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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록 May 04. 2020

건공이에 대하여

졸업한 지 약 5년 만에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다. 5년 사이에 바뀐 캠퍼스 풍경이 있다면 '고양이'를 꼽고 싶다. 내가 다니는 학교 외에도 주위의 여러 학교에 교내 고양이를 보살피는 동아리가 있다. 학교라는 경계선 안쪽에 자리를 잡은 고양이는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보다 덜 초췌한 모습인데, 학생들이 꾸준히 사료와 쉬어갈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 보살핌을 받은 고양이는 종종 건물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지켜야 할 선 ㅡ학생들의 작품을 부수지 않는다 등ㅡ을 알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있는 조형관을 책임지는 고양이는 '건공이'다.

건공이는 건설공학관을 주된 영역으로 살고 있다. 최근에는 범위를 넓혀 조형관이나 법학관, 전농관에서도 자주 모습을 보이는데 학교에 살고 있는 인문이, 또치, 우왕이, 좌왕이 보다 훨씬 넓은 범위이다. 건공이를 처음 본 것은 작년 7월쯤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발을 내디뎌야 할 곳의 한복판에 주황빛의 커다란 고양이가 누워있었다. 어떻게 내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고양이 몸 위로 발을 뻗어 넘어갔는데, 고양이는 당황해하거나 놀란 기척이 전혀 없었다. 그동안 내가 보아 온 고양이는 사람과 멀찍이 서 있고 다가가면 피하는 동물이었는데, 당당하게 누워있는 이 고양이와의 만남은 놀라웠다. 재밌지만 황당한 경험을 학교 사람들에게 말했고, 이 고양이는 적어도 2014년부터 이 학교에 살아왔고ㅡ2008년부터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ㅡ 이름은 '건공이'라고 했다.

건공이가 주로 다니는 건물




이후 나는 조형관에 갈 때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건공이를 찾았다. 고양이를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었는데 저렇게 푸근한 고양이 라면 내가 손을 뻗어도 피하지 않을 것 같았다. 12년 동안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을 바탕으로 건공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로 7층에 머무는 나는 할 일을 하다가 휴식을 핑계 삼아 건공이가 있는지 2층ㅡ조형관의 현관ㅡ에 종종 내려갔다. 건공이는 현관문을 열(어달)라고 하기도 했고, 세면대에 물을 틀(어달)라고 하기도 했고, 사람들이 오가는 계단 한가운데 누워있는가 하면 조각 작품 받침대에 앉아 있기도 했다. 환경조각학과가 위치한 2층에서 학생들이 만든 조형물과 건공이는 예상치못한 시너지효과를 냈고, 볼 때마다 상상치 못한 곳에서 자유롭게 누워있는 건공이는 학교생활에 활력을 일으켰다.
   
건공이는 특히 학기 중에 '슈스(슈퍼스타)'가 된다. 학생들은 건공이의 걸음을 뒤따라 걷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간식을 꺼내 먹이기도 한다. 직접 챙겨온 장난감을 꺼내 건공이 앞에서 화려한 낚시질을 선보일 뿐만 아니라 유투브로 새가 날아다니고 다람쥐가 뛰어다니는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양이로서 나이가 많은 건공이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은데 잠을 자는 모습은 너무 귀여워서 쓰다듬기도 한다. 건공이는 학생들의 손길이 귀찮아지면 낮 동안에 모습을 감추고 저녁이 되어서야 나타난다. 방학에도 건공이의 인기는 여전하지만 학기보다는 여유가 있다. 손길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며 그르릉그르릉하는 소리를 낸다. 나는 건공이를 쓰다듬다가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늦은 저녁 대학원에 공부를 하러 온 어르신과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배달하고 가게로 돌아가기 전 건공이에게 간식을 주는 배달원도 보았다. 수업 시간인데 건공이에게 무릎을 내주고 쓰다듬고 있는 학생을 보는 건 흔한 일이다.

몇 달 전에는 조형관에서 건공이가 녹색 토를 하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 모습을 봤다. 적지 않은 나이가 걱정되어 동아리에 상황을 알렸고, 건공이는 동물 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건공이의 검진 비용은 몇 년 전 건공이의 오른쪽 귀가 다쳤을 때 건설공학관의 사람들이 모은 비용으로 지불되었다. ㅡ다행이 건공이는 나이에 비해 건강했다.ㅡ 얼마 전에는 동아리에서 건공이 스티커와 머그컵을 판매했고, 수익금은 동아리 운영비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무던하고 친근하고 아주 가끔 새침한 건공이는 매일 학교의 여러 건물을 오고 가느라 바쁘다. 야무지게 건물 구석구석 다니며 강의실에서 수업은 잘 진행되는지, 뒤뜰에 침입자는 없는지 점검한다. 다른 고양이를 만나면 혼을 내주기도 한다. 쓰레기통 옆 박스를 스크래처로 사용하며 손톱 손질도 잊지 않는다. 건물마다 배치된 사료와 물을 맛보고 마주친 사람이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는 듯하면 다가가 볼을 비비거나 자리에 앉아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건공이를 마주침으로써 오늘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다는 안정감을 느낀다.



+ 건공이는 황금색 털에 짙은 줄무늬가 있는, 흔히 말하는 치즈냥이다. 다른 고양이보다 머리는 약 두 배가 크다. 몸집도 육중해서 건공이를 보면 작은 호랑이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1미터는 되는 세면대에 가볍게 오른다. 간식을 보거나 놀랄 일이 없는 이상, 반쯤 뜬 듯한 눈은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 사나운 인상에 제일 큰 역할을 한다. 건공이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네이버, 구글에 '건공이'를 검색하면 된다.





2020. 1.

사록
@sa.rok.sa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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