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진짜 퇴근이다.
정부 종합청사에서의 치열한 전투가 끝난 후, 정우와 그의 팀은 그저 생존했을 뿐인지, 아니면 승리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에 빠져 있었다. 과천에 있던 적들은 평촌으로 밀려났지만, 정우는 또다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 외근. 내가 왜!!!”
북한 특수부대는 평촌까지 후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항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실 과천보다 더욱 심각한 피해를 입은 곳은 평촌이었다. 평촌의 학원가를 중심으로 포화가 집중되며, 도시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용산, 일산, 평촌, 분당, 강남 등 주요 도심 지역에도 포격이 집중되었다. 다행히 지하철역으로 피신할 수 있었던 양재동과는 달리, 평촌대로에는 4호선 열차가 도로를 뚫고 나와, 그 모습이 마치 튀어나온 내장처럼 처참했다. 중앙공원에서는 생존자들이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덧 갈증과 굶주림에 의해 무색해진 듯했다. 무너진 건물 사이로 K2 전차들이 질주하고, 헬리콥터는 평촌역 일대를 선회하며 아크로빌을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 롯데 백화점 앞에서는 전차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적들이 우리 전차 몇 대를 탈취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단 이틀 만에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했던 도심은 이제 전차가 내쉬는 거친 숨소리와 생존자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시 오후 여섯 시.
‘아, 또 야근이네.’
부대 막사 안에서 켜진 TV가 정우의 시선을 끌었다. 전쟁 중에도 방송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지만, 정우는 나중에야 그것이 복잡한 기술이 아님을 깨달았다.
“우리 군과 미군의 반격으로 남하하던 북 정규군이 모두 격퇴되었습니다. 서해와 동해로 침투한 적 함선과 전투기 역시 아군에 경미한 피해를 입혔을 뿐입니다. 다만 북한의 주력 부대가 일산과 고성, 김포까지 남하해 우리 군의 손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오후 5시를 기해 적이 개성까지 퇴각했다고 국방부는 발표했습니다. 적의 공세가 약해짐에 따라 박필현 대통령 직무대행은 본격적인 반격에 나설 것임을 천명하며, 북은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지금이라도 공격을 멈추고 협상 테이블에 나설 것을 촉구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 특수부대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서울과 수도권에 수천 명의 북 특수부대가 침투했는데요. 서울에서는 거의 격퇴했지만, 과천에 침투했던 병력이 평촌 도심으로 물러나면서 산본에서 넘어온 병력과 평촌에 집결하는 형세입니다. 시가전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퇴로를 열어주고, 항복을 유도하는 건 어떨까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말이죠.”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안산으로 이동해 해상으로 탈출하는 경로뿐인데, 아무리 훈련이 잘된 특수부대라고 해도 아군의 방어선을 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항복을 유도하거나, 격퇴할 수밖에 없겠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불가능하다고? 쟤들은 가능해. 산본으로 가겠네. 큰일이다.’
‘그들은 허를 찌를 거야. 가장 빠르고, 위험한 곳으로.’
최철현 상좌는 평촌에 집결한 부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우리는 살아서 돌아간다. 내일 새벽, 신속히 이동한다.”
“지하철 4호선을 따라간다는 말씀이십니까?”
“…”
“각자 위치로.”
평촌에 도착한 정우는 더 이상의 전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한 팀원들이 묵묵히 그를 따라다녔다.
“얘들아, 나 오늘은 퇴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