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글
최근 너무 진지한 주제들을 다뤘더니 몸 어딘가 뻐근하고 답답하다. 실은 그다지 진지하지 않은데 다리를 떨면서 생각 의자에 앉아 있던 느낌이랄까. 그래서 오늘은 의자에서 벗어나 다소 가볍고 의미 없는 얘기를 하며 게다리 춤을 춰보려고 한다. 얼마 전 받았던 수면내시경 검사 경험담이다. 약간의 과장과 약간의 뻥과 약간의 엄살을 더했다.
마흔을 넘으면 국가에서 위내시경 검사를 무료로 제공한다. 필요에 따라서 그전에 검사를 받은 경우도 있지만, 별 다른 문제가 없었다면 이때 처음으로 내시경을 경험하게 된다.
수면내시경을 받기로 했다. 국가에서는 수면마취 비용까지는 제공하지 않기에 수면내시경으로 진행하려면 약 5만 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나의 경우 태어나서 딱히 눈물이란 걸 흘려본 적 없고, 비가 와도 우산 따위는 쓰지 않으며, 고통 같은 건 낮은 정신력의 반증이라고 믿는 남자 중에 상남자(였던 적이 없)지만, 차갑고 낯선 어떤 것이 내 목구멍을 통과하여 나조차 도달해 본 적 없는 내 공간을 누빈다고 생각하니 겁났기, 아니, 불쾌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대장내시경도 같이 받기로 했다. 위내시경은 위로, 대장내시경은 아래로 진입한단다. 위는 그나마 본래의 기능과 방향에 맞게 진행하는 건데, 아래는 반대 방향으로 역행해야 한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말이다.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병원이니까 나쁜 약은 아니겠지.
그리하여 나는 절대 무서워서가 아니고, 인간 존엄성을 유지하고 더 나은 인격체로 존재하기 위해 수면내시경을 선택했다. 기꺼이 비용을 지불했다.
내시경 검사 자체의 소요시간은 30분 남짓이지만, 그곳에 문제없이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내시경 검사를 준비하고 받는 일련의 과정에서 세 번의 특이점을 만났다. 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생경한 사건이었으며, 이로 인해 나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이동했다. 그 각각의 키워드는 공중부양, 최면술, 시간여행이다.
첫 번째는 공중부양이다.
대장내시경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전날 밤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위내시경도 7시경부터 금식을 해야 하지만, 대장내시경의 준비는 그 난이도 자체가 다르다. 특정 시간 단위로 알약과 물을 밀어 넣으면서 대장에 머물고 있던 것들을 모두 비워내야 한다. 올드스쿨, 뉴비 구분 없다. 그 안에 존재해 온 모든 역사는 이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지고 만다.
이 과정은 참으로 원초적이고, 한편으로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는 익히 들었던 대로 화장실 근처에 뿌리를 내리고, 쓰나미가 밀려오면 그것을 미리 감지하고 날아드는 세떼처럼 잽싸게 일어나 변기에 앉곤 했다.
무언가를 몸 밖으로 꺼내는 행위에 있어서 그렇게 강력한 힘은 전에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군 시절 단전으로부터 뽑아 뱉던 기합에 비해서는 더 응축되어 멀리 뻗는 레이저 같았고, 식중독 당시의 유사한 경험에 비해서는 더 청량하고 균일한 지속력이 있었다.
나는 문득, 그 새로운 힘으로 인해 몸이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인간이 자력으로 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대로 조금만 더 센 추진력을 얻으면, 어쩌면, 정말이지 어쩌면, 날아오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돼버리면 천장에 머리를 부딪쳐서 다칠지도 모른다. 몸이 뜨지 않도록 주의했다. 내가 만났던 첫 번째 특이점이다.
두 번째는 최면술이다.
나는 국가검진과 함께 내시경을 진행했기에, 그에 앞서 기본적인 검진을 진행했다. 신장과 체중, 시력, 청력 같은 것을 측정하고,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피를 뽑는 것 등이다. 그중 소변을 제출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문득 걱정이 됐다. 전날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몸 안에 있던 것들마저 날아오를 만큼 거세게 내보냈기 때문이다. 이 가죽 안에는 측정할 만큼의 수분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이 컵에 소변 받아서 오세요~."
아니 그런데, 검사용 컵을 건네주는 이에게는 나의 사정 따위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에게서 나온 음절과 어조, 억양 그 무엇에도 내가 이 미션을 하지 못할 거라는 느낌은 없었다. 이것은 숨 쉬듯 당연하고 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해냈다. 분명 내 몸에는 수분이 없을 터였고, 생존 시스템은 가뜩이나 부족한 수분을 내보내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가 내 몸의 반응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말 한마디로 나를 조종한 것이다! 이는 최면술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두 번째 특이점이었다.
마지막 특이점은 시간여행이다.
내시경을 시작하기 전, 위 검사를 받기 위해 뭔가를 마시고 팔에 주삿바늘을 연결하는 일들을 선행하게 된다. 나는 한 간호사 앞에 앉았다. 그녀는 내 병원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키보드 서랍을 당겼다. 그것이 어딘가 걸려 버티다가 이내 덜컥거리며 열렸다.
"아휴, 이놈의 기계가 노후돼서 원~ 나도 늙고, 기계도 늙고."
그녀는 혼잣말인지 뭔지 모를 농담을 했고, 나는 ‘아하, 핫’ 정도의 소리를 내며 반응했다. 내시경 검사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 농담으로 조금 나아졌다.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
드디어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내시경 검사의 고지에 도달했다. 나는 누구든 언제든 들추면 엉덩이가 보이는 바지를 입고 옆으로 누웠다. 입에는 공프공 크기의 짧은 파이프를 물고 있다. 코에는 산소 호스를 끼워두었다. 긴장감으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있던 찰나, 간호사 한 분이 다가와서 말했다.
“선생님께서 앞에 분 진단서 쓰고 계셔서 조금 늦어지고 있어요. 금방 오실 거예요~.”
그녀가 커튼 뒤로 사라진 뒤, 나는 조금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둡고 축축한 느낌. 작은 모니터가 있었고, 그 화면은 마치 공포영화의 미장센처럼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 금속 재질의 관절들이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헝겊들이 뭉쳐있다. 나는 마치 연쇄살인마의 사건 현장에 온 것 같은 생경함과 불안감을 느꼈다.
기다림은 내 예상보다 길어졌고, 문득 불쾌해졌다. 어제부터 온갖 고생을 하며 이 검사를 준비했는데, 언제든 누구든 들추면 엉덩이가 보이는 옷을 입히고 입에는 개구기 같은 걸 껴놓고는 이 음습한 사건현장에서 계속 기다리게 한다니 말이다. 나는 곁으로 다가온 간호사에게 약간의 불쾌감을 섞어 물었다.
"제 검사는 언제 시작해요? 뒤로 밀렸나요."
"끝났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 대답은, 말하자면 호흡 같은 것이었다. 의식을 들이지 않아도 반복할 수 있는 것. 나는 그녀가 이미 2000만 번은 받았을 질문의 2000만 번째 답변을 받으며 깨어났다.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니 얼마 뒤 의사 선생님이 왔었다. '팔이 뻐근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수면 유도제가 투입되었고, 눈꺼풀이 모스 신호를 보내며 감겼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왜인지 나는 다른 경험을 한 것처럼 깨어났다. 문득, 이것이 단순한 수면의 결과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간여행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정상적으로 사고하지 못했다. 세 번째 특이점이었다.
그렇게 세 번의 특이점을 겪고, 내 삶은 본래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다. 어쩌면 하늘을 날 수 있고, 최면술로 타인을 조종하며, 시간여행이 가능한 곳으로 말이다. 다 쓰고 보니 이게 뭔 글인가 싶다. 하지만 이 새로운 세계의 나는, 쿨하게 손가락을 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