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은 관물대 앞에서나 잡자
뭐라도 써보려는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점 하나가 있다. 각 잡고 쓰려는 자세다.
이는 얼핏 보기에 대단히 비장하고 옳아 보일지 몰라도, 대부분은 뭐라도 하나 써보려는 이들을 쇠사슬처럼 옭아맨다. 책상 앞에서 노트북만 켠 채 수십 분, 심지어는 몇 시간을 방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대목은 당신이 조앤 K 롤링이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문 작가들은 대개는 그들만의 루틴을 갖는다. 매일 조깅을 하는 루틴으로 유명한 하루키는 대체적으로 정해진 시간에만 원고를 쓴다. 글은 아니지만 만화 쪽에서는 허영만 화백이 그렇다. 허 화백은 루틴을 지키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술을 좋아하면서도 다음날 지장 있게 마시지는 않는다.
여러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면 모를까, 지금 막 펜을 잡거나 중급 이하의 라이터로 도약 단계 이전에 놓여 있는 수준이라면 가급적 각을 잡지 않기를 바란다. 각 잡는 행위는 자체만으로도 글 쓰는 사람을 속박한다. 물론 강요할 바는 아니다. 깔끔하게 정리한 책상 위에서 정해진 시간, 가령 새벽이나 심야 시간 몇 타임에 글을 일필휘지로 쓰는 부류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고정 시간대의 루틴을 잡아 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글은 팔 할이 영감이라는 생각이다. 글감을 문장으로 도출하는 일은 기술 또는 감각의 영역이다. 글을 잘 쓰고 못쓰고는 기술보다는 통찰 쪽에서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면 평상시에 부단히 글감을 수집하고, 메모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독창성을 발휘해 사유로 풀어내는 편이 글을 잘 쓰는 데 도움이 된다.
테크니컬한 부분은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다. 필사를 많이 추천들을 하는데, 그 이유는 스타일의 체화로 글쓰기 근육을 단련시키고자 함이다. 그런 노력들이 사유와 글쓰기 행위 사이의 시퀀스 링크를 촘촘히 생성시켜 빠른 시간에 일정 퀄리티의 글로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각은 잡을 단계가 있고 수준이 있다. 중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각을 잡지 말래도 잡아진다. 새벽에 머리를 맑게 하고 따뜻한 차 한잔 우려내고 정갈한 책상 위에서 어느 정도 각을 잡고 마치 전문작가가 되기라도 한 듯 써지는 시점이 분명히 온다. 새벽 한 시간 사이 두 편을 써 내려간 글도 나름 의미는 있고, 그러한 글쓰기 방식만이 대다수의 초심자가 중도하차하는 '초보의 딜레마'에서 당신을 해방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