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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Oct 24. 2023

절대 너의 우상을 만나지 마라 (산타마을 후기)

핀란드 여행기 - 3


반올림하면 거의 이십 년 가까이 듣고 있는 인디밴드가 있다.


덕질을 시작할 때는 몰랐다. 곧 그 밴드가 십 년 넘게 활동을 중단할 것이라는 것을.


앨범 몇 장을 남기고 그들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렇다 보니 딱히 ‘덕질’ 할 것이 없었다.


잠깐의 공백기를 참지 못해 미리 각종 콘텐츠를 찍어놓고 앨범까지 여러 버전으로 찍어두는 케이팝 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유로움이다.


2000년대 중반, 느린 인터넷을 참아가며 예전 공연 영상을 다운 받아 반복해 듣거나, 활동 중단에 관한 각종 루머를 읽으며 컴백을 막연히 기다렸다.


이년 전, 2인조 밴드는 새 앨범을 가지고 떠났을 때처럼 홀연히 돌아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코로나 시국이라서 인터뷰는 줌 Zoom으로 하기로 했다.




인터뷰는 성공적이었다.


수줍게 인스타 친구를 해도 되냐고 물어봤고, 그렇게 내 최애 가수와 인친이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가 인스타에서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내게 대뜸,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물질적 (materialistic)이냐고 물어봤다.


정말 돈만 밝히는 것 같아서 참 거북하고 불편하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한국 콘서트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공연했던 모습과 너무 이질감이 있어서 당황했다.


여기 잠깐 머무르고 그렇게 단언하는 것은 좀 무리수 같다고 돌려 말했다.  


그 짧은 대화가 너무 뇌리에 박혀서, 그 말을 듣고 느꼈던 복잡한 감정이, 십몇 년간 그 밴드를 통해 느꼈던 설렘, 환희, 멜랑콜리, 위로 등 여러 감정들을 압도했다.


그 후, 예전만큼 그 밴드의 음악을 자주 듣지 않는다.




서론이 길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핀란드 산타 마을에서 산타 할아버지를 만난 경험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가슴 한 구석에 정말 평생 지키고 싶은 믿음이 누구나 하나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러러보는 멘토나 연예인일수도 있고, 어떤 곳에 대한 로망일 수도 있다.


이 싸늘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내 마음 한구석을 전기장판처럼 따뜻하게 덥혀왔던 존재가 있다. 바로 산타 할아버지다.


꽤 오랫동안 산타를 믿었다.


12살까지 이브에 양말을 걸어놓고 잤다 (사실 아직도 이브에 양말을 걸어놓는다).


초등학교 때, 집에 국제 우편 한통이 날아왔다.


꼬부랑꼬부랑 영어와 핀란드어로 된 도장이 쾅쾅 찍힌, 누가 봐도 바다를 건너온 편지였다.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산타가 직접 쓴 크리스마스 편지였다.


구글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어색한 문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진짜 산타(!)이니 한국어를 못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산타가 핀란드 산타마을에서 직접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은 꼬맹이에게 너무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을 줬다.


(여담으로, 산타 마을에 편지 배달 신청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산타 마을에 우체국까지 따로 있다. 하지만 인터넷 시절 전이었으니, 아빠가 어떻게 신청했는지는 모른다. 그저 아빠의 사랑이 느껴졌을 뿐이다).


산타 마을 우체국


사실 헬싱키는 볼 것이 별로 없다.


산타 마을이 있다는 Rovaniemi라는 곳으로 향했다.


(여담으로 서울에서 제주도 거리인데 비행기 왕복 40만 원…)


로바니에미 공항에 도착하고 살짝 당황했다.


아무도 없었다.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주니 무슨 ‘박물관이 살아있다’냐면서 웃었다. 나는 웃펐다.


텅빈 로바니에미 공항 혼자 전세냈다


카페 닫을 준비를 분주히 하는 종업원에게 물 한 병을 샀다.


생각 없이 사고 나중에 계산해 보니, 삼다수 500ml 사이즈 물이 6000원이었다. 그냥 탈수를 할걸.


산타 마을은 공항에서 십분 거리였지만, 대중교통이

없었다. 공항 밖에 나가보니, 주차된 차 몇 대를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맞나 싶었던 순간들….


로바니에미 도시 전용 택시 앱을 깔고 15분을 기다렸더니 한 승용차가 질주를 하며 왔다.


산타마을까지 7-8분 정도 걸렸는데, 나중에 택시비를 보니 6-7만 원이 나왔다, 편도.


살짝 현타가 왔다.




여름의 산타마을은… 쾌적하다.


왜냐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하긴, 누가 산타마을을 여름에 오겠나. 나 빼고..


산타마을의 여름


점원에게 혹시 지금도 산타를 볼 수 있냐고 물었다.


“He is ready for you.” 산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산타의 방으로 이어지는 짧은 통로를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걸어갔더니 끝에 어린아이 두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산타에게 가는 길


산타가 있는 곳과 대기하는 곳은 검은 천으로 나뉘어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에는 산타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입장하자 호 호 호를 해주시면서 어디서 왔냐, 크리스마스에 뭐 하냐 등 완벽하게 산타 빙의가 된 할아버지의 음성이 검은 천 밖으로 흘러나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의 차례가 왔다.


들어가니 온 얼굴에 흰 수염이 가득한 산더미만 한 백인 할아버지가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아이들만 대하다가 뜬금없이 다 큰 동양 여성이 나타나니 산타도 살짝 당황을 한 것 같았다 (산타 둥절)


앞에서 들린 산타 목소리는 사라지고 어른을 대하는 목소리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South Korea. 한국에서 왔어요.”


산타는 짧게 탄성을 내뱉으며 옆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갑자기 앞에 밝은 조명이 켜졌다. 거치된 카메라가 자동으로 사진을 찍는데 그걸 나가서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일이 분이라는 시간제한 때문에 산타에게 속사포로 말했다.


“저는 당신을 보려고 29년을 기다렸어요.


이십 년 전 여기서 발송된 크리스마스 편지를 한국에서 받았거든요. 전 그 후로 평생 산타를 믿어요. “


거의 글썽이며 사연을 얘기하는 내게 산타는 다시 되물었다.


“오, 싸우쓰 코리아? “


“오~ 싸우쓰 코리아에 쓀라 (번역: 신라) 호텔이 아주 베리베리 굿이야~ 크~ 서울에 있는 거 정말 완벽해! 쒬썽이 만들었나? 부산 쓀라 호텔도 나이스야. “


다시 몰입을 하며 보고 싶었어요를 시전 했지만, 그는 나의 눈물겨운 사연보다 속세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 사이, 앞에 거치된 카메라가 파-파-팟 하며 순식간에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세장 중 두장이 눈을 감은 사진이었다…)


촬영이 끝나자 점원은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잔뜩 풀이 죽어 나가는 내가 불쌍했는지, 아니면 궁금했는지, 갑자기 직업을 대뜸 물었다.


“저는 저널리스트예요.”


“오우~ 흥미롭네~ 원래 여기 폰으로 사진촬영 금지지만 너는 잠깐 허락해 줄게! “


홍보를 원하시나 하는 합리적 의심을 뒤로하고 얼른 사진을 찍었다.



나오자마자 사진을 40-60유로에 살짝 강매하길래, 여기까지 온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구매했다.


사진은 역시, 조명, 구도, 색감, 모든 것이 구렸다.


하지만 제일 구린 점은, 산타의 풀소유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산타가 신라호텔을 애용하는 것은 알바가 아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산타로 있는 순간만큼은, 내 마음 한구석에 오랫동안 함께했던 그 산타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 짧은 순간, 크리스마스에 대한 질문은 하나도 없이 신나서 신라호텔 찬양만 했던 산타에게 실망을 넘어서서 야속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붙들어 왔던 마음의 고향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 이야기를 친구한테 해줬더니 딱 한 마디를 했다.


Never meet your heroes.


절대 너의 우상을 만나지 마라.


정말 우러러보는 사람이나 가슴을 뛰게 하는 로망은 멀리서 봤을 때 더 반짝이는 법이다.


최애 인디밴드와 산타를 떠나보내고 얻은 교훈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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