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정확히는 기다릴 일이 없다. 상대방이 항상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 '박경수'가 그렇다.
그에게는 한 가지 습성이 있는데, 약속한 시간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지 않는다. 마치 그런 선택을 고려하는 세포가 존재하지 않는 듯, 정시에 도착하기 위해 작동한다. 문제는 그만큼 시간 계산에 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오에 약속을 했는데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서 준비를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약속에 늦을 게 자명한데 그것을 최우선으로 두지도 않는다. 당장 할 필요 없는, 택배 상자를 뜯어서 정리하거나 설거지를 한다. 그런 다음엔 모닝커피를 마실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아주 작은 변수만으로도 약속에 늦는다. 차가 막혔거나, 타야 할 지하철을 놓쳤거나,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휴대폰을 놓고 나와서 돌아갔었다는 둥,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다는 둥, 이유는 정말 많은데 대부분 소박하다. 딱 그 정도의 시간을 늦는다. 5분에서 20분.
경수가 먼저 도착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팬시 매장에 들어가 휴대폰 케이스를 구경한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기다리던 나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전화를 걸었다. 결국 10분이 지난 시점에 그가 나타난다.
그래도 경수는 양반이다. '이선주'에 비하면.
그녀에게 10분 정도의 지각은 정시 도착에 속한다. 기본 30분에서 1시간이기 때문. 늘 미안하다며 사정을 얘기하는데, 신기하게도 비슷한 이유다. 나오는데 센터장이 잡았다거나, 문제가 생겼다거나, 자신만의 정의와 책임이 당긴 사정을 토로한다. 한두 번, 아니 열댓 번은 피할 수 없는 사정이겠지만 그 이상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는 건 일종의 태도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그다지 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
박경수, 이선주, 타인의 시간을 뺏는 사람들. 나는 이들을 '타임스틸러'라고 부르기로 했다.
비록 실명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실존화된 인물을 만든 까닭은 나에게 시간 강박이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내 시간은 내 기분과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쓴다. 다만 타인과의 약속에 대한 강박이 있다. 그 시간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니어서다. 나처럼 하루 24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사람의 소유이기도 하다.
비단 지인과의 약속만이 다가 아니다. 집에서 회사까지 소요시간 약 1시간 40분. 그럼에도 30분에서 50분 일찍 회사에 도착한다. 거리가 멀다 보니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여 미리 움직이는 것. 지하철이 침수되고 도로가 마비되는 사태가 아닌 이상 언제나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다. 효율 기반의 업무를 추구하는 요즘 스타일에 비해, 일면 미련하고 ‘옛’스러운 태도라는 것을 안다. 그 방식이 꼭 옳다는 게 아니다. 내가 그렇다. 강박이 있다.
특히 연례행사 등 중요한 일정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빨리 도착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구석 어딘가에 차를 세워두거나, 도착 장소로부터 먼 곳에 자리를 잡고 시간을 보낸다. 근처에 있다가 우연히 애매모호하게 가까운 사람을 만나면 인사도 하고 어색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몇 시에 오셨어요?"라는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그래서 닌자처럼 숨을 죽이고 기다리다가 5분 전쯤, 서서히 약속 장소로 다가간다.
따라서 누군가의 지각은 나에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기보다는 그저 견뎌내야 하는 사건에 가깝다. 기다림 자체에는 익숙하고, 그 시간이 딱히 싫은 것도 아니다. 다만 상대가 타임스틸러로 보이기 시작하면 묘하게 괘씸해진다. 다른 이들의 귀중한 시간을 훔치는 것에 불편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착할 때면 항상 먼저 도착한 일행이 있었을 것이다. 늘 마지막 빈자리를 채우기 때문에 앞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간을 알 수 없다. 반사적으로 미안한 마음이야 들겠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을 헤아리긴 어렵다. 늘 겪어보지 않았으므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몇 분 이상 늦을 경우 문제가 된다'는 기준은 없다. 사실 개인의 관점으로 들어가면 늦을 만한 사정은 다 있을 것이다. 요는 기다리던 사람의 불쾌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한다. 누군가 늦은 상대방에게 화를 낸다면 이는 자신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다. 단적인 비교로, 만약 약속 대상이 회사 상관이었다면 늦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늦은 이유가 "동물원에서 나온 코끼리가 도로를 점령해서 1시간이나 묶여 있었어"와 같이 내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는 사건이 아닌 이상, 기다림에 지친 이에게 전달될 메시지는 이렇다. "내 시간이, 네 시간보다 소중해."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메시지는 이렇게 바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렇게 왔잖아. 꼭 불쾌한 티를 내야 돼?" 타임스틸러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타인의 시간을 고려했든 하지 못했든, 전달되는 메시지가 그럴 수 있다는 의미다.
만성적인 지각에 대한 여러 연구 자료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일찍 도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동어 반복 같지만 뜯어보면 조금 다르다.
경수는 늦고 싶어서 늦는 게 아니라고 했다. 미리 도착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늦지 않으려는 마음'과 '미리 도착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결과적으로 상충된다. 약속에 늦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정시에 맞춰 움직이기보다는 미리 도착하기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늦지 않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타임스틸러의 경우 그런 선택 자체를 꺼린다.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는 모습이 '다른 중요한 일이 없는 사람'처럼 비칠까 봐 불편하다. 타인의 시간을 훔치는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시간이 가치 없게 보이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을 0으로 만들려고 한다. 어쩌다 예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하면 스스로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거나 다른 일정을 중간에 껴 넣는 이유다.
경수 역시 그랬다.
몇 번 먼저 도착한 적이 있지만 마침 근처에 볼일을 보거나, 그 동네에만 있는 특정 장소에 가서 시간을 썼다. 몰두하다가 시간이 흐르고, 아차, 하면서 전화를 받는다. "어, 나 근처에 있어. 금방 갈게."
그가 부지런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경수 자체만 놓고 보면 그런 사람이 맞다. 하지만 그 효율을 위해 타인의 시간이 사용되는 건 얘기가 다르다. 그는 먼저 도착하더라도 이후에 도착할 상대방을 위해 기다림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데, 두 사람 다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실제로 만나는 시간은 한참 늦어질 것이다. 효율을 위해 각자의 사소한 일들을 보면서 계속 어긋날 테니 말이다. 누군가는 기다려야 한다.
선주는 좀 더 복잡한 의도나 이유가 있어 보였다.
지각의 심리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습관적인 지각은 '수동 공격성' 그리고 '자기기만'의 결과일 수 있다. 항시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는, 하지만 속에 화가 많이 쌓인 사람들의 경우, 이에 대한 공격성을 수동적인 수단으로 해소하는 경향이 있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고 타인의 합리적인 기대에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요한 사실을 까먹거나 본래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을 생략해버리는 등으로 나타나는데, '특히' 약속에 늦는 일이 잦다고 한다.
이처럼 수동 공격성(passive-aggressive)은 노골적인 방식에 비해 감정적, 사회적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은밀하게 공격성을 표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그것이 문제로 드러나지 않고 관계 안에서 곪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속될수록 상대방에게 분노가 조금씩 전가되는 셈이다. 정말이지 엉큼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두 번째는 자기기만(self-deception), 스스로를 속인다는 의미다. 어떻게 속이냐 하면,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특정 이익이나 면피를 위해 강행한다. 늦는 이유가 반드시 '상대방의 시간을 하찮게 여겨서'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이 약속이나 모임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어서다. 그래서 되도록 늦게 도착하여 전반적인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자신에 대한 주의를 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 선주에게 주인공 병이 있냐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불편을 표현한 적이 있는데, 따져보니 같은 이유다. 자기기만.
습관이라던가 의도적인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정서적인 거부감으로도 잦은 지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장소나 모임을 원치 않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회사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 장소에서 되도록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곳이 나에게 이롭지 않다는 생각으로 인해 더 이른 시각에 도착하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는다. 이는 위에 이유들에 비해 자연스럽고 건강한 현상이라고 한다. 글쎄, 매일 정각에 아슬아슬 출근하는 팀원을 보면서 타들어가는 팀장의 마음은 다를지도.
타임스틸러라는 말까지 지어내며 이런 습성의 사람들을 흉봤지만, 솔직히 얘기하면 나도 어디선가는 타임스틸러일 것이 분명하다. 상대나 상황에 따라 시간 강박이 희미해질 때가 있다. 타임스틸러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황으로 인한 고통이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 지각을 하는 당사자의 고통도 만만치 않다. 이 글은 사실, 타임스틸러를 위한 것이다.
늘 늦는다는 건, 늘 시간에 쫓긴다는 의미다. '현재'보다 과거에서 움직이므로 선택의 폭이 좁다. 이렇게 지연된 선택들은 더 많은 책임으로 누적되어 기다린다. 점점 더 서둘러야 '현재'를 좇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서두르다 보니 중요한 걸 놓치게 되고, 이는 다시 불필요한 시간을 사용하는 계기를 만든다.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이 연속적인 끈들을 몸에 칭칭 감고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렇게 어렵사리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사과다. 누군가는 화를 감추고, 누군가를 짜증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다. 불편한 상황으로 시작하는 순간이 적지 않다. 딱히 맘이 편치는 않은 일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현재'와 어깨를 나란히, 혹은 그에 앞서 움직이려면,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늦은 이유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질문하고 솔직하게 답하는 게 필요하다. 그 질문 끝에서 왜 늘 늦을 수밖에 없는지 찾을 수 있다. 다음은 타임스틸러의 세 가지 맹점이다. 한 예시를 보자.
얼마 전까지 40대 남성과 함께 일했는데, 그는 항상 미팅에 10분에서 15분 정도 늦었습니다. 반복되는 지각에 화가 났던 저는 그에게 자신의 사무실에서 맨해튼 중심에 있는 저희 회사까지 오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설명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사무실은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지하철로 이 근처 역까지는 10분이 걸립니다. 이곳은 역에서 한 블록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요. 저는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고려해서 5분의 여유 시간을 잡습니다. 그래서 약속시간 20분 전에는 나가려고 노력해요."
그의 계산이 합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랬다면 반복적인 지각이 없었을 것이다.
첫 번째 맹점은 시간이 소요될만한 다른 변수들을 계산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도착할 회사 건물은 22층이었고, 정직원이 아니므로 로비에서 방문자 등록을 해야 한다. 엘리베이터 수가 적어 대기 줄이 생기는 일이 잦다. 상황에 따라 5분에서 많게는 10분까지 시간을 뺏길 수 있다. 심지어 그의 사무실도 고층에 있다. 이 말은 그의 책상에서 1층까지 가는 시간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 블록'이라고 표현하고 따로 시간을 측정하지 않았던 지하철과 도착지의 거리도 걸음에 따라 약 3~5분이 소요된다.
요목조목 따지고 들어 이 남자의 숨통을 조이려는 게 아니다. 정시에 맞춰 움직이고 싶다면 시간 계산을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한두 번이야 그럴 수 있지만, 그는 여러 번의 방문을 통해 이런 변수들이 있다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시간 계산에는 포함시키지 않은 셈이다. 내 계산 밖에서 시간을 뺏어가는 상황들을 알아챈다면, 그에 맞는 더 중요한 선택들을 할 수 있다. 그만큼 약속 시간에 늦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두 번째 맹점은 '약속 시간 20분에 떠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다. 20분이라는 시간으로도 충분하지 않은데 그 출발 시간조차도 스스로에게 여지를 둔다. '떠나기 위해 노력한다'라는 말과 '떠나야 한다'라고 말하는 건 다르다. 인간은 의외로 산만하거나 멈춰있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시간을 보려고 들었던 폰에서 나도 모르게 주요 인물의 SNS의 피드를 보게 될 수 있다. 그렇게 예상치 못했던 소식에 놀라서 한참을 들여다볼지도 모를 일이다.
세 번째 맹점은 미련이다. 하던 일을 '마지막으로, 진짜 마지막으로 여기까지만' 끝내고 출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앞선 선택이나 행위에 대한 미련이 남아 멈추지 못하고 지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만약 약속 장소로 출발하기 전 보고서를 마무리 짓거나, 메일에 답장을 하거나, 한 통의 빨래라도 더 정리하고 싶다면, 차라리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중간이나 도착하여 할 수 있는 업무들을 챙긴 후 빠르게 떠나는 방법이 있다. 미리 도착하여 그 일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지루함이 주는 기회
타임스틸러들은 지각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미리 움직여서 시간을 낭비하고 우습게 보이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그렇다면 미리 움직일 수 있는 방법보다는 '미리 움직이려는 선택'의 가치를 높여보는 게 어떨까.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할 일을 정해두면 그 시간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좀 뜬금없는 얘긴데, 민방위 훈련장에서 좋은 글이 탄생하곤 했다. 어쩌면, 지루함만이 줄 수 있는 시공간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