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고래 Aug 14. 2022

단짠단짠의 비밀

고통이 만드는 균형감

"균형."
"에?"
"일만 하면 지루해. 놀기만 하면 지루해."
"뭔 소리야."

"나한테는 이게 노는 거야. 노는 건 중요해. 균형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어떻게 되는데요?"
"넘어져."
"..."

"넘어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아프겠죠!"
"맞췄어."

《멜로가 체질》中


초등학교 때였나. 월, 수, 금요일에 학원을 다녔다. 그래서 학원에 가는 날은 고통스러웠고, 가지 않는 화, 목요일은 반가웠다. 토요일은 특히 좋았다. 당일은 물론 다음날까지 학원을 가지 않는 완벽한 하루이기 때문이다. 일요일은 좀 모호했다. 토요일이 너무 좋은 나머지 미량의 긴장도 남기지 않고 몸과 마음을 풀어버려서다. 새로운 한 주가 월수금과 함께 다가오고 있다. 마냥 좋아했다가는 월요일의 내가 서운해할 것 같았다. 학원 가는 길이 더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학원을 가고 있었다. 왜 그런 무서운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여하튼 화, 목요일은 더 이상 사막의 물웅덩이가 아니었다. 습관적으로 목을 축이려 하면 목덜미를 물어왔다. 아, 깜빡하고 또 사냥을 당했구나, 좌절하며 땅에 박혀있던 발을 뽑았다. 학원으로 향했다.


바뀌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학원을 가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토요일이 가장 좋았다. 학원을 가지 않는데도 여전히 일요일은 모호했다. 다가올 일주일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일주일에 6일이나 학원에 가는 건 당시의 나에겐 정말이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뭐, 지금 해도 같겠지만.


고등학생으로 넘어가던 시기쯤, 이런 방식의 일상이 나에게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나는 부모님께 주 6일 학원 생활에 대한 효율성에 대해 어필하기로 했다. 나에게 적합한 방식을 찾기 위해서!


"학원 그만 다니고 싶어요...ㅠㅠ“


계획과는 다른 말을 뱉어버렸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아니, 진심이었나. 하지만 부모님께선 성숙을 전제로 그 선택을 존중해주셨다. 나는 모든 학원을 일상에서 지워버렸다. 한 번 가는 날도 없앴고 두 번 가는 날도 없앴다. 어떤 드라마의 대사처럼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헌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학원이 없는 모든 시간이 눈부실 거라는 기대과 달리, 월요일은 학원에 가지 않음에도 예전의 화요일만큼 큰 기쁨을 주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그건 화요일도 마찬가지였다. 수, 목, 금요일도 물론이고, 그토록 특별했던 토요일조차 색이 바랜 듯 예전의 그것이 아니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날이 마치 일요일처럼 모호해졌다. 묘하다. 분명 일주일 내내 학원을 가지 않는데 오히려 덜 행복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오히려 징검다리로 학원을 다니던 시절이 더 행복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단짠단짠이라는 용어로 설명되는 현상을 그 당시 어렴풋이 알아챈 것 같다. 하나의 맛만 먹어야 한다면 단맛만큼 힘든 것도 없다는 것. 그 단맛이 질리지 않도록 돕는 건 짠맛이라는 사실.


나는 월수금에 학원을 다시 등록했고 그 괴상한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반가운 화요일과 목요일, 완벽히 완벽한 토요일, 전보다 만족스러운 일주일! 놀랍게도 학원을 다시 다니는 선택은 전보다 나은 일상을 만들어줬다.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야 할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그 안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비법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적정량의 고통이 함께 할 때 비로소 더 달달해진다는 것. 더 오랫동안, 더 안정적으로.



# 단맛과 짠맛의 의미


얼마 전 출근길에서 당시의 발견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성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근거 없는 법칙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니 이는 매우 의미 있는 발견이었다. 그리고 당시엔 정립하지 못했던 중요한 지점이 보였다.


바로 '짠맛'의 중요성이다. 이 현상의 핵심은 단맛의 최대 만족을 위해 짠맛을 그저 견뎌내는 게 아니다. 단짠단짠이라는 용어 그대로 짠맛도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짠맛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심리학의 개념을 빌리면, 단맛과 짠맛은 각각 '쾌락적 행복'과 '자아실현적 행복'으로 정의할 수 있다. '쾌락적 행복'은 즉시 얻을 수 있는 만족과 즐거움이다. 예컨대 맛있는 음식을 먹고 걱정 없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주관적 안녕감 Subjective well-being: SWB’으로 달리 말할 수도 있으며, 이는 삶에 대한 만족이나 긍정적인 정서 수준과 비례한다.


상사의 꼬장을 받아낸 저녁, 낯빛만 봐도 마음을 알아채는 친구와의 시간으로 기분이 다시 좋아진다면 이 행복이 회복되는 셈이다. 사랑하는 이와 따스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단잠을 청하는 것, 한겨울 칼바람을 헤치고 들어와 뜨끈한 탕에 몸을 녹이는 것, 불현듯 떠나는 여행, 기대했던 영화를 보는 시간도 역시, 쾌락적 행복이다.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행복'이라는 표현의 대부분은 이에 해당된다.


'자아실현적 행복'은 삶의 의미와 자기실현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율성, 개인적 성장, 자기 수용, 삶의 목표 등 좀 더 인생 전반에 대한 시각이 담긴다. 목표를 위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는 것, 설령 그것이 갈등이라 하더라도 관계나 사건 속에서 의미를 찾고 받아들이는 것, 그런 경험의 반복을 통해 삶의 가치가 점진적으로 증가되는 것 등이 해당되며, ‘심리적 안녕감 Psychological well-being: PWB’으로도 정의할 수 있다.


피곤함을 잊을 만큼 뭔가에 몰입했다면 이 행복을 경험한 셈이다. 배우고 싶은 게 있어 바쁜 시간을 쪼개 학원을 다니는 것, 이따금 안락한 일상에서 탈피하는 선택, 시험의 합격을 위해 긴 시간을 견디는 것, 시험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서 자신을 격려하는 모습, 오늘도 실패한 스스로를 안아주는 것, 이 모든 것은 자아실현적 행복이다. 자신의 몸매 관리를 위해 삼시 세 끼를 닭가슴살만 먹는 친구가 안타까워 보였다면, 그 친구의 행복을 쾌락적 단맛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아실현적 짠맛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일상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단맛보다 짠맛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의외로 우울과 무료함은 짠맛의 부족에 기인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짠맛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고 적절히 배치해야 두 가지 맛의 적절한 균형을 맞출 수가 있다. 이 균형을 얼마나 잘 맞추는 가에 따라 서로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더 큰 행복감을 만들어낸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하릴없이 반복되는 악몽이 아닌, 더 길고 충만한 행복의 길목이 되어간다.



# 내 일상의 단짠은?


일상의 단맛과 짠맛을 찾아보자. 이는 대단히 중요한 목표를 정하는 게 아니며, 모든 일상을 반드시 하나의 맛으로 정의해야 하는 게 아니다. 같은 경험에서도 사람에 따라 다른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일상에서 나에게 달콤한, 혹은 짭짤한 순간을 하나씩 찾아내 보는 것이다. 무턱대고 씹지 않도록. 그 맛과 의미를 알고 음미할 수 있도록.


음미하지 못하면 그저 입에 들어오는 대로 감각 없이 씹게 된다. 단것만 너무 먹다가 알 수 없는 갈증에 빠진다. 짠 것만 잔뜩 입에 머금고는 어렵사리 씹어내며 고통에 몸부림치기 바쁘다. 생각해보자. 단맛이고 짠맛이고 지나치게 먹다 보면 모두 쓴맛으로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인생을 쓰다고 하는 건가.


무미건조한 시간들도 분명히 있다. 매일 반복되는 양치질과 출퇴근길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쌓여있는 업무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사의 꼬장에 짠맛의 의미를 담기 위해 뇌를 괴롭힐 필요도 없다. 차라리 나에게 맞는 짠맛의 일상을 추가할 수 있다. 마치 월, 수, 금요일의 학원처럼. 그러다 보면 쌓여있는 업무와 상사의 꼬장이 좀 달리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출근길이 더러 즐거워질지도.






회사까지 걸리는 시간 1시간 40분. 수많은 출근 인파와 지하철의 마찰음, 그 길목에 불현듯 찾아온 무료함은 어린 시절의 벅찬 진리를 떠오르게 했다. 이렇게 다시 찾아온 걸 보면 시간이 꽤 지나버린 지금까지 당시의 발견이 꽤 중요한 일부로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최근 몇 개월간의 시간을 돌아본다. 관리자의 책임감, 질 좋은 서비스에 대한 부담감, 빈틈을 없애려는 강박, 그것들을 껴안고 몰두해왔다.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쓰디쓰다. 이제 잃어버린 맛을 다시 찾을 시간이다. 지금 이 출근길은 나에게 어떤 맛일까.




이전 02화 행복과 해피는 다르거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