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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공 Mar 19. 2024

10년째 뭔가를 쓰는 사람

빛이 '탁!'하고 켜지기를.


“시를 참 잘 쓰는구나!”


초등학생 저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 교내 동시대회 같은 것이 열렸고 의무적으로 시를 지어 제출해야 했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돌고래를 소재로 뭔가를 썼다. 당시 유행하던 파스텔로 바다와 고래, 불가사리 같은 것을 그려 넣기도 했다. 잘 쓴다는 칭찬은 내게 시인을 꿈꾸게 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장래 희망이었다. 당시 인기 있던 장래 희망들, 그러니까 대통령이나 의사, 변호사 같은 것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이었다.


대학생 때 학교에서 열린 공모전에서 22박 23일 국토대장정 에피소드를 담은 수필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다음 해엔 돼지저금통을 털다 아빠에게 걸렸던 수치를 기록한 수필로 또 최우수상을 탔다. 그때쯤 난 글을 꽤 쓴다고 자부했고, 전공인 영어영문학 수업보다 복수전공인 국어국문학 수업을, 특히 문학보다는 뭔가를 쓰는 수업을 더 열심히 들었다.


첫 직장으로는 작은 웹 출판사를 선택했다. 그곳에서 발행하는 디지털 콘텐츠 매거진을 제작했다. 그 이후엔 한류 콘텐츠 매거진사에 들어갔다. 연예인 화보를 찍었고 인터뷰를 했고 기사를 썼다. 길지 않았던 경력들이 쌓였고, 2018년엔 온라인 연예 매체 기자가 됐다. 내 이름과 메일주소가 박힌 기사가 몇천 개쯤 됐다.


그러다 돌연 홍보대행사로 갔는데, 어쩐지 그곳에서도 뭔가를 내내 썼다. 담당하는 기업의 자료를 작성했고, 기자에게 피칭할 기획 기사를 썼다. 협회지도 제작했는데, 덕분에 어느 회사 대표나 연구소장 같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원고를 썼다. 바이라인이 달리는 기사를 쓰던 나는,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면서 처음 글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질 때쯤, 드라마 공부를 시작했다. 조금 뒤엔 웹소설도 끄적였다. 다만 N년간의 공부는 ‘난 창의성이 없구나.’ 하고 깨닫는 계기가 됐을 뿐이었다.


지금은 회사가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제작한다. 회사 안에 여러 사업부가 있는데, 그 사업부의 이슈를 한데 묶어 콘텐츠화(化)하는 일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뭔가를 쓴다. 광고 캠페인을 분석하거나,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아티스트의 매력 포인트를 짚거나, 유튜브 영상을 봐달라고 독려하거나, 사내 구성원들의 갖은 사연을 정리하는 식이다.


초등학생 때 동시를 끄적이던 시절을 제외하더라도, 인생의 절반가량을, 뭔가를 쓰면서 살았다. 심지어 쓰면서 밥을 벌어먹는 중이고. 그럼에도 잘 쓴 글에 위안받고(더러는 부러워 화가 나지만), 잘 쓰고 싶어 필사를 한다. 


평소 얼추 같은 시간마다 화장실을 간다. 주말엔 종종 루틴이 깨지는 통에 묵직해진 배를 하염없이 꾹꾹 누르는 일이 잦다. 하루 종일 신경 쓰이게 만드는 그것을 배출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게, 나에겐 글을 쓰는 일이다.


그래서 묵은 변, 아니,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또다시 뭔가를 쓰기로 한다. 오늘과 같은 푸념일지도, 하루의 감정을 기록하는 일기일지도, 어쩌면 편지일지도 모를 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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