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 우려 때문에 타인과의 접촉을 줄이고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컴퓨터 의존도가 매우 높아졌다. 꾸준히 인터넷으로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웹서핑은 해 왔지만 2020년 3월부터는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없던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가상공동체는 촌락 공동체나 직업 공동체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야기된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 불러일으킨 반응이다. 즉 인간은 원래 사회적 존재인데 산업화에 따라 파편화되고 원자화되는 외로워진 상황에서 대인관계의 욕망을 가상적인 수단인 통신망을 매개로 충족하려 한다는 것이다.”1)
라인골드는 1990년대에 가상공동체가 호응을 얻는 이유로 ‘산업화’를 꼽았지만, 2020년에는 ‘전염병’이 사람들이 가상공동체를 찾는 이유가 되었다. 감염을 막기 위해 사람을 대할 때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각자의 공간에 혼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데면데면한 현실을 대신해서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인터넷에 거의 종일 접속하고 있다.
먼저 실시간 화상 수업에 참여했다. 수업에 사용하는 화상 수업 플랫폼인 줌(Zoom)은 실제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했다. 화면을 공유할 수도 있고, 녹화도 가능해서 실제 수업에서 아쉬웠던 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수업 과제도 웹을 통해 제출하다 보니 따로 아카이빙할 필요가 없어 편했다. 거기다 학교를 오가며 느끼는 피로감도 줄어들어 만족감이 높았다. 하지만 말하는 타이밍을 짐작하지 못하다 보니 참여자끼리 목소리가 겹치는 경우가 있어 서로의 작업에 대해 원활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유튜브(Youtube)와 인스타그램(Instagram)을 통해 공연을 보고, 설명을 들었다. 가수들은 방송국 스튜디오에 모여 녹화하는 대신 편한 옷을 입고 각자의 집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큐레이터는 미술관을 직접 찾기 어려운 관객을 대상으로 작품 설명을 했다. 큐레이터 폴 오닐은 “이미지 중심의 플랫폼은 큐레이팅이라기보다 에디팅, 자기표현, 유사 공공공간일 뿐이다.”2)라고 COVID-19 시대의 온라인 미술관에 대해 일갈했다. 과거에 책에서 봤던 유명한 작품을 미술관에서 실물로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작품에서 흐르는 아우라와 작품이 설치된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낱장의 이미지를 본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전에도 인터넷을 통해 미술 작품을 볼 수 있었지만, 자료로만 사용할 뿐 실물을 마주하고 감상하기를 바랐다.
화면을 통해 경험한 것 중 가장 생동감이 느껴졌던 것은, ‘온라인 생일파티’였다. 온라인으로라도 알고 지내던 여러 사람을 본다고 생각하니 들뜨기도 했다. 다 같이 모여 케이크의 초를 불고 축하를 나누던 생일파티가 온라인으로 옮겨졌다. 참석한 사람의 수만큼 화면이 분할되었고 사람들은 생일축하용 가상 배경을 만들어 입장했다. 생일의 주인공은 화면 공유를 이용해 오늘 있을 식순을 안내하고, 각자 준비한 케이크를 각자의 공간에서 먹었다. 화면을 통해 방의 모습도 볼 수 있었고, 키우는 애완동물도 보여 줄 수 있었다. 온라인으로 생일파티를 하는 것은 색다른 기분이었다. 하지만 생일파티를 하는 내내 화면 속 처음 보는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숨겨진 차원」에서 “우리는 대상이 가까이 있어서 그 부피와 깊이를 직접 느껴야만 우리가 바라보는 물체에 공감과 친밀감을 가질 수 있다”3)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서로가 아닌 각자의 화면을 보며 말하는 상황은 가벼운 인사를 나누기도 어색하게 만들었다. 한 공간에 모여 생일파티가 진행되었다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사적인 활동이 온라인으로 옮겨졌고, 이 과정에서 친밀함을 쌓아갈 수 있는 대상은 팬데믹을 겪기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에 한한 것이겠다고 생각했다.
앞서 말한 모든 경험은 카메라 렌즈 앞에서 진행되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나를 보여 주기도 하고 카메라 렌즈로 비춘 세상을 화면으로 보았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그 느낌은 평평하고 매끈했다. 그런데도 나는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카메라 앞에 앉아 있고, 이어 공허함을 느끼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제 질적 연구를 걷어치우고 하루에도 인류의 문명사만큼 생산되는 빅데이터 더미에서 삶의 진리를 찾으라고 부르짖는다.”4)라고 이광석 교수는 언급한다.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은 물리적 현실인데도 기술과 미디어가 너무 발전한 나머지 내가 살아가는 곳과 디지털을 동일시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상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지냈고 전염병이 있는 미래를 그려본 적 없었다. 지금 나는 우리를 연결해주는 매체 뒤에 앉아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1) 이재현, 공명: 미디어 기술 비평,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9), 125.
2) “온라인 미술관이 실제 예술 체험을 대신할 순 없다”, 중앙일보, 2020년 3월 31일 수정, 2020년 4월 28일 접속, https://mnews.joins.com/article/23743744#home.
3) 에드워드 홀, 숨겨진 차원, 최효선 (서울: 한길사, 2013), 128.
4) 이광석・김재희・심혜련・김성재・백욱인・이재현・홍성욱・이지언・오경미, 현대 기술・미디어 철학의 갈래들, (서울: ㈜그린비출판사, 201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