왔고, 이 사건 이전까지는 큰 탈 없이 지내오던 후배이기에 이번 사태가 저릿하게 다가온다. 선배와 후배라는 관계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가 프로였다면, 조금은 아픔은 덜했겠지. 선배도, 또 후배 역시도 아플 일이 덜했겠지.
선후배 사이의 미생은 언제쯤 완생이 되려나
* 비슷한 문제를 겪었거나, 슬기로운 해결책을 아시는 세상 모든 선후배 여러분께서는 댓글로 지혜로운 고견을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에 대한 비판 역시도 수용하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