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정신병원 (15)
자주 카메라가 오작동되는 꿈을 꾼다.
회사에서 십 년 넘은 파나소닉 카메라로 오랫동안 촬영을 했고, 실제로 카메라가 갑자기 팟(!) 소리를 내며 꺼지거나, 찍은 영상들이 사라지는 일을 몇 번 겪어서 그런지 실체가 없는 걱정은 아니다.
올해 새로운 카메라를 받았지만, 오디오부터, 보통 명함 뽑기로 정해지는 촬영 자리까지, 모든 것이 변수다. 그래서 촬영날만 다가오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한 할리우드 스타 방한 때, 카메라 자리추첨에서 40번대를 뽑았다. 덕분에 무대와 먼 곳에 자리를 잡았고, 시야가 막혀서 사다리와 플라스틱 의자 위에서 최대한 삼각대를 늘린 채 위태위태하게 촬영을 했다.
영상 기자에게 자리 말고도 신경 쓸 일은 많다.
무선 마이크 배터리가 충분한지, 스피커와 가까운지, 소리가 잡음이 없이 들리는지, 화면 색은 잘 조절이 되어있는지 등등.
내신 방송국에서 최소 2-4명이 분담해서 하는 일을 혼자 하려니 더 부담이 되는 것 같다 (외신은 ’멀티미디어 저널리스트’라 불리는 가성비 인력을 좋아한다…)
아무튼, 8년 차이지만 매번 촬영이 부담스럽다.
서론이 길었다.
저번 주말에 예정된 촬영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 한 시간 거리인 촬영 장소와 스케줄을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내 심장소리가 귀에 들렸다.
소음에 민감하고 폐쇄공포증이 있어서 사람이 많은 곳은 절대 안 가는 편이다. 놀이동산과 노래방을 가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하지만 촬영 때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매번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하지만 저번주에 취재 갔던 행사에 몰렸던 몇백 명의 인파를 생각하니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
누워있는데 눈물이 계속 흘렀다.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누가 내 가슴을 위에서 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많은 연예인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겪었던 공황의 순간을 들었다. 택시나 집에서 갑자기 숨이 안 쉬어져서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죽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숨이 잘 안 쉬어졌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한 10초 만에 전화를 받은 응급대원은 내 상태를 듣고 응급차가 필요한지 물어봤다. 괜찮다고 하니 상담 요원에게 전화를 돌렸다.
“(흐흐흐ㅡㅡ흐흡) 제가요… 기자인데요… 곧 촬영을 가야 되는데요… 정말…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진짜… 그냥 못 가겠어요… 숨이 잘 안 쉬어지고… 그냥 계속 눈물이 나와요..”
핸드폰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차분하게 구급요원은 물어봤다.
“응급실이라도 가보시겠어요? 이 상태에서 촬영을 가기는 힘들 것 같아요.”
“아니에요 (흫늡으브ㅂ읍) 가야 해요… 근데 이게 공황인가요…? “
“저희가 여기서 판단은 어렵고요… 응급실에
가보세요. “
통화를 하니 조금 안정이 되어서 사무실을 갔다.
또 울음이 나와서 카메라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마주친 선배는 그냥 집에 가서 쉬라고 하셨다.
이렇게 대책 없이 무너진 날은 처음이어서 더 막막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과 관련된 단어들은 회사에서 감히 꺼내면 안 되는 분위기 같다.
정신병원에서 있을 때, 레지던트 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입원한다고 회사에 알리셨어요…? 괜찮나요?”
“저 정신병원에 있다고 병가 냈는데요? “
“진짜 정신병원에 있다고 했어요? 그래도 돼요…?”
“아, 그게 병가 사유니까요. 보통 어떻게 하시는데요?”
“한국에서 직장인 분들은 그냥 개인 휴가 조용히 쓰시는 편이에요.”
“그럼 병가를 못 쓰고 휴가만 날리는 거잖아요…”
“그럼 말했더니 상사가 뭐라고 답하셨어요?”
“‘그냥 뭐 take care, good luck’이라고 하셨어요
레지던트 쌤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한국 회사에 다니는 지인이 공황장애로 퇴사한 동료에 대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퇴사 사유 중 하나가 공황장애라는 이유로 몇 달 동안 가십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촬영을 가지 못한 자괴감에 영국에 있는 상사에게 퇴사를 선언했다. 회사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었다.
상사는 내게 삼 개월 병가를 제안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고 하셨다.
일보다 나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회복을 하면서 앞으로 뭘 원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감사했다.
정신병원에서 나오면 갑자기 새로운 내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퇴원은 그저 회복을 향한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