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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주브랜든 Sep 28. 2017

장동건, 그와의 추억

장난으로 촬영을 했다가 프로덕션을 만들어버리다.

    

  대학교 다닐 때 함께 단편영화를 함께 찍었던 친구들이 있었다. 충무로에서 촬영감독 밑에서 일하던 친구부터 사진, 음향, 연출 등 7명의 예술인들과 함께 한 번씩 만나서 예술을 이야기하던 시절이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개인사업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Composers라는 이름이었다. 그때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최와 맞물려 앙드레 김 선생님의 “시드니 패션 판타지아 2000”  패션쇼가 호주에서 열리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우리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Cozmosis의 C를 사용해서 CBS라고 우리를 소개하고 주최 측에 촬영협조를 구해보자고 한 것이다. 만약 우리의 실체가 들통이 난다고 해도 프로덕션 이름에 C로 시작하는 이름이 있으니 완전 CBS란 이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겠다는 얼토당치 않는 궤변으로 무장하고 전화를 걸었다.

" 안녕하세요. 저희 CBS에서 이번 앙드레 김 패션쇼 촬영을 하려고 하는데 가능할까요? "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 cbs라고요. 촬영 와 주시면 저희야 영광이지요” 도대체 그 회사는 CBS를 어떤 방송국으로 이해했을까 궁금했다. 미국에 유명한 CBS를 생각했을까 아님 한국의 기독교방송 CBS였을까? 어쨌건 귀에 익숙한 CBS단어에 자연스레 촬영 허가를 받고 우린 시드니 CBS팀을 구성했다.


  대학교에서 부전공으로 Film Studies를 공부했었지만 실제적 영화에 대한 이해는 동아리처럼 모여서 함께 영화를 찍었던 그 친구들을 통해서였다. 영화감독의 꿈을 잠시나마 갖고 있었던 내가 CBS팀에서 맡게 된 것은 리포터이었다. 가슴엔 사진과 함께 CBS로고와 리포터 직책이 적힌 회사증을 자랑스럽게 달고, 7명의 용사들이 각종 방송장비를 가지고 패션쇼의 현장으로 진입했다. 처음 들어가자마자 장동건, 차인표 씨가 시드니 한인 라디오와 인터뷰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조명이 비치면 커다란 영상카메라와 함께 7명의 CBS요원들이 나타나자 진행되고 있던 인터뷰는 중단되고, 쏜살같이 장동권과 차인표의 매니저가 우리를 막았다. “어디에서 오셨죠?” “ 저흰 주최 측 대표님께 촬영 허락받은 CBS입니다” “ 아~네. 저희 잠깐 메이크업할 시간 주시죠. 감사합니다” 속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이야기했던 CBS를 아무런 의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단순한 매니저들을 보면서 이런 식으로 익숙한 것을 활용해서 사기를 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장동건은 나와 동갑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거물급 배우는 아녔었다. 하지만 앞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비록 남자라 할지라도 그의 눈빛과 그의 모든 것에 현혹될 만큼 멋진 남자였다. 그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리포터의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영광인데 대세 배우 차인표와 멋진 남자 장동건을 인터뷰하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처음 창업을 할 때 만들었던 회사 이름이 Neo Group Australia Pty Ltd이었다. 그래서 그 그룹에 하나로 NeoPlaza이름으로 서적음반점을 오픈했었다. 프로덕션을 해야 한다면 그 이름은  Neocom Production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터뷰 말미에 무슨 용기가 났는지 2명의 배우에게 요청을 하나 드렸다. “저희 프로덕션 이름이 Neocom Production인데 두 분이 저희 프로덕션 파이팅 한번 외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장동건 씨부터 부탁드립니다. 영원히 기록으로 남을 장동건과 차인표 씨의 파이팅 멘트는 영상기록물로 남았다.


  두 번째 인터뷰는 앙드레 김 선생님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멋진 앙드레 김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 TV로만 봤었던 영어단어와 한국 접속어로 이루어진 선생님의 표현법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 제가 이번에 세컨드 타임으로 시드니를 visit 했는데 웨더가 fantastic 하고 really beautiful해서 참 satisfied 했어요” 촬영을 한다고 뒤쪽으로 가셔서 흑채를 뿌리시고, 화장을 직접 고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뭔가 웃겨야 된다는 생각에 그때 당시 유명했던 선생님의 본명 ‘김봉남’씨 이야기까지 하며 짓궂게 인터뷰를 했지만 너무도 따뜻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그 당시 앙선생님께서 영어단어를 사용해서 열심히 말을 꾸며서 하려고 하다 보니 원래 하려 했던 이야기를 잊어먹어서 내게 눈으로 제발 말을 이어가게 해달라고 호소하던 그 눈빛이 진짜 생각난다. 인터뷰 끝나고 선생님께선 패션쇼 끝나고 꼭 회식에 참석해서 더 많은 이야기 나누자며 내 손을 잡아주시던 그 기억이 생생하다.


  마지막으로는 미스코리아 진에 뽑혀 패션쇼의 여주인공으로 온 고등학생 김사랑이 있었다. 계속되는 촬영과 기다림 속에 지쳐있던 내게 긴장감이 많이 사라져서 김사랑과의 인터뷰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미안하고 부끄럽기까지 한다. 이제 막 미스코리아가 된 고등학생 소녀에게 내가 했던 질문 중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 김사랑 씨.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로 인정받은 셈인데 김사랑 씨의 아름다움을 부러워하실 분이 많으실 것 같아요. 미모의 비결이랄까요 아님 꿀 피부를 유지하는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지금의 김사랑이 이 질문을 받았다면 자연스럽게 멋지게 이야기했을 땐데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녀가 대답하기엔 너무 어려웠던 질문이었나 보다. 

  패션쇼를 하고 있는 내내 인터뷰를 해주셨던 차인표, 장동건, 김사랑 모두 우리 카메라에 윙크까지 해주며 신경을 써주었다. 패션쇼의 마지막이 다가오니까 한국에서 날아온 진짜 방송국 연예소식 전하는 리포터들이 촬영들을 하고 있었다. 7명의 CBS요원들이 눈빛으로 ‘철수’를 외치며 조용히 행사장을 빠져나와 한인식당에 모였다. 모여 있는 우리를 보고 어떤 젊은 친구가 이야기한다. “아까 패션쇼에서 촬영하시던 분들이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래도 한인사회에서 서점까지 하고 있는 내가 CBS라고 거짓말해서 촬영했다고 소문이라도 난다고 하면 신뢰성에 엄청난 타격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기꾼’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움이 생겼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결과, 장동건의 축하 메시지에 발맞춰 얼떨결에 Neocom Production을 오픈했다. 이렇듯 사업은 완벽한 계획 속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지도 않게 프로덕션을 오픈했지만 사업은 두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제작과 유통 부분이었다. 제작 부분에서는 호주시장 내 각종 영상제작과 편집 쪽으로 집중되었다. 시드니대학교 다큐멘터리 제작부터 다양한 호주와 한인시장의 다양한 영상을 제작하면서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여러 CF 업체와 연계되어 일들을 하게 되었다. 한편으론 ‘세계를 간다, 호주 편’ 여행 정보지의 자료를 영상으로 만들어보자고 해서 각종 호주 정착 가이드를 영상으로 제작했다.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호주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는 기호를 갖게 되었다. 유통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영화 제작사와 저작권 문제를 협의하면서 한국영화 비디오 판권을 호주 방송사에 판매하고, 불법복제 유통되는 한국영화를 합법적으로 유통시키는 일들을 하게 되었다. 이 일들을 통해 한국영화 판권을 사서, 수입사가 되어 한국영화를 호주에 상영시키는 영화 수입업자로 확장되었다. 그때 가장 처음으로 수입했던 영화가 “조폭마누라”였다. 그 영화를 상영하면서 시드니 달링하버란 최고의 관광지 앞에 중국 영화관 대표와 친분을 갖게 되면서 생각지도 않게 영화관 운영에 대한 권유를 받게 되었다. 


  비즈니스는 하나의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어떤 비즈니스 하나가 시작되면 다른 연관성 있는 비즈니스와의 연계는 너무 쉽게 이루어지고 기대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펼쳐진다. 장난처럼 시작된 앙드레 김 패션쇼 촬영이 프로덕션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프로덕션을 하게 되면서 한국영화사와 관계를 맺게 되면서 영화 수입과 유통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펼쳐졌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한국영화 전문관을 오픈하는 찬스를 맞게 되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비즈니스의 세계는 먼저 발을 내밀었을 때 실체가 드러나는 신비한 생물이다. 생각만 갖고 있으면서 실천하지 않으면 절대 그 신비를 체험할 수 없다는 또 다른 신비도 가지고 있다. 물론 세상 모든 게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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