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불안을 남긴다
마치 내가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저 앞의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그중 누군가의 성공적인 경험담에서, 속절없이 즐거워 보이는 SNS의 피드에서. 그렇게 앞다퉈 행복을 추구하는 장면들을 겪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어느 정도 행복한 걸까?"
'행복'은 인류가 문명사회에 접어든 이례로 가장 오래된 화두이자 삶의 목표인 듯하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고, 심지어 행복해 보이는 삶을 사는 이들조차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확인하려 애쓰기도 한다. 기별 없이 다가오는 고난들은 그런 노력을 흔들리게 만든다. 친구나 애인, 가족이 겪는 힘든 일상도 한몫한다. 심지어 TV를 통해 들려오는 자연재해나 살인, 유괴 사건 등도 내 삶을 우울하게 만드는 복병이다. 우리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틈에서 수많은 장애물들을 넘어, 오늘도 행복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과연 행복을 추구하는 게 실제로 행복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걸까. 여기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있다.
행복은 불안을 남긴다
최근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행복해지는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에 대해 집중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행복감이 삶의 열쇠라는 문화에 오히려 허점이 있다"라고 말했는데, 그 개념 자체가 사회적인 맥락을 내포하고 있어서다. 행복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오히려 실패감을 증가시킨다는 것.
누구나 행복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나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바람직한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삶에서 배재된 듯한 느낌을 갖게 하며,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기분에 대해 지나치고 불필요하게 신경 쓰는 계기를 만든다.
심지어 행복을 너무 열심히 좇다 보면 내 선택에 잠재된 위험성을 무시하게 된다고 한다. 단순하고 틀에 박힌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어 사소한 거짓에도 속기 쉬워지는 것이다. 그것을 잡기 위해 팔을 뻗느라 몸이 가시덩굴로 들어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이 행복이라는 녀석, 아주 응큼하기 그지없다. 작정하면 깔게 한 두 개가 아니다.
연구자들은 이 같은 행복의 맹점을 들추기 위한 두 가지 실험을 진행한다. 그 가정은 '행복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행복이라는 절대반지에 도전했는 점에서 꽤나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연구 결과를 쉽게 풀어쓰는 과정에서 수명을 좀 사용한 것 같다. (행복하지 않았어...) 그 결과를 살펴보자.
행복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따라 동일한 경험을 다르게 느낄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참가자를 A, B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퀴즈를 풀도록 요청했다. A그룹은 행복 관련 서적과 동기부여 포스터가 장식된 방에서 의욕 넘치는 동료와 함께 진행했고, B그룹은 아무런 장식이 없는 방에서 진행했다.
그런데 이 퀴즈는 사실 답을 풀기 어려운 초고난이도 문제였다. 참가자들이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좌절을 겪도록 하기 위한 의도다. 참가자들은 당연히 대부분의 문제를 틀렸고, 이후 당시의 실패를 얼마나 자주 곱씹는지 측정했다.
분석 결과, 행복을 강조하는 방에 있었던 A그룹의 참가자가 B그룹에 비해 당시의 부정적 상황을 더 많이 떠올렸다. 단순히 행복이 중요하다는 맥락만으로도 실패 경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또한 이처럼 과거의 문제를 곱씹는 행위는 현재의 정서에도 영향을 미쳐 주관적 안녕감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행복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가 실패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이를 위해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사회적 수용 예상 수준(예: "나는 우울하거나 불안함을 느낄 때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된다고 생각한다.")’과 관련 요인을 측정하여 그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사회적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행복하게(불행하지 않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부정적인 일을 겪은 후 그것을 더 오랫동안 자주 떠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슬픈 상황에서도 반대로 행복을 표현하려 했으며 그로 인한 혼란을 겪었다. 이러한 결과는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이 '이따금 불행하거나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보다 더 강력한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두 연구 결과는 행복을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했을 때 그에 대한 반추가 증가하고, 이는 행복감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낳게 된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의 가정에 부합했다. 행복하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오히려 행복과 멀어진다니, 왜 이런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일까.
우리는 저마다 다른 존재인데 사회적으로 정의하는 행복과 그 조건은 꽤나 심플하고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기억에도 쉽게 남고 이런 반복적인 경험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그것이 인생의 주요한 숙제인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행복의 함정은 여기서 츨발한다. 그것을 얻는 과정에서 오히려 불안을 남긴다는 것.
어쩌면 행알못이 가장 행복에 가까울지도.
* 참고문헌
McGuirk, L., Kuppens, P., Kingston, R., & Bastian, B. (2018). Does a culture of happiness increase rumination over failure? Emotion, 18(5), 755–764.
https://doi-org.silk.library.umass.edu/10.1037/emo0000322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