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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태어난 남자

by 봄이


남편의 생일은 음력 8월 15일 추석이다.
온 집안이 정과 웃음으로 가득한 그날,
그는 유년 시절 단 한 번도 자신의 생일을 제대로 축하받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어릴 적 집안은 명절 손님들로 북적였고,
상 위에는 전과 송편이 넘쳐났지만 케이크와 미역국은 없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언제나 명절이었지, 그는 아니었다.

그는 가끔 명절이 가까워 오면 옛이야기를 꺼낸다.
추석날 아침이면 삶은 밤을 주머니 가득 넣고
혼자 집 근처 산으로 올랐다고 했다.
산길을 오를 땐 바람이 신선했고,
주머니 속 밤알이 따뜻해서 외롭지 않았단다.
하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괜히 울컥했던 그 시절의 소년.

추석이면 당연히 모두가 바빴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편이 늘 조금은 서운했던 소년이었다.
그에게 생일은 언제나, 명절의 그림자였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먼 타국에서 살고 있다.
이곳의 추석은 조용하다.
송편을 빚을 재료도, 북적이는 웃음소리도 없다.
그래서일까?

그는 오히려 편안한 얼굴로 추석과 생일을 함께 맞는다.

작은 케이크 위 초 몇 개, 그리고 “생일 축하해.” 그 한마디면 충분하단다.
초를 끄며 그는 웃었다.
“이상하게, 그때 산에서 먹던 삶은 밤 맛이 그립네.”
지금도 남편은 생일상을 받거나 케이크 위 초를 부는 일을 많이 어색해한다.

그 모습이 과거 소년의 쓸쓸함과 겹쳐 보인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향의 달은 여전히 우리를 비추겠지?
이국의 하늘 아래서 맞는 추석과 생일,
명절의 소란스러움 대신 고요함이 있고,
쓸쓸함 대신 서로의 온기가 있다.


고향의 하늘 어딘가엔 여전히 둥근달이 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추석날 밤, 뒷가든 억새풀 너머로 마주한 달빛이 말해주는 듯하다.
멀리 있어도, 우리는 같은 달을 바라보고 있다고...


모국에 계신 모든 분들, 행복한 추석 보내셨나요?

남은 연휴 동안 행복한 휴식의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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