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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군 Dec 14. 2016

'엄마'와 'Mom' 사이

체스트넛 거리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창을 두들기는 빗소리가 잠을 방해했다. 버릇처럼 누워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4통의 부재중 통화, 1건의 문자.


‘엄마한테 전화해.’


 동생이었다. 필라델피아에 온 지 어느덧 석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엄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날 그리고 목소리를 들은 지도 딱 그만큼이었다. 이곳에 와서는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중간에서 애가 타는 사람은 동생이었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여전히 누운 자세로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전화벨을 덮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어제의 기억이 떠올랐다.  벽에 기댄 채, 노트북 화면을 응시했다. 이미 몇번이나 본 영화였다. 주인공의 어눌한 대사를 따라했다. 벌써 여러 차례지난 영상 속, 연이어 지나가는 시간들은 마음속 시간을 멈춰 세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가족 이야기에는 약했다. 늘 그랬다.


‘네가 불효자라서 그래.’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어깨에 기댔던 머리를 바로 세웠다. 그녀의 머리에서는 달콤한 향이 났다. 방을 나서는 그녀를 바래다주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반팔에 회색 카디건을 걸쳤다. 조금 선선한 바람이 부는 밤, 아직은 그런 계절이었다.


 핸드폰은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멍하니 동생의 문자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빗줄기가 약해졌다. 햇살이 창가에 반쯤 걸터앉았을 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심결에 책을 집어 들었다. ‘Please look after mom.’이라는 제목이었다. 오래전 읽었던 신경숙의 소설이었다. 영문 번역판은 영 낯설었다. 몇 장을 못 넘기고 내려놓았다. ‘mom’이라는 말은 ‘엄마’와는 완연하게 다른 말이었다. ‘mom’에는 기억이 없었다. 문방구 앞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던 기억,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걷던 양재천의 여름날은 고스란히 ‘엄마’라는 언어의 몫이었다.


 전화기를 들었다. 입으로 소리를 내뱉어가며 번호를 읊었다. 통화음이 채 한 번을 울리기도 전, 저 너머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 개월 만의 통화는 싱겁기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밥은 잘 챙겨 먹어라’라는 엄마의 말에 몇 번이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배터리가 다 되간다는 말과 함께 ‘툭’ 소리를 내며, 갑작스레 전화가 끊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잘려 나가진 시간은 날카로웠다.


 순간, 어제 그녀가 남기고 간 한 마디가 걸렸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뱉어지지도 삼켜지지도 않는 감정이 눈시울에 맺혔다. 뜨거웠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창밖에는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찬 바람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하루 사이에 부쩍 추워진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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