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의 이야기, 일방의 기록
# 1.
홍대로 가는 길은 한강도 볼 수 있을뿐더러 적당히 멀기도 해서 막히지만 않는다면 좋아하는 드라이빙 코스이다. 목적지가 홍대라는 것부터가 그 기분에 한 몫 했을지 모르겠다. 차도에도, 홍대 주차장 골목에도, 그러다보니 카페에도, 사람이 없는 오전 열시쯤. 소녀들의 취향으로 점철된, 어떻게 하면 더 색다르면서도 예쁠까만 생각한 듯한 메뉴는 펴보지도 않는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값 대부분을 책을 읽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장소 대여에 쓴 셈이다.
독서라기엔 머리가 괴로운 전공책을 읽다 언제부터 테이블 위에 있어왔는지 모를 작고 얇은 잡지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집어 드는 행동이 순전한 내 의지 때문인지, 쉬고 싶은 머리가 시킨 것인지 따져볼 기운도 없다. 읽기 시작했을 땐 더욱이 그런 파장을 예상했을 리가 없음은 당연하고. 예술가로 소개된 서도호. 그의 주 활동무대인 New York, 그가 전시했다던 미술관들, 그의 작품세계... 그의 과거와 현재가 쓰여 있다.
쉴 요양으로 읽고 있는 거야, 라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읽어 내려가던 나는 이내 조금 전까지의 표정이 머쓱해지게 푹 빠져 들었고, 읽은 만큼 줄어드는 기사를 아쉬워했다. 그 정도로 잘 쓰인 기사였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원하던 것이 그 몇 페이지 안에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와 생각해본다. 내겐 그 기사가 남산타워 위의 망원경 같았다. 오백원만 넣으면 원하는 곳을 어디든 볼 수 있지만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기사를 다 읽으면 시야가 곧 어두워질 망원경 같을 듯 했다. 더 들여다보고 싶은데 그 마력이 다 된 수정구 같을 듯 했다.
그는 이미 나에게 내 부족분을 꽉 채운 가상의 인물이 되었고, 나는 그런 그를 대상으로 온갖 가정들을 만들어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걸어온 예술가의 길이 천직인 행운아였고, 연인이 싸웠다고 해서 꼭 헤어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 겉으로는 저런 원수가 다 있나 싶으면서도 암묵적으로는 며칠 지나면 웃으며 만날 것이 약속되어 있는 것처럼 / 그는 슬럼프로 인한 고민에도 그 끝에는 ‘그래도 이 길이 내 길인가보다' 하며 스스로 납득 했을 것이다. 그런 가정들 때문인지 나의 눈에는 그 오십 먹은 아저씨가 정말이지 훨훨 날고 있는 듯해 보였다. 몇 가지 키워드 때문이 아니라 국내 전시라도 하게 되면 꼭 한번 들려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동시에 예전 추억이 떠오른다. 그 때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홍대카페였다.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