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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Aug 10. 2022

행복과 해피는 다르거든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의 함정


행복과 해피는 다르다.

두 용어가 같다면 어째서 행복한 사람보다 해피한 사람이 더 해피할까.



먼저 대한민국의 ‘행복’에 대해 알아보자.

<2022 세계 행복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by SDSN)>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46개국 중 59위로 나타났다. 얼핏 보면 상위권인 듯 보이지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심지어 한국인의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피’ 국가들은 어떨까.

행복지수의 상위권에는 북유럽 국가들이 포진해있으며,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미국, 영국은 각각 10위, 12위, 15위, 16위, 17위를 사이좋게 차지하며 해피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 정확히는 happiness가 맞다. 본문의 ‘해피’가 가지는 의미는 다른 문화권의 행복을 상징하는 것이니 딱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너그럽게 넘어가 보자. 제발요 ㅠ)



상위권 국가들의 경제 수준이나 복지 환경이 좋다 보니 좀 더 해피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인 걸! 뭔가 이상하다. 경제 말고 다른 변수를 알려주는 사례는 없을까? 아래의 두 국가를 만나보자.



그걸 왜 지금 걱정해?
- 멕시코


가방 하나로 전 세계를 도는 김현성 씨는 멕시코에서의 일을 매우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다. 20여 년 간 한국에서 체화됐던 고정관념이 박살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바다 건너 2억 명의 사람들은 이곳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답을 내고 있었다.


하루는 학교 갔다가 돌아오는데 윗집 아저씨가 냉장고를 짊어진 채 나서고 있다. 어디 이사를 가는 건지 물었다.


“바캉스를 가려는데 돈이 없어. 냉장고를 팔 거야.”


으잉?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집에 있는 냉장고를 팔아서 여행 가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도대체 돌아와서는 어떻게 살려고 이런 선택을 한단 말인가. 그는 재차 물었고, 윗집 아저씨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답했다.


“꼬레아노(한국사람아), 왜 그걸 지금 생각하나. 나한테는 지금 여행 가는 게 중요한 거야.”


놀랍게도 윗집 아저씨는 딱히 유별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사고와 정서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예컨대 매우 뜨거운 여름, 갈증이 심한 상태. 눈앞에 음료 자판기가 있다. 하지만 5미터만 더 걸어가면 집이다. 집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를 꺼내 마실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나을까.


고민할 거리도 아니다. 나라면 집에 가서 음료를 마실 것이다. 그 짧은 거리를 못 참아서 천 원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만난 멕시코인들의 선택은 달랐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마신다.


“왜 이돈 아끼자고 그걸 참아. 목이 타는데 마셔야지. 아우라미스모(지금, 당장!)”


이런 차이로 볼 때, 그들은 한국인의 보험이나 저축 습관을 이상하게 생각할 여지가 높다. 그들에게 이런 선택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은 이렇다.


“내가 언제 죽을 줄 알고 저축을 해. 지금 써야지. 10년 후에 어떤 일이 있을 줄 알고.”



멕시코인들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앞서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 보고 느끼는 것들을 중시한다. 한국인의 시선으로 그들의 가치관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저렇게 계획 없이 살다가는 끝끝내 거지꼴을 면치 못할 것 같아서다. 그럼에도 행복의 관점에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한가득 투자하는 게 꼭 이로운 선택일지. 언제부터 그걸 당연하게 여겨왔는지.


멕시코의 소득 수준은 한국보다 낮다. 하지만 행복지수는 더 높다.




기다리면 얻을 수 있는 걸?
 - 부탄


부탄은 불교 국가다. 고기를 먹는 게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먹는다. 심지어 대놓고 먹는다. 어찌 된 일인가.


교리상 금기된 사항은 살아있는 동물을 도축하는 행위다. 따라서 생이 다해 죽은 자연사 소들은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들판에는 늘 야생 소떼가 있는데, 이중 죽은 소는 음식의 개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곧 죽을 듯 비실비실한 소를 보면 따라다닌다는 농담도 있다.


도축 금지는 굉장히 많은 것들을 제한한다. 부탄에서는 낚시가 불법이다. 낚시광들에겐 억장이 무너지는 일. 싱싱한 회나 초밥도 먹을 수 없다. 명이 다해 죽은 소는 한국인이 먹는 소에 비해 질기고 냄새도 많이 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기다림 끝에 합법적으로 먹을 수 있는 주요한 음식이다. 돈만 있으면 언제든 소고기나 싱싱한 회에 소주 한잔 걸칠 수 있는 한국과 비교해보면, 그들의 삶은 꽤 퍽퍽해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 행복의 관점에서는 생각해볼 문제다. 돈만 지불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게 정말 좋은 걸까. 오히려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더 눈에 밟히는 건 아닐지.


히말라야 산맥에 붙어있는 인구 70만 명의 작은 나라 부탄은 국민의 97%가 자신을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알려진 곳이다. '동물마저 행복하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 앞서 참고했던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는 순위가 높지 않지만 해당 자료를 발표할 때 별도의 케이스로 소개될 만큼 남다른 국가이며, 경제적인 풍요가 행복을 견인한다는 전제를 뒤집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참고로,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부탄의 순위가 높지 않은 이유는 해당 기구에서 평가하는 지표와 행복의 기준이 달라서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멕시코와 부탄, 그리고 대한민국의 사례를 보면 행복이 반드시 경제적인 수준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은 문화적인 영향을 받는다?


행복은 전 세계적으로 유사하게 표현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문화 교차 연구들에 따르면 기분 좋은 사건, 목표나 욕구에 도움이 되는 상황, 동기를 만드는 일 등, 모든 문화권에서 유사한 계기로 행복감을 얻는다. 그리고 행복할 때의 표정도 유사하다. 하지만 막상 내가 가진 렌즈로 다른 문화의 행복을 관찰해보면 그 자체의 고유하고 함축적인 의미로 인해 미묘한 차이를 느끼게 된다. 행복과 해피는 다르다.


예를 들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의 언어에서는 행복이 운명론적 개념을 포함한다. 행운이 따라야 얻을 수 있는 신성한 선물 같은 것. 반면 미국에서 사용하는 행복은 특별한 행운의 개념을 갖지 않는다. 이들에게 행복은 양도할 수 없는 인간적 권리이며, 긍정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성취와도 관련이 있다. 


미국에서의 행복은 주로 '환희, '열광'과 같은 높은 각성 상태와 연관성을 같는다. 반면 아시아권의 국가, 예컨대 일본인에게 행복은 일시적인 상태이며 사회적인 조화를 전제로 한다. 중국인들에게 행복은 ‘차분함, 여유’와 같은 낮은 각성 상태를 의미한다.


서구적인 행복의 이미지


동양적인 행복의 이미지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에서도 문화적 차이가 있다. 예컨대 조화로운 관계가 삶의 만족을 결정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방향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하지만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주로 자기 자신 및 효능감에 집중함으로써 만족을 경험한다.



한국인으로서의 행복


행복의 개념과 조건, 추구하는 방식이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면 내가 막연히 기준으로 삼거나 상상했던 행복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말 나에게 의미 있는 보물이 맞는지 말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윗세대로부터 영향을 받아 새롭게 현세대를 구성해가는 나는, 어떤 문화적 함정에 빠져있는 걸까.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황폐화된 땅에서 불굴의 의지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1996년에 선진국 그룹인 OECD의 29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2021 기준,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 5,868억 달러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다. 글로벌 수출 6위, 수입 9위의 무역 강국이며, 블룸버그 혁신지수 세계 1위 국가다. 또한 2020에 이어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2년 연속 참여하여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21년 7월에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레벨로 변경했다. 이 사례는 1964년 해당 기구 설립 이후 6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심지어 문화적 초강국이다. 한류는 더 이상 신기한 현상이 아니며, 한국발 음악과 영화, 드라마 콘텐츠는 그 자체로 세계적인 가치를 갖는다. 소위 말하는 '국뽕'이 차오르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함정은 이곳에 있는 듯하다. 한국은 분단국가라는 불안 속에서 이 같은 쾌속 질주를 해온 탓에 지금도 그 긴장감이 유지되고 있다. 주변 강대국의 물리적, 경제적 압박 속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막말로 ‘열나게’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게 생존이란 뒤처지지 않는 것이며, 행복이란 상대적 우위에 서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더 강한 국가의 삶을 이상적인 목표 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행복이 문화에 따라 달리 추구되는 것처럼, 결국 지구에는 79억 개의 조금씩 다른 행복과 불행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신나는 기분이, 누군가에겐 감사하는 마음이, 누군가에겐 생산적인 활동이, 누군가에겐 걱정거리 없는 편안함이, 누군가에겐 성장하는 순간이, 다른 이에겐 단출한 탁자와 책 그리고 커피 한잔이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것은 때때로 불행이 되기도 한다. 심리학자 Mihaly Cskszentmihalyi는 말했다.


우리가 살아서 얻는 모든 기쁨은 결국 일상의 경험을 어떻게 골라내고 해석하는가에 달려있다.”


문화적 함정에서 나와보자. 만약 더 이상 쫓기거나 앞설 필요가 없다면, 쫓아갈 필요도 없다면, 나는 어떤 행복을 그릴 것인가. 그것이 정말 미래에 있을까.







- 참고자료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between-cultures/201605/how-does-culture-affect-our-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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