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고래 Aug 04. 2022

행복의 함정 II

행복은 외로움을 남긴다


선아: 행복하고 싶다... 진짜.

동석: 나도. 열라... 진짜 열라 그러고 싶다.

《우리들의 블루스 10화》中


그럼에도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한 게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에 가까운 선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디자인의 옷을 사거나 멋진 차를 꿈꾼다. 가치 있어 보이는 활동이나 커뮤니티에 가입하기도 한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일상에서의 다양한 행복을 참고하기에 그만한 공간도 없다. 행복, 이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녀석을 조금이라도 완연하게 옆에 두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다.



행복은 외로움을 남긴다


사회심리학자 아이리스 마우스Iris Mauss는 행복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많은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행복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 건강 문제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행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피험자들의 행복감은 오히려 낮아졌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행복과 외로움 간의 연관성도 밝혔다. 아무래도 이 마우스라는 연구자가 행복을 제대로 디스하려는 것 같다. 행복하고자 했을 뿐인데 외로워진다니 이 무슨 디스토피아적 상상인가. 어떤 고약한 연구를 해버린 건지 한번 뜯어보자.


그는 두 가지 연구를 진행했는데, 첫 번째 연구에서는 행복을 중시하는 태도가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한 외로움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다뤘다. 320명의 피험자들은 먼저 "행복감을 느끼는 건 정말 중요하다"와 같은 질문에 점수를 매겨 행복을 얼마나 추구하는지 평가했다.


다음으로 14일간 일기를 썼는데 '오늘 날씨는 맑았다. 나는 회사에 갔다가 집에 와서 밥 먹고 씻고 잤다. 박부장은 여전히 개 같았다'와 같은 일과의 나열이 아니다. 그날 가장 스트레스받았던 하나의 사건에 대해 집중해서 썼다. 예컨대 '오늘 박부장이 개 같았던 이유는'을 시작으로 일련의 사건과 당시의 감정을 적어내는 것이다. 일기를 다 쓴 다음에는 그 사건으로 인한 외로움의 수준을 점수로 같이 기록했다.



그들의 답변과 일기를 분석한 결과, 행복을 중시하는 사람일수록 일상에서 겪는 스트레스로 인해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빼놓으면 섭섭하니, 사실상 밤낮의 기온차처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상황들로 인해 더 큰 외로움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




마우스는 이 현상을 좀 더 직접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두 번째 연구를 진행한다. 그는 보편적인 성인에 해당하는 피험자들을 랜덤하게 두 그룹으로 나눈 후 서로 다른 신문 기사를 읽게 했다. 먼저 A그룹의 사람들은 행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사를 읽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더 높은 수준의 행복을 가진 사람일수록 직업과 대인관계, 건강, 만족감 등 모든 면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즉, 행복은 단순히 기분이 좋은 것 이상의 대단한 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더 큰 행복감을 얻는다면 그만큼 더 성공하고, 건강하며, 인기까지 많아질 것입니다."


한편 B그룹의 피험자들도 같은 포맷의 기사를 읽었는데 ‘행복’이라는 단어만 '정확한 판단'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예컨대 정확한 판단을 할수록 더 성공하고 건강해진다는 식이다. A, B 두 그룹의 피험자들은 해당 기사를 읽음으로써 한시적으로 서로 다른 방향의 태도를 갖게 된다. (행복 추구 기사로 인한 이러한 영향은 마우스의 다른 연구와 더불어, 앞의 글에서도 증명되었다.)


다음으로 모든 피험자는 소속감과 친밀감을 중요하게 다루는 30분짜리 영화를 보았고, 영화가 끝난 후 '외로움', '타인과의 거리' 등을 다룬 설문에 답했다. 자기 보고식 답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지, 마우스는 이들의 침까지 채취했다. 친밀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하여간 심리학자들은 집요하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아닐까...)


연구는 복잡했지만 그 결과는 심플하다. 행복을 중시하는 기사를 읽었던 A그룹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더 외로운 상태인 것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그들의 프로게스테론 수치도 B그룹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사회적 친밀감도 낮아진 것이다.


놀라운 결과다. 첫 번째 연구에서는 애초에 행복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경향성이었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두 번째 연구에서는 그런 구분 없이 랜덤하게 나눈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행복을 중시하는 기사를 읽은 것만으로 외로움을 느끼기 쉬워졌다. 심지어 마치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듯 사회적인 친밀도까지 감소했다. 행복을 아주 조금 더 추구하게 되었을 뿐이다. 


행복 다가온다. 어서 돔황챠!!!!



행복, 피해야 하는 걸까?


연구 결과의 원인이 궁금하다. 연구자인 마우스는 행복의 추구가 이상적인 상황에 대한 기대치를 만들지만, 실제 일상에서의 경험들이 그에 미치지 못하여 실망감을 증가시키는 것을 첫 번째 원인으로 꼽았다. 또한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가 스스로에 대한 집중으로 이어져 사회적인 접근에 잠재적으로 방해 요소가 된다고도 추측했다. 그렇다면, 나는 행복으로부터 멀어져야 하는 것일까.


마우스 같은 학자들이 이런 연구를 하는 이유는 행복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말살시키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행복이라는 개념적 덩어리를 제대로 정의하고 헤아리기 위해서다. 제대로 알아야 그것을 나에게 맞는 형태로, 잘 누릴 수 있다.


따라서 행복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연구 결과가 주는 함의는 행복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오히려 반대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행복은 쟁취를 위해 그 기준을 좇거나, 마치 약속 시간에 오지 않는 친구처럼 애타게 기다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행동들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따라서 나 자신에게 반복되는 일상을 조금은 낯선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존재에게 좋은 기분을 선물하는 경험들,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은 사건은 무엇일까. 그 사소한 순간들을 하나씩 포착하고 알아채는 것. 실체는 여기에 있다.


행복, 이제 가랑이 찢으면서 애써 쫓지 않으련다.

그 시간에 차라리 너저분한 일상이나 가꾸고 말지.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후회 방지 대화 사전>,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참고문헌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sex-murder-and-the-meaning-life/201211/if-you-pursue-happiness-you-may-find-loneliness

Mauss, I.B., Savino, N.S., Anderson, C.L., Weisbuch, M. Tamir, M., & Laudenslager, M.L. (2012). The Pursuit of Happiness can be lonely, Emotion, 12, 908-912.

Mauss, I. B., Tamir, M., Anderson. C. L., & Savino, N. S. (2011). Can seeking happiness make people unhappy? Paradoxical effects of valuing happiness. Emotion, 11, 807–8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