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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Aug 01. 2023

미투 피해자는 회사의 적

어쩌다 정신병원 (22)


홍콩에서 대학교 은사님을 찾아뵈었다.


모교 저널리즘 스쿨을 설립한 교수님은 한때 뉴욕에서 갱단에 맞서 탐사보도를 한 전직 기자다.


싱가포르 사건을 들으시더니 갑자기 내게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말하셨다.


“이건 매우 serious 한 사건이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건이고, 지금 위험한 상황이야.”


어리벙벙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살짝 오버하시는 것 아닌가요…?”


“너는 지금 그냥 방송국이 아닌, 공영 방송국에 맞서야 되는 상황이야. 미국 미투 사건에 대해 들었지? 이것 때문에 지금 싱가포르 정부에서도 너의 사건을 아마 주시하고 있을 거야. 거기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고 언론의 자유도 없는 것 알잖아. 네가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자 도발이야. 네가 거기에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만약 가야 한다면 변호사를 구하고 철저히 준비를 해서 가야 해.”




짧은 홍콩 방문동안 여행은 커녕 회사에 낼 진술서를 쓰고, 싱가포르 여성 단체와 접촉해서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고, 몇십 장의 회사 규정을 세세하게 읽으면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 사이, 회사는 재빨리 공개성명을 내고 위기관리에 돌입했다. 드문 사건이지만, 회사는 직원 안전을 최우선시하며,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했다.


혼자 재갈을 물고 있을 수 없었다.


페이스북에 두 번째 글을 올렸다.


대충 요약하자면


1) 성희롱은 처음이 아니다.
2) 또 다른 카메라 맨은 자기를 한국말로 ”여보 (yeobo)”라고 불러보라고 했고, 회사 벤에 탑승했을 때 본인 어깨에 기대라고 했다.
3) 외신과 구글에서 네 번이나 퍼킹 힘들게 인턴쉽을 하고 여기까지 왔지만, 남자 동료는 내가 “한국인 여성 버프”로 취업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4) 이런 사실을 동료들에게 말했지만, 믿기는 커녕
“40살이 될 때까지 겪을 일이니 익숙해져라,“ ”이런 코멘트를 즐겨라. 네가 못생기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럴 거면 그냥 여성만 있는 NGO에서 일해라”등의 말을 들었다.
문자를 증거로 공개하기 전까지, 아무도 내가 회사에서 경험한 일들을 믿지 않았다. 망연자실했고 슬프다.


이 또한 기사화가 되었다. 이번에는 예측을 했지만.




회사는 조사를 해야 한다고 출근을 하라고 했다.


가는 길에 가해자 D모씨를 마주쳤다.


역에서 회사로 가는 길은 단 하나뿐이고, 회사는 기가 막히게 우리의 조사시간을 앞뒤로 잡았다.


너무 무서웠다. 180이 넘는 그가 화가 나서 충분히 나를 한대 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지나가는 동안 그는 뚫어지게 나를 쳐다봤다.


회사에 가니 아무도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유일한 한국인 선배에게 다가갔더니 당황스러워하며 자리를 피했다.


몇 여성 피디들이 나를 “꽃뱀”이라고 부르고 “한 남자의 인생을 망쳤다”며 수군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중 몇 명은 인권 관련 프로그램 제작 담당이었다.


자율 좌석제여서 빈자리를 찾아 걸어 다녔더니 홍해가 갈라지듯 나를 피했다.


보도국 사무실


보란 듯이 사무실 중간에 앉았다. 사람들은 사무실 양 끝에 자리를 잡았다.


억울함과 서러움이 복받쳐 책상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유일하게 자리를 옮기지 않고, 평소처럼 내 앞자리에 앉은 과묵하고 친절한 저스틴은 조용히 마른 고구마와 티슈를 건넸다.


단 한 명의 아군은 생각보다 매우 큰 힘이 되었다.




인사과 두 명과 회사 높은 분에게 조사를 받았다.


3:1이었다. 사각형 방으로 들어갔다. 딱 책상 하나가 들어가는 사이즈였다. 코너에 몰린 기분이 들었다.


사건 이후 인사 매뉴얼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회사의 조사 방식은 피해자에게 굉장히 압박감과 공포감을 조성하는 잘못된 방법이었다.


원칙적으로는 조사는 큰 방에서 해야 하고, 피해자에게 안전한 느낌을 주기 위해 문 쪽에 앉히고 변호사나 지인이 동석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인사과 아저씨는 부드러운 말투로 미팅을 시작하자고 했다.


“제 변호사가 미팅에 동석해도 될까요?”


아저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회사 방침 상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저의 안전을 위해 이 미팅을 녹음하겠습니다.”


아저씨 목소리의 톤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That is, highly, inappropriate. You can’t do that. 아주 부적절하네요. 절대 안 돼요. “


“뭐가 부적절하죠? 법으로나 회사 규정 상 문제될 게 하나도 없어요. 다 읽어보고 왔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I am a journalist. 저는 기자예요. 지금 녹음 버튼을 누르고 녹음 시작하겠습니다.”


녹음 버튼을 누르자마자 아저씨의 톤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사건 경위를 듣더니 그는 내게 물었다.


“혹시 D모씨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요?”


“네? 그렇고 그런 게 무슨 말이죠? “


그는 며칠 전, 촬영현장에서 찍은 D모씨와의 셀피를 언급했다. 기가 찼다.


“오디오 맨 아저씨랑 셋이서 같이 찍었는데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D모씨는 약혼했고 40대예요;;“


“그러면, 얼마 전에 왜 그의 집에 간 것일까요? “


앗차 싶었다.


몇 달 전, 이사를 알아봤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D모씨가 자기가 곧 결혼을 하게 되어 원래 살던 집이 비는데 합리적인 가격에 렌트해 주겠다고 말했다. 여러 번 진상 임대인에게 시달렸기 때문에 솔깃했다.


회사 주변 그의 아파트를 딱 삼분정도 보고 나왔다.


일부러 현관문도 열어둔 채 들어갔고, 들어갔다가 거의 바로 나왔다. 결론적으로 회사 동료와 계약을 한다는 것이 불편해서 진행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인사과 담당자는 사건의 경위보다 나와 D모씨의 (존재하지 않는) ‘연결고리’가 더 궁금한 듯했다.


나를 지켜주기는 커녕 어떠한 흠집이라도 잡으려고 발악하는 회사의 모습을 보고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정신이 매우 또렸해졌다.


다행히 친한 피디들에게 D모씨와 나는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증언을 받아서 결백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인사 담당자는 회사 소셜미디어 규정을 들이대며

페이스북 글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나는 글 어디에도 회사나 피해자 이름을 쓰지 않았기에 당당했다.


미리 회사 규정을 세세히 확인했고, 어기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어서 그의 추궁을 다 받아칠 수 있었다. 심지어 조사동안 D모씨가 성희롱 한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허위사실로 회사 명예를 실추했다는 주장은 통하지 않았다.


내가 피해자인데 왜 회사와 싸움을 해야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억울하고 무서웠다.


‘만약‘이 꼬리를 물었다.


만약 교수님의 조언을 듣지 않고, ‘조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회사만 믿고 돌아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아찔했다. 만약 동료들의 진술이 없었다면 충분히 ‘부적절한 관계’로 포장해서 나를 매도했었을 수 있다.


세상은 ‘무결’한 피해자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주 사소한 실수나 행동이 피해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무결함을 증명해도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꼬투리를 찾거나 허위사실로 피해자를 매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온라인 포럼과 소셜미디어에는 나에 대한 각종 루머와 꽃뱀설이 난무했다. ”너네 나라로 꺼져 ㅆㄴ,“ ”못 생긴 X가 일부러 아나운서 되려고 벌인 일이다 “등 혐오가 가득한 이메일과 페이스북 메시지를 매일 받았다.


빙산의 일각




회사와 반나절의 줄다리기를 끝내고 집에 걸어오다가 풀밭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지나가는 고등학생이 휴지를 건네주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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