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기대치 조작 실험
선아: 행복하고 싶다... 진짜.
동석: 나도. 열라... 진짜 열라 그러고 싶다.
《우리들의 블루스 10화》中
행복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저 앞의 더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그중 누군가의 성공담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SNS의 피드에서. 그렇게 앞다퉈 행복에 다가서는 장면들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어느 정도 행복한 걸까?"
'행복'은 인류가 문명사회에 접어든 이례로 가장 오래된 화두이자 삶의 목표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고, 심지어 행복해 보이는 삶을 사는 이들조차 자신이 행복과 불행 중 어느 곳에 더 가까운지 확인하려고 한다. 기별 없이 다가오는 고난들은 그런 노력을 흔들리게 만든다. 친구나 애인, 가족이 겪는 힘든 일상도 한몫한다. 심지어 TV를 통해 들려오는 자연재해나 살인, 유괴 사건 등도 내 삶을 우울하게 만드는 복병이다. 이런 크고 작은 장애물을 넘어 행복을―손에 잡히지 않는 이 신기루 같은 녀석을― 조금이라도 옆에 두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
과연 행복을 추구하는 게 실제로 행복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걸까. 여기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있다.
행복의 함정을 다룬 연구
최근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행복해지는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에 대해 집중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한다. 행복이 삶의 열쇠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함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오히려 실패감을 증가시킨다.
심지어 행복만을 너무 좇다 보면 오히려 내 선택에 잠재된 위험을 알아채기 못한다고도 한다. 단순하고 틀에 박힌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어 사소한 거짓조차 놓치기 쉬워지는 것이다. 행복을 잡기 위해 팔을 뻗느라 몸이 가시덩굴로 들어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이 행복이라는 녀석, 아주 응큼하기 그지없다.
연구자들은 이 같은 행복의 함정을 들추기 위한 두 가지 실험을 진행한다. 그 가정은 '행복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행복이라는 절대반지에 도전했는 점에서 꽤나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연구 결과를 쉽게 풀어쓰는 과정에서 수명을 좀 사용한 것 같다. (행복하지 않았어...) 그 결과를 살펴보자.
행복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따라 동일한 경험을 다르게 느낄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참가자를 A, B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퀴즈를 풀도록 요청했다. A그룹은 행복 관련 서적과 동기부여 포스터가 장식된 방에서 의욕 넘치는 동료와 함께 진행했고, B그룹은 아무런 장치가 없는 방에서 진행했다.
그런데 이 퀴즈는 사실 답을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참가자들이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좌절을 겪게 하기 위한 의도다. 이들은 당연히 대부분의 문제를 틀렸고, 문제 풀이가 끝난 후 자신의 실패를 얼마나 자주 곱씹는지 측정했다.
그 결과, 행복을 강조하는 방에 있었던 A그룹의 참가자가 B그룹에 비해 당시의 부정적 상황을 더 많이 떠올렸다. 단순히 행복이 중요하다는 맥락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실패 경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A그룹에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이는 단순히 그들의 행복 기준치가 높아진 게 아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수용되기 더 많은 노력과 반추를 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연구자는 '사회적 결속과 행복을 연관 짓는 태도'가 실패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예를 들어 "나는 우울하거나 불안함을 느낄 때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된다고 생각한다"와 같은 질문을 통해 개인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수용된다고 여기는지 측정했다.
그 결과, 사회적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행복하게(불행하지 않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부정적인 일을 겪은 후 그것을 더 오랫동안 자주 떠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슬픈 상황에서도 반대로 행복을 표현하려 했으며 그로 인한 혼란을 겪었다.
위의 연구 이후 좀 더 본격적인 행복 관련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사회심리학자 아이리스 마우스Iris Mauss는 행복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 건강 문제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울증은 고립감, 외로움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그래서 그는 행복과 외로움 간에 뭔가 중요한 연결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우스는 이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두 단계로 진행했는데, 1단계 연구에서는 행복을 중시하는 태도가 일상에서의 외로움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다뤘다. 참가자들은 먼저 "행복감을 느끼는 건 정말 중요하다"와 같은 질문에 답하여 행복을 얼마나 추구하는지 구분됐다.
다음으로 14일간 일기를 썼는데 '오늘 날씨는 맑았다. 회사에 갔다. 박 부장이 대뜸 화를 냈다. 집에 와서 밥 먹고 씻고 잤다.'와 같은 일과의 나열이 아니다. 그날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사건에 대해 집중해서 썼다. 예컨대 '오늘 박 부장이 갑자기 화를 냈는데 그 이유는'을 시작으로 일련의 사건과 당시의 감정을 적어내는 것이다. 일기를 다 쓴 다음에는 그 사건으로 인한 외로움의 수준을 점수로 같이 기록했다.
그들의 답변과 일기를 분석한 결과, 행복을 중시하는 사람일수록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에서 더 큰 외로움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우스는 이 현상을 좀 더 직접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2단계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을 랜덤하게 두 그룹으로 나눈 후 서로 다른 신문 기사를 읽게 했다. 먼저 A그룹의 사람들은 행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사를 읽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더 높은 수준의 행복을 가진 사람일수록 직업과 대인관계, 건강, 만족감 등 모든 면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즉, 행복은 단순히 기분이 좋은 것 이상의 대단한 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더 큰 행복감을 얻는다면 그만큼 더 성공하고, 건강하며, 인기까지 많아질 것입니다."
한편 B그룹의 피험자들도 같은 포맷의 기사를 읽었는데 ‘행복’이라는 단어만 '정확한 판단'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예컨대 정확한 판단을 할수록 더 성공하고 건강해진다는 식이다. 위의 '행복 기대치 조작 실험'의 결과에 따라, A, B 두 그룹의 피험자들은 해당 기사를 읽음으로써 한시적으로 서로 다른 방향의 태도를 갖게 된다고 가정한 것이다.
다음으로 모든 피험자는 소속감과 친밀감을 중요하게 다루는 30분짜리 영화를 보았고, 영화가 끝난 후 '외로움', '타인과의 거리' 등을 다룬 설문에 답했다. 이런 설문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지, 마우스는 이들의 침까지 채취했다. 친밀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행복을 강조하는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더 외로운 존재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프로게스테론 수치도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사회적 친밀감도 낮아진 것이다.
놀라운 결과다. 1단계 연구에서는 애초에 행복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경향성이었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2단계 연구에서는 그런 구분 없이 랜덤하게 나눈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잠시 행복을 강조하는 기사를 읽은 것만으로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심지어 마치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듯 사회적인 친밀도까지 감소했다. 기사를 읽고 행복을 조금 더 추구하게 되었을 뿐인데 말이다.
행알못이 행복하다?
행복하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오히려 행복과 멀어진다니, 심지어 더 고립되고 외로운 상태가 된다니. 왜 이런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일까.
행복을 느끼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른데 사회적으로 정의하는 행복과 그 조건은 꽤나 심플하고 보편적이다. 반복적으로 이런 조건을 접하다 보면, 마치 그것만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척도인 것처럼 여기게 된다. 함정은 여기에 있다. 실제 일상에서의 경험들이 그 조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 심지어 누구나 행복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나는 별 감흥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마치 사회로부터 이탈되는 것 같은 실망과 불안을 남긴다.
행복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행복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오히려 반대의 효과가 나타난다. 행복은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마치 약속 시간에 오지 않는 친구처럼 애타게 기다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행동들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일상에서 나에게 반복되는 사소한 순간들, 그 사이에 숨어 있는 의미들의 합이며, 이는 하나의 기준으로 정의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이 행복의 실체라니. 차라리 행복에 대해 모르는 게 낫다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래, 어쩌면 행복의 비밀은 행알못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 참고문헌 ]
McGuirk, L., Kuppens, P., Kingston, R., & Bastian, B. (2018). Does a culture of happiness increase rumination over failure? Emotion, 18(5), 755–764.
https://doi-org.silk.library.umass.edu/10.1037/emo0000322
Mauss, I.B., Savino, N.S., Anderson, C.L., Weisbuch, M. Tamir, M., & Laudenslager, M.L. (2012). The Pursuit of Happiness can be lonely, Emotion, 12, 908-912.
Mauss, I. B., Tamir, M., Anderson. C. L., & Savino, N. S. (2011). Can seeking happiness make people unhappy? Paradoxical effects of valuing happiness. Emotion, 11, 807–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